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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적인 이미지가 주는 시각적 쾌감 <은하철도의 꿈>
문동명 2015-04-08

1945년 시코탄 섬, 준페이와 칸타 형제는 동화 <은하철도의 밤>을 좋아하는 아버지 타츠오의 영향을 받아 기차놀이를 즐기면서 은하철도를 타고 우주를 여행하는 걸 상상한다. 그해 8월, 전쟁이 끝났다는 소식이 알려지고 곧 러시아 사람들이 섬에 들이닥친다. 마을이 어수선한 가운데 아이들은 전처럼 밝은 모습으로 학교를 다니고, 준페이와 칸타는 러시아 장군의 딸 타냐와 우정을 쌓는다. 하지만 마을 방위대장인 타츠오가 체포되고, 얼마 후 주민들도 섬 바깥의 수용소로 끌려간다. 고된 수용소 생활 중에도 준페이와 칸타는 아버지를 찾아나서기로 한다.

<은하철도의 꿈>의 도처에는 미야자와 겐지의 걸작 동화 <은하철도의 밤>이 무겁게 자리하고 있다. 동화를 원작으로 둔 건 아니다. 주인공 형제의 이름은 소설의 지오반니와 캄파넬라에서 빌려왔고, 소설 속 아름다운 대사들은 주인공 형제의 대사를 통해 내내 등장한다. 전후의 피폐한 상황을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그 중심에 아이들이 있기 때문에 시대의 우울보다는 동심의 순수로 이야기를 끌고 나간다. 비참한 생활 가운데서도 두 형제가 거듭 꿈꾸는 은하철도가 유영하는 별빛 가득한 하늘은 아름다운 이미지가 내세울 수 있는 시각적인 쾌감을 넘어 극의 명도까지 조절한다. 러시아인에게 밀려 멀쩡한 집에서 쫓겨나 곳간에서 사는 신세가 되고 생활고를 이기지 못해 도망치다가 일가족이 떼죽음을 당하는 상황이 마을에서 벌어지는데도, 준페이와 칸타는 구김살 없이 제 집에서 평화롭게 살고 있는 벽안의 소녀와 눈물겨운 추억을 만드는 순진한 설정이 붙을 수 있는 건 <은하철도의 밤>을 적절히 인용한 덕일 것이다. 영화는 시대적 배경을 명시하고 시작한다. 이야기의 중심을 이루는 배경이 일본이 2차 세계대전에서 패한 직후 러시아와 쿠릴열도 분쟁을 벌이던 시기라는 걸 감추지 않겠다는 뜻일 터. 다만 그 이상의 고민을 기대하긴 어렵다. 시대를 힘들게 지나온 평범한 사람들의 절절한 고생담으로 보면 충분히 감동적이지만, 소설의 유려한 문장과 환상적인 이미지에 과하게 기대 역사의 속살을 에두르는 듯한 태도는 불편하다. 어마어마한 파토스로 무장한 지브리의 <반딧불이의 묘>(1988)가 떠안을 수밖에 없었던 전범국 미화의 의심을 <은하철도의 꿈> 역시 온전히 비껴가긴 어려워 보이는 것도 이 제스처와 멀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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