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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리의 영화의 일기] 테마파크의 절기
김혜리 2015-07-16

<밤을 걷는 뱀파이어 소녀>

<밤을 걷는 뱀파이어 소녀>는 스크린에서 움직이는 흑백 그래픽 노블 같다. 소녀(실라 밴드)는 헤아릴 수 없는 세월을 살며 너무 많은 것을 본 뱀파이어다. 차도르를 두른 소녀는 이란 어디쯤인지 미국의 이란계 이민공동체인지 모호한 ‘악의 도시’에서 무감동한 사냥을 이어간다. 검은 차도르는 소녀의 생을 휘감은 작은 적막처럼 보인다. 소녀는 사냥할 때 상대와 비슷한 속도와 자세로 다가간다. 이때 차도르는 그림자놀이의 ‘코스튬’으로 변한다. 스케이트보드를 탄 소녀가 밤거리를 미끄러지면 바람을 품은 차도르는 돌연 슈퍼히어로의 날개가 된다. 사물은 주어진 용도를 배반할 때 송곳니 같은 아름다움을 드러낸다. 굴레가 무기로 변하는 경우야 말할 나위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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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스필버그의 <쥬라기 공원> 개봉을 둘러싼 시끌벅적함을 지금도 기억한다. “공룡이 살아 움직여!”라는 탄성이 우선 전 지구적으로 울려 퍼졌고, 곧이어 사운드가 이미지 못지않은 스릴의 원천임을 입증하는 영화로 꼽혀 5.1채널 홈시어터 장만을 부채질했다. H자동차의 150만대 수출 수익과 등치로 인용되며 문화를 이윤으로 환원하는 비창조적 ‘창조경제론’의 논거로 변질돼 두고두고 우리를 괴롭힌 사태는 그다음이다. 개중 예나 지금이나 귀담아듣는 사람이 제일 적은 평단의 반응도 생각난다. “놀랍다. 게임의 규칙을 바꿀 영화다. 그러나 스필버그의 고전 <죠스>에 비하면 특수효과에 크게 기댄 이벤트다”라는 의견이 꽤 많았다. 시리즈 네 번째 영화인 <쥬라기 월드>를 보고 나오는 길에 1993년 당시 평에서 <죠스>를 <쥬라기 공원>으로, <쥬라기 공원>을 <쥬라기 월드>로 바꿔 넣어도 곧장 통하겠다 싶었다. <쥬라기 월드>는 제공하겠다고 공약한 오락을 안전히 배달하는 무난한 여름영화다.

그러나 스릴의 내역은 <쥬라기 공원>, 심지어 스필버그의 2편 <쥬라기 공원2: 잃어버린 세계>와도 좀 다르다. 티렉스의 지프차 습격, 랩터의 주방 침입 시퀀스가 보여주듯 몬스터로서 공룡의 소름끼치는 특성은 강력한 발톱과 하악골이 아니라 어느 육식동물과도 닮지 않은 특유의 움직임이며 이 영화의 아드레날린 펌프는 공룡에게 쫓기는 장면의 횟수나 폭력의 세기보다 숏으로 서스펜스를 구축하는 솜씨에 있다. 스릴만이 아니다. 스필버그는 감정을 능란하게 다루고 어린 배우를 연출하는 데에 탁월하다. 공포, 유머, 경이를 한 장면 안에서 서걱거리지 않게 굴리는 기교는, 대중영화감독으로서 스필버그가 보유한 유용한 도구다. 구사일생으로 티렉스의 공격에서 살아난 <쥬라기 공원>의 어린 남매는 나무 위에서 불안한 하룻밤을 보내는 와중에도 안개 너머에서 들려오는 브라키오사우루스들의 노래에 매료된다. 영화 도입부에서 쥬라기 공원에 처음 입성한 세 과학자(샘 닐, 로라 던, 제프 골드블럼)도 마찬가지다. 신의 영역에 개입해 생명을 지어낸 인간의 월권 행위에 죄책감을 드러내는 동시에 어린애처럼 무책임한 흥분도 미처 감추지 못한다. 말하자면 스필버그는 공룡이라는 아틀란티스 같은 생물을 향한 우리의 불가해한 매혹을 블록버스터로 만들었고 <쥬라기 월드>의 제작진은 <쥬라기 공원>이라는 블록버스터를 향한 매혹을 블록버스터로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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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생각한다. 인간이 경험으로부터 도통 배우지 못하는 까닭은 혹시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프랜차이즈의 스토리를 이어가기 위해서가 아닐까? 그만한 인명피해를 냈으면 열두번 폐쇄되고도 남을 텐데 <쥬라기 월드>의 공룡 공원은 성업 중이다. 게다가 전작의 사파리로부터 한 단계 나아간 명실상부 놀이동산이다. 리조트와 식당, 기념품 가게는 기본이고 여느 동물원처럼 어린이들이 어린 동물과 스킨십을 갖도록 꾸며진 놀이터(patting zoo)도 있다. VIP 패스 소지자는 줄을 건너뛸 수 있고 검표 직원은 단순반복 업무에 지루해 죽으려 한다. 그러니까 “공룡은 코끼리만큼 심상해졌다”는 명제가 <쥬라기 월드>의 제법 흥미로운 핵심 설정이다. 공원 운영자들은 투자 유치를 위해 더 무섭고 치아 개수가 많은 신종 공룡을 창조해야 한다는 압박에 시달린다. 여차하면 태극 배색의 눈을 가진 펩시사우루스, 삼선 무늬 아디다노돈 같은 브랜드 공룡도 ‘주문생산’될 기세다. 극중에서 군인 빅(빈센트 도노프리오)의 대사가 섬뜩했다. 공룡을 아프가니스탄에 파병할 궁리를 하는 그는 복종하지 않는 개체는 제거하면 된다고 말한다. 원래 멸종됐던 종을 부활시켰으니 당연히 인간에게 생사여탈권이 있다는 논리다. 반려동물을 유기하거나 입양한 유기동물을 다시 버리는 사람들도 비슷한 생각일까? 영화를 보다 멈칫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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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쥬라기 월드>의 난센스들을 적어보기로 한다. 결코 영화가 미워서가 아니라, 여름 시즌 영화가 주는 재미를 다변화해 보려는 나름의 심심파적이다. 하나. 공룡 테마파크의 소유주 사이먼(이르판 칸)은 매니저 클레어(브라이스 댈러스 하워드)에게 운영 현황을 묻고 그녀가 각종 수치를 보고하자 그런 것 말고 방문객과 공룡들은 행복하냐고 질문한다. 클레어가 머뭇거리자, 공룡의 표정을 살펴보면 알 수 있지 않느냐고 현자의 말투로 깨우쳐준다. 기업 오너나 자본가에게 약간의 문화적 ‘허영’이 있는 편이 전혀 없는 경우보다 결과적으로 훨씬 많은 사람을 이롭게 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래도 욱했다. 어쩌라고! 사장도 경영 매니저를 고용할 때 공룡 눈동자를 들여다볼 ‘애니멀 위스퍼러’를 구하진 않았을 것 아닌가. 적자 나면 추궁 안 할 요량도 아니면서 실무자를 슬쩍 냉혈한 취급하고 반대급부로 본인의 철학과 감수성을 과시해야 직성이 풀리는 사장님의 응석이다. 게다가 이 사장님은 나중에 사고가 터지자 얄짤없이 소리친다. “그 공룡 한 마리에 2600만달러라고!” 다음은 공룡을 최종병기로 쓰겠다는 악역 빅과 관련된 실소다. 우선 오늘날 군이 공룡보다 훈련하기 쉬운 맹수들을 전쟁에 동원하지 않는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지 않을까? 더욱 이상한 대목은 주인공 오웬(크리스 프랫)이 랩터 우리에 떨어진 동료를 구해내는 광경을 보고, 빅이 공룡의 파병 가능성을 확신하는 장면이다. 해당 장면에서 오웬은 겨우 목숨만 건졌는데 어딜 봐서 랩터들에게 충성스런 병사의 자질이 보인다는 건지 알 수가 없다. 한편 빅의 부하들은 비상사태가 닥치자 대뜸 쥬라기 월드 통제센터에 들이닥쳐 전문가들을 몰아내고 콘솔을 접수한다. 그렇게 아무나 해도 괜찮은 업무였단 말인가. 셋. 유전자를 인위적으로 엔지니어링해 탄생한 인도미누스 렉스를 추격한 랩터들이 “오, 우리 같은 DNA를 공유했군. 한편이 돼야겠다”라고 ‘대화’하는 장면이다. 볼 때는 그런가보다 넘어가놓고는, 집에 돌아와서야 수긍한 자신이 어이없어 이불을 찼다(영화의 설명에 따르면 오징어, 개구리의 유전자도 인도미누스 렉스에 들어 있다고 하니 테마파크에 대왕오징어나 황소개구리 떼가 없었던 것이 다행이다). 물론 영화의 영향으로 사자와 아나콘다를 동시에 마주쳤을 때 같은 포유류라고 사자한테 텔레파시를 쏘는 관객은 없겠지만 역시나, 웃음이 나는 건 어쩔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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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옛적 장 보드리야르는 “디즈니랜드는, 나머지 세계(미국) 역시 디즈니랜드라는 사실을 감추기 위해 존재한다”라고 썼다. 그가 살아 있다면 최근 영화에 줄줄이 등장하는 디즈니랜드 모방 공간을 어떻게 해석했을까 궁금하다. <투모로우랜드> 속 유토피아는 제목 그대로 놀이동산 조감도처럼 디자인됐다. <쥬라기 월드>는 현재 흔히 보는 테마파크에 동물원을 결합했다. 그리고 <인사이드 아웃>은 인간의 마음이 작동하는 메커니즘을, 중앙 관제소와 서로 연결된 여러 개의 테마파크, 그리고 기억 물류 창고로 시각화했다. <인사이드 아웃>에 등장하는 머릿속 테마파크 지도는 한때 유행했던 ‘뇌 구조도’와 비슷하다. 장난, 가족, 정직성, 특기, 우정 등 주인공 라일리(케이틀린 디아스)의 열한살 인생에서 비중을 차지하는 영역이 각각 놀이동산 섬(island)의 형태로 표현된다. 섬과 섬은 놀이동산으로 치면 모노레일에 해당되는 ‘꼬리를 문 생각 열차’(Train of Thought)로 연결된다. <몬스터 주식회사>의 알록달록한 비명 공장을 설계했던 피트 닥터 감독은- 픽사 프로덕션 전체의 특징이기도 하지만- 하나의 세계를 통째로 디자인하는 데에 유능할 뿐만 아니라 집착한다. 피트 닥터는 픽사 스튜디오 중견 가운데 눈물샘 자극의 최고수이기도 하다. 그가 스토리를 맡았던 <토이 스토리> 시리즈(특히 3편)와 연출작 <업>의 페이소스까지 가미되면 <인사이드 아웃>의 레시피가 완성된다. 침체된 픽사를 부흥시키기에 가장 믿음직한 심폐소생술이다. 그리고 진부한 말이지만 <인사이드 아웃>의 특출함과 한계도 공히 여기서 나온다. (다음에 계속)

<인사이드 아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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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상화(抽象化)? 추상화(抽象畵)!

<인사이드 아웃>에서 라일리의 정신을 시각화한 공간 중 흥미로운 장소는 ‘추상적 사고의 방’(Abstract Thought)이다. 여기 입장한 캐릭터들은 기하학적 형태로 해체됐다가 납작한 2차원으로 눌리고 이윽고 완벽한 추상이 된다. 피카소, 브라크, 칸딘스키의 스타일이 인용된다. 디즈니의 불운한 수작 <쿠스코? 쿠스코!>가 도전했던 장식적 카툰 스타일의 재시도이기도 하다. 의미도 적절하다. 문 앞의 ‘출입금지’ 경고가 암시하듯, 추상적 사고는 풍부한 현존을 일부 유실할 위험을 수반한다. 동시에 이 방은 극중 정신의 통제본부로 복귀할 지름길이기도 하다. 일단 개념을 수립해야 논증을 통해 결론에 이를 수 있으니 지름길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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