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은 영화만 다루는 잡지가 아니었나. 드라마를 다루기도 하나.” 의상을 갈아입던 최우식은 <씨네21> 998호를 사진 기자에게 들고 가서 물었다. <오만과 편견> <호구의 사랑> 등 최근 드라마에만 출연하고 있어 자신이 왜 영화 잡지 표지에 선정됐는지 의아했나보다. 그의 궁금증에 대해 전형적인 대답을 내놓자면, 지난해 <거인>(감독 김태용)과 <빅매치>(감독 최호)를 연달아 찍은 뒤 곧바로 드라마 <오만과 편견>과 <호구의 사랑>에 합류해 매편 자신의 가능성을 유감없이 보여준 그다. 3월31일 종영한 <호구의 사랑>에서 맡은 호구도 귀여웠고, <호구의 사랑> 직전에 찍었던 <오만과 편견>에서 그가 연기한 ‘뺀질이’ 이장원 검사는 전작 <거인>의 영재와 대비되는 캐릭터라는 점에서 기억에 많이 남았다. <호구의 사랑> 종영일이었던 지난 3월31일, 데뷔한 뒤 지금까지 앞만 보고 달려온 그를 스튜디오로 불렀다. <거인>이 개봉했을 때 <씨네21>과의 인터뷰에서 “다음 만남은 꼭 표지였으면 좋겠다”고 밝힌 그의 바람은 생각보다 빨리 이루어진 셈이다. 오랜만에 만난 최우식은 여전히 영리하고, 귀엽고, 열정 많은 청년이었다.
사랑을 위해서라면 간과 쓸개 모두 내놓을 수 있는 착한 남자. <호구의 사랑>에서 최우식이 연기한 호구를 좋게 얘기하면 아낌없이 사랑을 주는 남자고, 나쁘게 표현하면 그냥 호구다. 나쁜 남자들에게 당해본 여성들이나 그 가치를 알아본다는 착한 남자는 나쁜 남자가 대세인 요즘엔 희귀종이다. 최우식이 시나리오를 처음 읽고 난 뒤 표민수 PD에게 “여자들이 이런 남자를 좋아할까요”라고 물어본 것도 그래서다. “너무 착해서 신기했다. 그 말을 들은 표민수 PD님께서 나쁜 남자를 겪어본 여자들 모두 착한 남자에게 간다고 얘기해주셨다. 실제 모습과 닮았냐고? 세상의 때를 너무 많이 타서…(웃음) 호구처럼 지질한 면모가 있긴 하다.”
전작 <오만과 편견>이 거의 끝나갈 무렵, <호구의 사랑>에 합류했던 최우식이 가장 먼저 변화를 준 건 외형이었다. <오만과 편견>에서 검사를 연기했던 까닭에 2:8 가르마를 탄 헤어스타일을 파마머리로 바꿨고, 정장을 벗고 캐주얼한 옷을 입었다. “무언가를 바라지 않고 아낌없이 퍼주는 인물”이라는 감독의 주문대로 호구는 외형적으로 편하게 보이는 게 중요했다. 그럼에도 “너무 바보스럽게 보이지 말자”라는 게 그의 원칙이었다. 그 원칙을 나침반 삼아 연기했던 덕분일까. 호구는 전혀 바보스럽거나 멍청해 보이지 않았고, 오히려 순수하고 착한 면모가 돋보였다. “방송을 본 시청자 중 한분이 이런 댓글을 달아주셨다. 이 드라마를 통해 호구라는 단어가 어수룩하여 이용하기 좋은 사람을 비유하는 뜻이 아닌 순수하고 착하다는 뜻으로 바뀌었으면 좋겠다고 하시더라. 그 댓글이 나를 포함한 드라마팀에 큰 에너지를 주었다.”
영화 <거인>에서 주인공을 연기하긴 했지만, 영화보다 호흡이 더 긴 드라마에서 주연을 맡은 건 이번이 처음이다. 처음 캐스팅이 됐을 때 “호구 역할에 왜 최우식이냐”는 말도 들었던 까닭에 그는 더욱 부담이 컸다고 한다. “내게 물음표를 던진 사람들을 어떻게 납득시킬 수 있을까. 나를 선택한 감독님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았다.” 주연배우로서 책임감을 안고 시작한 드라마지만, 종영할 때가 되자 최우식은 더 큰 깨달음을 얻었다고 한다. “배우와 스탭 두루 챙기는, 사람 좋은 표민수 감독님을 통해 소통하고 배려하는 태도를 배울 수 있었다. 무엇보다 내가 맡은 호구뿐만 아니라 함께 극을 이끌어간 유이, 임슬옹, 이수경 등 동료배우와 호흡을 맞추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됐다.”
<호구의 사랑>이 주연배우로서 책임감과 소통의 중요성을 알게 해준 작품이라면 <오만과 편견>은 최민수, 장항선, 노주현, 김여진 등 함께 출연했던 선배 배우들로부터 많은 자극을 받았던 작품이다. <오만과 편견>에서 그가 맡았던 이장원은 인천지검 평검사로, 소신이라곤 없이 위에서 시키는 대로 일을 하는, 회사원 같은 “요즘 젊은 검사”다. 카메라 안팎에서 자신이 맡은 캐릭터 그대로 살아가는 선배 최민수와의 작업은 최우식에게도 “특별한 경험”이었다. “현장에서 긴장감을 놓을 수 없었다. 처음에는 연기를 잘 못하면 최민수 선배님으로부터 혼날 것 같아서 잔뜩 주눅들어 있었는데, 후배가 연기를 잘할 수 있도록 조언을 아끼지 않으셨다. 선배님의 열정과 디테일을 옆에서 보고 배울 수 있었다.”
데뷔작인 MBC 드라마 <짝패>(2011)부터 최근의 <호구의 사랑>까지 최우식은 단 한번도 쉬지 않고 일만 했다. 덕분에 남들의 예상보다 훨씬 빨리 성장할 수 있었지만, 정작 본인은 “너무 많은 작품들을 하다 보니 지친 상태”라고 한다. “쉬고 싶다는 얘길 했더니 주변 사람들은 ‘지금부터 보여줄 때인데 무슨 소리야’라고 그러더라. 하지만 준비가 안 된 상태에서 다음 작품에 들어가면 좋은 연기가 안 나올 것 같다. 새로운 무언가를 더 보여주려면 쉬면서 채워넣어야 할 것 같다”는 게 최우식의 생각이다. 그래서 가족이 있는 캐나다에 한달 정도 다녀올 계획이라고. “충분한 휴식을 취한 뒤 돌아와서 신선한 작품으로 관객을 만나고 싶다. 지금까지 보여준 모습보다 더 다양한 면모를 보여주고 싶다.” 그가 어떤 모습으로 다시 돌아올지 기대해봐도 좋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