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뜻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다는 뜻 속뜻 좋아졌거나 좋아질 것 같거나 좋아하는지 잘 모르겠거나 몰래 좋아한다는 뜻
주석 관심 있는 사람이 생겼을 때, 그 사람과의 사이에 있었던 일 혹은 그 사람에 대한 마음을 ‘썸’이라 하고, 그 사람과 교제를 막 시작하거나 한창 교제하는 것을 ‘썸타다’라고 말한다. 흔히 쓰이지만 쓰임새가 의외로 광범위해서 뜻을 꼭 집어 말하기가 어려운 말이다.
어원에서부터 그렇다. 영어 ‘something’은 ‘어떤 것, 무언가’란 뜻이다. 사건이건 물체건 뭔가 있긴 있는데 딱히 뭐라고 지칭하기는 어려운 것을 ‘썸’이라고 부른다. 연애감정일 때에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①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좋아하는 감정이 막 생기려고 할 때, ② 둘 사이에서 호감이 있다는 게 확인될 때, ③ 호감을 넘어서 연애감정이 싹트기 시작할 때, ④ 둘이 본격적으로 연애를 하되 다른 이는 그 사실을 모를 때(공인인증서를 발급받은 연인 사이가 아닐 때), ⑤ 한 사람이 다른 두 사람 사이에서 양다리를 걸칠 때, ⑥ 우정인지 애정인지 모호할 때, ⑦ 우정은 넘어섰으나 애정을 고백하지 못한 상태일 때가 모두 ‘썸’이다. 요즘 중국어로는 ‘애매’(曖昧)라고 한다. 쉽게 결정할 수가 없다는 뜻이다. 이 광범위한 ‘썸’들을 피해가기란 정말 어렵다.
‘썸’을 ‘관심 있는 사람이 생겼을 때’라고 풀었지만, 이 풀이도 실은 중복이다. ‘관심’이 곧 ‘생심’(=마음이 생기다)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내 안에서 생긴 마음도 썸이요, 그 사람과의 교제로 인한 일도 썸인데, 더하여 그 사람을 좋아할까 말까 고민하는 마음도 썸이다. ‘솔로/연애’를 ‘천국/지옥’에 빗댄다면(홀로 있음이 반드시 지옥체험인 것은 아니다. 사랑이 얼마나 큰 고통을 안겨주는지도 우리는 왕왕 경험한다), 썸은 연옥이다. 여기에는 ‘혼자’에서 ‘함께’로 넘어가는 사이의 온갖 고통, 행복, 불안, 기대가 다 있다. 그리고 우리 모두는 연옥에 산다.
한편 ‘타다’는 능동인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피동이다. ‘썸’이란 감정 혹은 사건이 내게 닥칠 때의 반응이므로, 나는 주체적으로 썸탈 수가 없다. 나는 썸이라는 물결에 이리저리 쓸려다니는 약한 조각배에 불과하다. 흔히 이 단어를 쉽게 이성을 갈아치우는 젊은이의 사랑법을 비판할 때 쓰는 이가 있으나, 본래 젊음이란 격정의 주인이다. 늙은이의 사랑이 잔잔한 물결이라면 젊은이의 사랑은 쓰나미다. 소유와 정기고가 부른 <썸>에서 말한 대로, 젊은이의 정체성은 “내 꺼인 듯 내 꺼 아닌 내 꺼 같은 너/ 니 꺼인 듯 니 꺼 아닌 니 꺼 같은 나”다. ‘썸’이란 저 뒤섞인 나와 너의 소유권 이전등기 같은 것이다.
용례 정현종 시인의 <섬>은 유명한 시다.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 그 섬에 가고 싶다.” 장 그르니에는 ‘섬’이 (그 어원에서 말하듯) 개별자로서의 인간을 뜻한다고 생각했다. 섬은 혼자인 인간이며, 섬들은 혼자씩일 뿐인 인간들이라고. 개별자들이 각자의 고독을 극복하는 방법은 서로에게서 ‘무언가’를 발견하는 일뿐이다. 그러니 이 시를 이렇게 고쳐 읽도록 하자. “사람들 사이에 썸이 있다/ 그 썸을 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