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멜로영화의 흥행요인은 결국 명확한 컨셉과 확실한 스타, 그리고 음악이다. 특히 스타는 영화시장이란 전쟁터에서 싸울 수 있는 가장 큰 무기다.” 통신이 이루어준 사랑, 한석규, 전도연이라는 스타, 같은 달콤한 음악. 3박자가 맞아 떨어지는 <접속> 같은 ‘대박형 신경향’ 멜로영화를 제작했던 명필름은 <버스, 정류장>의 마케팅을 놓고 고민에 빠졌다.
일단 눈물짜는 신파멜로도 아니고, 달콤 쌉싸름한 연애담도 아니고, 서른둘 남자와 열입곱 여자아이의 내밀한 심리가 주가 되는 이야기라니. 게다가 인지도와 호감도에 비해 스타성이 떨어지는 김태우와 김민정이라는 두 배우를 캐스팅한 것만으로도, 흥행으로 가는 길이 편치 않음은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멜로영화는 결국 스타가 보여주는 사랑의 환상이나 아름다움에 의존하려는 관객들이 대부분”임을 고려할 때 이는 치명적인 단점이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만날 사람은 언젠가 만난다”라는 <접속>의 대사를 웅얼거리고 있을 수는 없는 일, 어떻게 감독과 관객을 만나게 할 것인가!
“결론은 기존의 것과 다른 방식을 택해 스타의 부재를 극복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일단 <접속>이 스토리 속에 등장하는 PC통신이나, LP음반, 호출기 등의 소재들에 소소한 재미를 실었다면 <버스, 정류장>은 제목 자체가 주는 감성적인 울림을 놓치지 않았다. 버스정류장은 어찌보면 지나치게 문학적인 공간이라는 단점을 지녔지만 “누구나 한번쯤은 지나쳤을 법한 공간, 복합적 기억을 상기시킬 수 있는 공간”으로 장점화했다. 결국 ‘버스 정류장’에 얽힌 추억이나 이야기들을 담은 에세이집 출판이라는 아이템을 생산해내는 고마운 공간으로 탈바꿈하기도 했고. “2천만원 정도 제작비가 들었다. 이것은 종합일간지 광고 2번 정도의 돈이다. 하지만 영화로 가는 정서적 접근을 용이하게 함은 물론이고 그 이상의 광고효과를 누릴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간 영화와 관련된 책의 출판은 보통 스타들의 사진으로 이루어진 이미지북이 대부분이었던 데 비해 컨셉북 <버스, 정류장>은 메인타겟으로 잡은 20대 후반의 여성들이 좋아할 만한 소설가 신경숙을 비롯해 영화감독 김지운, 정지우 영화감독, 만화가 정훈이 등 스물두명의 문화계 인사들의 글을 받아 묶여졌다. 게다가 개인적인 경험이 녹아 있는 이 책은 스토리라인을 쫓아가기보다는 인물을 통해 자꾸만 자신을 되돌아보게 만드는 영화의 성격과 일맥 상통한다.
영화 외적 방법으로 확대된 마케팅
튜브뮤직의 음반차트 판매순위를 보면 얼마전 신보를 낸 아이돌그룹 SES 다음으로 <루시드 폴 버스, 정류장>이 2위로 랭트되어 있다. 현재 7천장이 넘게 팔린 이 음반은 “있는 장점은 극대화, 정서적으로 접근한다”는 전략의 일부분이었다. 영화의 감성과 잘 닿아있는 루시드 폴의 음악은 영화클립을 재편집하는 형식이 아니라 영화를 위해 따로 제작된 뮤직비디오에 실려 개봉보다 훨씬 일찍 관객들을 찾아 긍정적인 반응을 이끌어내었다.
“뮤직비디오는 기본적으로 극단적인 클로즈업이나 리드미컬한 편집으로 승부가 나는 건데 영화는 보통 그보다는 풀샷과 롱테이크가 많다. 그래서 영화의 기본 내용은 전달하되 영화적인 리얼리티에서 조금은 자유로워질 수 있는 화면을 새로 제작해보는 것도 효과적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가장 상업적으로 관객을 만나는 예고편 역시 뮤직비디오 영상을 이용함으로써 액션영화가 아니고서야 다소 밋밋할 수 있는 영화 예고편의 단점을 보완했다. 이 외에도 공식 홈페이지가 나오기 전인 작년 12월부터 포탈 사이트 팟찌나 엠파스와 연계해 가동한 티저 홈페이지에는 ‘소희의 이야기’ ‘재섭의 이야기’ 등, 온라인 스토리가 순서대로 진행되면서 네티즌들의 관심을 끌었고, 지난 2월 컨셉북 출판기념회, 3월1일 루시드 폴의 콘서트를 겸한 시사회 등을 잇따라 가졌다.
물론 <버스, 정류장>이 선택한 정서적 마케팅이 옳았는지는 3월8일이 되어야 판명이 날 것이다. 하지만 마케팅의 개념을 영화 내적인 데서만 찾지 않고 외적으로 확장시킨 것을 비롯, <버스, 정류장>이 보여준 일련의 적극적인 마케팅 방식들은 “이 영화를 보아야 할 사람들이 보지 못하고 스쳐가는 낭패가 없도록” 하는 선에서 분명 의미있는 것으로 기억될 것이다. <버스, 정류장> 마케팅 책임 명필름 박재현 팀장 인터뷰
“출판편집자도 되었다가, 공연기획사 직원도 되었다가”
개봉을 앞두고 잠잘 시간도 없이 바쁘게 뛰어다니느라 충혈된 눈이었지만 “<버스, 정류장> 관련 일이라면 쓰러져도 한다”는 각오로 이른 인터뷰에 응한 박재현 팀장은 기본적인 마케팅, 홍보과정 외에도 공연기획사, 출판사 업무까지 겸해야 했던 이 예사롭지 않았던 영화에 대해, “모험한 만큼 얻은 것도 많은 영화”라고 말한다.
초반 컨셉잡기부터 만만치 않았겠다.
일단 멜로영화의 범주에 포지셔닝을 했지만 신파멜로가 아니기 때문에 더욱 치밀한 컨셉과 다양한 접근방식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기존의 멜로영화의 성공과 실패를 분석해보면 결국 쉽고 명확하게 잡히는 컨셉의 영화가 성공하더라. 어린 여자와 나이든 남자가 서로의 상처를 알아본다, 는 이야기 속에서 ‘나이차’와 ‘상처’라는 말에 주목했다. 2001년부터 이어지는 흐름을 짚어볼 때 애매함 없이 확실하게 풀어주는 것과 다소 자극적일 필요가 있다고 봤고, 그렇게 나오게 된 것이 ‘17+32’라는 지금의 카피다.
1차적인 영화홍보 외에도 컨셉북 발간 등 부가적인 일들이 많았다.
다양한 접근방식으로 이해하면 되는데 일단 <버스, 정류장>이라는 제목만으로도 여러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워낙 보편적인 공간이다보니 그 속에 사연도 이야기도 많을 거란 판단 아래 정서적인 마케팅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색다른 뭔가’에 필이 꽂히는 바람에 나온 ‘포스터는 홍콩가서 찍자’는 말이나 커플 티셔츠 제작은 실행되지 못했지만 뮤직비디오 별도 제작, 뮤지션 음반을 겸한 O.S.T 발매, 에세이집, 멜로적인 느낌의 캔커피 광고 등은 진행되었다. 그러다보니 영화사 직원이 출판사 직원도 되었다가 공연기획사 직원도 되는 카멜레온적인 생활을 해야 했다.
루시드 폴이라는 뮤지션과의 작업이 이채롭다.
음악쪽은 심보경 이사가 주로 진행을 했는데 조윤석, 즉 루시드 폴과는 <씨네21> 황혜림 기자가 다리를 놓아준 인연으로 이루어졌다. 초반에는 <동감>의 임재범, <엽기적인 그녀>의 신승훈 등의 케이스처럼 익숙하고 유명한 가수로 갈까 하는 생각을 안 해본 건 아니었지만 어쩐지 영화에는 어울리지 않는 옷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루시드 폴의 음악과 영화가 절묘하게 맞아떨어졌고 결과적으로 너무 만족한다.
그전에 <…JSA> 홍보를 책임진 걸로 안다. 이번 영화마케팅과 비교한다면.
물론 지금껏 ‘따논 당상’이었던 영화는 없었다. <…JSA>도 뚜껑열기 전까진 별다른 큰 기대를 받지 못했다. 군대이야기라 칙칙하겠다는 선입견과 몰이해를 뚫고 나가야 했으니까. 하지만 거기엔 빅스타가 있었다. 송강호, 이영애, 이병헌 같은 경우엔 별다른 요구 없이도 언론홍보가 자연스럽게 이루어졌던 데 비해 이번엔 언론노출에 대한 스트레스가 적지 않았다. 내가 송강호면 이런 부탁 안 한다, 는 말을 해야 했던 순간도 있었으니까. (웃음) 하지만 ‘잦은 노출’보다는 ‘노출을 어떻게 이용하느냐’가 더욱 중요하다고, 그저 스타의 얼굴로 밀고 나가자는 생각보다는 영화를 제대로 많이 알리자는 생각이 더욱 컸다. ▶ <나쁜 남자> <버스, 정류장> <질투는 나의 힘> 마케팅 사례 연구
▶ 전략1 <나쁜 남자> 감독을 브랜드화하라
▶ 전락2 <버스, 정류장> 관객의 감성에 다가가라
▶ 전략3 <질투는 나의 힘> 관객의 힘을 빌려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