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준 감독은 이제는 잊혀진 재일조선인 학생야구단을 찾아 그들을 한국의 그라운드에 서게 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그라운드의 이방인>은 그 일련의 과정을 담은 다큐멘터리다. 한국전쟁 직후, 정부는 선진 야구 기술을 배우기 위해 ‘재일동포 학생야구단 모국방문 초청경기’를 계획한다. 1956년부터 1997년까지 해마다 8월이면 재일조선인 야구 소년들이 ‘모국’을 방문해 야구를 했다. 장훈, 김성근, 배수찬 같은 야구인들이 모두 재일동포 학생야구단 신분으로 한국을 찾았다. 한국 프로야구가 출범한 1982년엔 군산상고와 재일동포팀이 봉황대기 결승에서 맞붙는다. <그라운드의 이방인> 제작진은 1982년, 잠실야구장에서 결승 경기를 치른 재일동포팀 멤버들을 찾기로 한다. 하지만 재일조선인이라는 정체성을 숨긴 채 야구와는 동떨어진 삶을 살고 있는 그들을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양시철, 김근, 권인지 등 당시의 멤버들이 처음으로 한자리에 모여 조촐한 동창회 자리를 가질 때, 영화도 활기를 띠기 시작한다. 30여년 만에 재회한 그들은 술이 몇잔 들어가자 추억을 술술 꺼내 들려준다. 그때의 표정과 웃음소리는 열여덟, 열아홉 소년의 그것이다. 제작진이 잠실야구장에서의 시구 계획을 얘기할 땐 “이름도 없는 선수들이 어떻게 시구식을 하냐”(김근)며 반신반의한다. 그 모습이 또 가슴 뭉클하다. 야구인 배수찬을 조명하는 이야기가 전체 흐름에서 튀지만 영화의 사료적 가치를 높이는 데는 일조한다. 한국 야구사를 재일조선인이라는 키워드와 엮어 바라본 것이 흥미로운 다큐멘터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