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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석] 정말 무섭구나, 이 배우
이주현 사진 최성열 2015-10-26

<특종: 량첸살인기>의 조정석

드라마 <최고다 이순신> 촬영 당시 조정석을 만난 적 있다. 2년 반 만에 다시 만난 조정석은 변한 게 없었다. 광채 나는 하얀 피부도, 화면보다 실물이 훨씬 미남인 것도, 겸손한 태도마저도 그대로였다. 관객을 들었다놓는 그의 연기는 더 무르익었다. 노덕 감독의 <특종: 량첸살인기>(이하 <특종>)에서 조정석은 ‘원톱’으로 나선다. 오보와 특종 사이에서 갈팡질팡 헤매다 연쇄살인범을 쫓게 되는 방송국 기자 허무혁이 된 그는 스크린을 무대 삼아 ‘조정석쇼’를 선보인다. “<특종>의 대박”이 올해가 가기 전에 이루고 싶은 꿈이라는 조정석을 만났다.

“허무혁은 끊임없이 장고 끝에 악수를 두는 캐릭터다. 허무혁의 이런 모습을 관객이 어리석게 보거나 얄밉게 받아들이면 어쩌지 하는 고민이 있었다. 그런데 대중친화적인 이미지의 조정석씨가 허무혁을 연기하면 그런 느낌이 상쇄되지 않을까 싶었다. 정석씨에겐 누구나 호감을 가질 수밖에 없는 긍정의 기운이 있다.” <특종>을 함께한 노덕 감독의 얘기처럼, 조정석은 대중의 레이더망에 들어온 순간부터 호감형 배우였다. 5 대 5 가르마와 통 넓은 바지로 잘생김을 감춘 채 대사와 상황을 혼자서 가지고 놀았던 <건축학개론>(2012)의 납뜩이 이후 그는 차곡차곡 친근한 이미지를 축적해왔다. 작품 안에서 열심히 그리고 신나게 노는 그를 싫어할 사람은 없었다. 현실의 조정석은 눈에 띄게 외향적이거나 넉살 좋은 전형적인 희극배우 스타일이 아니다. 그는 반듯한 이목구비만큼이나 태도도 반듯한 사람이다. 예의를 갖춘 몇 마디 말을 주고받은 다음에야 조금씩 천천히 상대에게 자신의 흥을 꺼내 보이는 사람. 뽀얀 피부, 짙은 눈썹, 그 아래 외꺼풀의 눈이 안겨주는 차가운 인상은 사실상 페이크에 가깝다. 그보다는 두눈과 입꼬리에 슬쩍 걸어둔 개구쟁이의 웃음이 조정석의 진짜 모습에 근접하다. 조정석의 이런 흥과 유쾌함은 그의 연기에 밑바탕으로 깔려 있다.

최근 종영한 드라마 <오 나의 귀신님>의 츤데레 캐릭터 강선우 셰프는 이런 조정석의 두 얼굴을 잘 포착한 캐릭터였다. 트집 잡을 곳 없는 외모와 요리 실력을 갖춘 남자, 따뜻한 본심을 차가운 태도 뒤에 숨기는 게 특기인 강선우에게 조정석은 적당한 유쾌함과 일상성을 부여했다. 귀신이 시시때때로 출몰하는 로맨스 장르에서, 조정석과 짝을 이룬 박보영이 과장된 연기로 장르의 재미를 배가시켰다면 조정석은 이 드라마가 마냥 허무맹랑한 이야기가 되지 않게끔 판타지와 리얼리티 사이에서 중심을 잡는 조율사 역을 맡았다. “영화와 드라마라는 게 ‘있을 법한 이야기’를 그린 픽션 아닌가. ‘저런 사람 분명 현실에 하나쯤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을 주는 게 연기할 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사람들이 동화돼서 보게 될 테니까.” 현실에서 한번쯤 마주쳤을 법한 캐릭터를 연기하는 것, 조정석의 연기는 언제나 그곳을 향해 있다.

“<특종>에 나오는 내 얼굴이 좋다.” 멀끔한 조정석의 얼굴은 어느새 피로가 덕지덕지 붙은, 적당한 야망과 꿈에 부풀어 있는 평범한 월급쟁이 기자의 얼굴로 변해 있다. 제보 전화를 통해 연쇄살인범의 친필 메모를 단독 입수하고 일생일대의 특종을 터뜨리지만 그것이 엄청난 오보라는 것을 알게 되는 허무혁 기자가 조정석의 새 분신이다. 오프닝 신이 지나고, CNBS 사회부 기자 허무혁이 처음 등장하는 장면. 허무혁이 동료 기자 여럿과 봉고차에 몸을 구겨 넣은 채 쪽잠을 자고 있다. 카메라는 허무혁의 얼굴을 굳이 클로즈업해서 보여주지 않는다. 하지만 떡진 머리와 잠을 못 자 부은 눈, 누적된 피로감과 물먹지 않겠다는 긴장감이 범벅된 몸짓은 영락없이 밤새 현장에서 ‘뻗치기’한 기자의 모습 그대로다. 뉴스 리포팅 장면에선 방송기자들의 억양을 놀랍도록 흡사하게 흉내낸다. “28개월 동안 7명의 목숨을 앗아간 연쇄살인사건….” 틈틈이 9시 뉴스를 보며 리포팅 연습을 했을 뿐 별달리 준비한 게 없다는데, 실제 방송 기자들을 잔뜩 긴장시키기에 충분한 연기다. “스튜디오에서 리포팅할 때, 현장에서 리포팅할 때, 더빙한 목소리가 나올 때 각각의 톤이 조금씩 다르더라. 뉴스를 보는데 그 톤의 변화가 재밌었다. 또 추운 날 현장에서 리포팅하면 (기자들의) 발음이 약간 새기도 하더라. 그래서 일부러 발음이 새도록 연기한 것도 있다.”

현장에 있던 노덕 감독 역시 놀랐다고 한다. “리포팅을 너무 잘하기에 이거 준비해온 거냐고 정석씨에게 물어봤다. 아니라더라. 그런데 또 모르지. 전교 1등이 밤새워서 공부해놓고 공부 안 했다고 하는 거랑 비슷한 걸지도. (웃음) 사실 정석씨는 뭔가 준비를 해와도 ‘짠, 나 이렇게 준비했어’ 하고 보여주는 스타일은 아니다.” 디테일이 큰 차이를 만든다. 조정석의 연기가 유달리 생생한 이유는 그 표현의 디테일에 있다. 조정석은 롤러코스터를 탄 듯 변화무쌍한 허무혁의 감정선을 세밀하게 표현하기 위해 “현장에서 안테나를 한 열개쯤 세워놓고 연기한 것 같다”고 말했다. 상황에 예민하게 반응하려는 그의 태도가 영화의 리얼리티를 살린다. 가령, 제보자 클라라의 도움으로 연쇄살인범의 방이라 추정되는 공간을 둘러보다 놀란 허무혁은 좁은 계단에 서 있는 클라라를 밀치고 줄행랑을 친다. 아마도 시나리오의 지문엔 ‘놀라 도망친다’ 정도로만 되어 있을 그 상황에서 조정석은 ‘클라라를 밀치고’ 도망친다. “촬영하다가 문득 그런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내가 클라라를 잡아 밀쳤더니 클라라가 또 나를 잡아 밀치더라. (웃음) 현장에서 다들 너무 재밌어했다. 소름끼치게 무섭고 급박한 상황인데 한편으로 웃긴 그 신이 어찌보면 우리 영화를 단적으로 설명해주는 장면인 것 같다.” 조정석은 “본능적으로 구체적인 아이디어가 떠오르는 건 영화에 대한 감이 확실히 잡혀 있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노덕 감독이 바라보고 있는 지점을 나 역시 분명 바라보고 있었다고, 그렇게 믿고 싶다.”

눈썰미가 좋고 표현력이 풍부한 게 전부가 아니다. 조정석은 이처럼 나무뿐만 아니라 숲을 보며 연기한다. 영화 전체를 생각하며 연기하는 조정석의 태도에 노덕 감독도 감탄했음은 물론이다. “정석씨가 주연배우로서 영화 전체의 톤을 생각하며 연기했다는 걸, 편집하는 과정에서 발견했다. <특종>엔 클로즈업이 별로 없다. 공간감과 소동극의 느낌을 살리기 위해 카메라가 뒤로 빠져 있는 경우가 많았다. 그때마다 정석씨는 카메라 사이즈에 맞춰 표현의 완급을 조절하더라. 그런 연기를 지켜보면서 ‘정말 무섭구나, 이 배우’ 싶었다.”

“좋은 연기는 좋은 시나리오에서 출발한다”거나 “비우고 집중할 뿐”이라는 조정석의 말은 지나치게 겸손해 좀 심심하다. 하지만 그 계산 없는 순수함이 배우 조정석의, 인간 조정석의 모습이다. “가끔 ‘20대 때 난 어땠지?’ 그렇게 혼자 질문하고, ‘그래, 열정만큼은 진짜 장난 아니었지’라고 혼자 대답한다. 30대 때는 ‘잘 살아야지’ 하는 생각을 많이 한다. 어떻게 사는 게 잘 사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배우로서도, 인간 조정석으로서도 잘 살고 싶다. ‘조정석 걔 괜찮은 사람이야’라는 얘기 들으면서, 배려하며 살고 싶다. 이게 또 연기에 도움이 된다. 배려심이 있어야 연기를 잘할 수 있다.” 서른 중반의 나이에 접어들었으나 그의 눈은 여전히 호기심으로 반짝인다. “쉬고 싶어도 좋은 작품을 보면 또 쉴 수가 없다”는 조정석은 10월 하순 도경수와 함께 출연하는 <형>의 촬영에 돌입한다. 이미 촬영을 마친 곽재용 감독의 <시간이탈자>도 곧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조정석의 쇼타임은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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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일리스트 정혜진·헤어 이미영(엔끌로에)·메이크업 정화영(엔끌로에)·의상협찬 지이크 파렌하이트, 레노마, 리버클래시, 메라제리에 by 아이엠제트 프리미엄, 프레드릭콘스탄트, 세라, 캘빈클라인, 헤리티지리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