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들렌이 불러일으킨 추억이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라는 기나긴 소설이 된 것은 우연일까? 음식은 오감을 깨운다. 머릿속 잿빛 기억에 색채를 부여하고 향과 맛을 더한다. 식기가 달그락거리는 소리만으로 과거 행복했던 어느 아침의 부엌 풍경을 떠올리는 것 역시 놀랄 일은 아니다. 영국 소설가 로렌스 더럴은 <프로스페로의 암자>에서 올리브 한알이 불러낸 놀라운 이미지를 보여준다. “지중해 전체, 조각상들, 야자나무, 금빛 구슬, 수염을 기른 영웅들, 와인, 철학 사상, 배, 달빛, 날개 달린 고르곤, 남자 청동상들, 철학자들, 이 모든 게 이 사이에 낀 검은 올리브의 시큼하고 톡 쏘는 맛에서 솟아오른 것 같다. 고기보다 오래되고 와인보다 오래된 맛. 차가운 물만큼이나 오래된 맛.” 메리 앤 코즈의 <모던 아트 쿡북>은 음식에 관한 그림과 글을 황홀한 플레이팅으로 차려낸 책이다. 고흐와 피카소, 세잔은 물론이고, 낯선 이름과 요리도 등장한다. 미야와키 아야코가 무를 그린 <히노나 무>는 오이에 대한 로버스 해스의 시로 이어지고, 거의 사진처럼 느껴지는 달리의 그림 <빵 바구니>는 프랑시스 퐁주의 산문과 나란히 놓였다. 조지아 오키프가 그린 <사과>는 신체의 일부를 보는 듯한 발그레한 건강함(혹은 은밀함)을 느끼게 하고, 로버트 보도의 그림 <케이크 조각>은 형체 없는 빛과 색채만으로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쿡북’이라는 제목에 걸맞게 여러 요리의 레시피도 실렸는데, 위스키케이크 10인분을 만드는 재료로는 잭 대니얼 버번위스키 6큰술이 필요하며, 무화과와 포트와인을 넣은 빈 스타일의 오리 요리를 만들려면 농익어서 껍질이 벌어진 무화과가 24개나 필요하다. 보고 읽는 것만으로도 포만감이 솟으니 평생 먹을 일 없는 음식들이 많다 해서 서운할 일만은 아니다.
[도서] 눈으로 음식 먹기
글
이다혜
2015-04-09
<모던 아트 쿡북> 메리 앤 코즈 지음 / 디자인하우스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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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눈으로 음식 먹기 <모던 아트 쿡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