힘든 환경 속에서도 게임 디자이너라는 꿈을 잃지 않고 살아가던 지은(신현빈)은 어느 날 집으로 가는 골목길에서 낯 모르는 남자들에게 붙잡혀 성폭행을 당한다. 하지만 경찰은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생긴 언어장애로 상황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는 지은의 모습에 제대로 수사를 하기는커녕 자작극이라며 그녀를 의심한다. 우연히 지은의 사건을 접하게 된 형사 자겸(윤소이)은 비슷한 장애를 가진 여동생을 떠올리며 지은을 돕기 시작하지만, 지은은 이 일을 스스로 해결하기로 결심한다.
<어떤 살인>은 전형적인 여성 복수극의 서사를 따라가지만, 복수를 해나가는 주인공 지은을 따라가는 대신 지은과 비슷한 경험을 가진 인물, 자겸을 배치함으로써 이야기를 좀더 풍부하게 짜나간다. 실제로 영화는 지은의 복수보다 이를 지켜보는 자겸의 심리묘사에 더 공을 들인다. 형사인 자겸에게 지은의 복수는 막아야 할 것이지만, 지은에 대한 알 수 없는 유대감에 자겸은 지은의 복수 행각을 지켜보며 괴로워한다. 하지만 지은의 복수와 자겸이 담당하고 있는 사건이 수렴되는 과정이 그다지 치밀하지 못해 극의 긴장감이 떨어질뿐더러 복수 앞에 선 두명의 인물이 느끼는 분노에 ‘당연’ 이상의 공감을 하기 힘들다. 영화는 지은이 어린 시절 자신을 고통에 빠뜨렸던 사고와 맞물려 있는 친구 원경과 맺고 있는 관계도 잘 설명하지 않는다. 더 아쉬운 것은 이 모든 것이 클라이맥스에서 힘 있게 터져야 할 복수극의 가장 중요한 에너지의 힘마저 빼놓는다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