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일곱 살 소희를 연기한 김민정씨는 올해 갓 스물이다. 지난해 한양대 연극영화학과에 입학했지만 한 학기밖에 다니지 못했다. 소희 때문이다. “촬영에 몰두하기 위해 휴학했어요. 소희가 한 학기를 잡아먹은 거죠.”<버스, 정류장>의 소희는 연기하기 쉬운 캐릭터가 아니다. 열일곱의 나이에 세상의 부조리를 거의 다 알아채버린 데다 상처와 환멸이 지우기 어려울 만큼 깊다. 소희란 캐릭터와 자신의 공통점이 있느냐고 묻자 그는 펄쩍 뛴다. “너무도 다르죠. 원조교제나 자살 같은 일들은 신문지상에선 많이 봤지만 제 주위에선 보지 못했어요. 그렇지만 소희라는 아이를 연기하는 일은 매우 흥미로웠어요. 말투와 행동도 재미있지만 어른들도 감당하기 힘든 조숙한 아이라는 설정이 매력적이었죠. 직접 소희처럼 깊은 상처를 겪어보진 못했지만, 그런 아이를 표현하는 일에 거부감은 없었어요. 사람들은 누구든 상처를 입고 살아가게 마련이잖아요? 크든 작든. 다른 사람들이 상처라 여기지 않더라도 자신에겐 아픈 데가 있을 수 있잖아요. 그런 느낌으로 소희의 마음이 되려고 노력했어요.”영화는 상처 입은 두 사람의 만남에 관한 이야기이면서 ‘성숙’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연기하면서 사실은 저도 많이 성숙했다는 느낌이어요. 소희나 재섭이 흔히 볼 수 있는 캐릭터는 아니잖아요? 그런 이들의 내면을 이해하려고 고민하다 보니 나 자신도 조금은 컸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러면서도, “진실이 뭔지 아세요? 거짓이요!”라는 소희의 대사는 “지금도 이해가 안 간다”고 털어놓을 만큼 솔직하고 당차다는 점이 그와 소희의 공통분모일 것같다.성인 연기자로선 이번 작품이 처음이지만, 그는 이미 지난 93년 <키드캅>이란 영화에 아역으로 출연한 바 있다. 텔레비전 드라마의 아역 배우로는 12년의 경력을 쌓았다. “아역을 오래 한 경우 연기 변신에 성공하지 못하는 경우가 더러 있는데, 전 그러고 싶지 않아요.” 이번 작품이 그에게 남다른 의미를 지니는 건 이 때문이다. “영화를 찍으면서 ‘배우’라는 자의식이 훨씬 강하게 들었어요. 깊이 있는 작업을 집중해서 하는 점도 좋았구요.” <버스, 정류장>에서처럼 작품과 캐릭터에 대한 진지한 자세와 ‘배우’로서 자의식을 버리지 않는다면, 그가 배우의 길을 가는 데 다른 걸림돌은 없지 않을까.이상수 기자▶ <버스정류장> 너도 세상과 담 쌓고 살았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