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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아인] 죽이고 싶은 연기를 하고 싶다
김현수 사진 오계옥 2015-08-03

<베테랑> 유아인

420만원의 임금이 밀린 한 남자가 어린 아들의 손을 잡고 대기업 본사 건물 앞에 진을 치고 1인 시위를 벌인다. 회장의 막내아들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고 있는 조태오 실장은 남자가 자신의 기업 빌딩 앞에서 소란을 피우는 모습을 보고는 이미지 관리 차원에서 그를 사무실로 불러들인다. 조용히 모욕감을 안겨주는 대신 수표 몇장 쥐어주면 떨어져나갈 것이라 으레 판단했을 터. 하지만 남자는 돈에 굴복하지 않고 조태오의 인생도 꼬이기 시작한다.

<베테랑>에서 재벌 3세 조태오를 연기한 유아인은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에서 총을 사기 위해 안마방에서 돈을 모으던 종대 역할로 데뷔한 이후, 줄곧 제멋대로 살지만 언제나 올곧은 천성을 지닌 선한 서민 캐릭터를 맡아왔다. 그런 그에게 재벌 3세 조태오는 도전과제 혹은 청춘 스타로서의 한 시절을 마감하는 숙제와도 같았을까. “과거에서 탈피하고 싶었다. 이전 영화들이 너무 끈끈하게 연관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좋게 말하면 일관성, 나쁘게 말하면 획일화된 이미지를 벗어날 수 있는 시도가 <베테랑>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애초 류승완 감독이 유아인에게 “조태오라는 캐릭터를 너무 악독하다고 여길까봐” 캐릭터의 배경 등을 설명하는 배우 버전의 시나리오를 보냈지만 그는 애초 의도했던 “그냥 나쁜 놈으로 가자”고 다시 제안했다. 이전까지 어떤 관성처럼 이끌려 연기했던 캐릭터와는 상반된 인물이었지만 유아인은 자기도 모르게 “정형화된 악역 매뉴얼 연기가 튀어나와” 힘들었다. “쉽게 연기하려는 마음, 그리고 얽매이지 않은 연기만을 하다가 장르화된 연기를 하려다 보니 자꾸만 쉬운 결정을 하려 하더라. 완전히 새롭다고는 자신은 못하겠지만 최대한 노력했다.”

유아인의 설명을 빌리자면, 그는 조태오를 “별다른 설명 없이 하늘에서 뚝 떨어진 나쁜 놈”으로 보이게끔 연기했다. 나이도 어린 것이 얼마 살아보지도 않았겠지만, 날 때부터 금수저를 입에 물고 태어난 재벌 3세는 아주 당연하게도 괴물이 되었을 것이다. 특별히 모사하려 하지는 않았지만 크리스토프 왈츠가 연기한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의 한스 란다 대령의 연기도 참고했다. “대단한 인물을 디테일하게 창조해낼 수는 없고, 결국 내가 갖고 있는 것들 중에서 꺼내 표현한다. 내 안에도 분명 그런 악이 있을 테지만 쑥쑥 꺼내기가 다른 영화보다 쉽지 않았다. 뻔뻔하게 잘 안 꺼내지더라.” 류승완 감독은 유아인에게 악독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천진한 소년성이 묻어나는 인물, 그러니까 말만 들어서는 쉽게 이해가 가지 않는 인물을 요구했으니 어려울 법도 하다.

많은 관객이 <베테랑>을 보고 나면 저런 못된 인간이 다 있나 싶을 정도로 유아인이 연기하는 조태오에 대해 이야기할 것이다. 그것은 <밀회>라는 묵직한 드라마로 이십대 시절의 모든 것을 쏟아낸 배우 유아인의 변신이기 때문일 것이다. “선재라는 캐릭터가 가진 톤의 연기로 방점을 찍고 싶은 욕심이 있었다. 내가 뭘 좋아하는지, 뭘 잘할 수 있는지, 그리고 내가 그리는 이십대가 무엇인지 명확하게 방점을 찍고 넘어가고 싶었고, 그런 점에서 갈증을 해소할 수 있었다.” 유아인 스스로 “참 운명적인 게임이었다”라고 표현할 만큼 배우로서의 한 챕터를 정리하는 <밀회>의 선재는 <베테랑>의 조태오와는 너무나도 다른 삶을 살고 있지만 결국 같은 지점을 가리키고 있는 인물이기도 하다. 선재가 혜원을 구해내려 했던 그 더러운 곳에서 사는 인물이 조태오니까 말이다.

<베테랑> 이후 이제 삼십대에 접어든 유아인은 더 자주 극장과 드라마를 오가게 될 것 같다. 일단 <사도>가 개봉 대기 중이고 로맨틱 코미디 영화 <해피 페이스북> 등이 예정되어 있다. 그보다는 SBS 새 드라마 <육룡이 나르샤>로 먼저 얼굴을 비출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누구나 한 떨기 호기로운 정의의 꽃을 마음속에 품고 산다”고 생각하는 유아인의 악역 연기를 보며 각자의 마음속 정의의 꽃을 분연히 일으켜 세울 시간이다. <베테랑>을 보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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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일리스트 지상은·헤어 이일중·메이크업 안성희·의상협찬 폴스미스, 빅터엔롤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