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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영식] 비즈니스 프로듀서 양성이 시급하다

한국영화아카데미 유영식 신임 원장

“다시 한번… 생각해보세요.” 그 말을 끝으로 엘리베이터의 문이 닫혔다. 엘리베이터 안에 혼자 남겨진 유영식 한국영화아카데미 신임 원장은 말 그대로 “벙쪘다”. 한국영화아카데미 원장에 새로 임명돼 아카데미 후배인 최익환 전임 원장(11기)에게 “팁”을 들으러 갔다가 헤어지며 들은 말이란다. ‘후임’을 향한 ‘선임’으로서의 경고이자, “막중한 책임이 요구되는 힘든 자리”란 의미로 막역한 선배에게 건네는 걱정어린 충고였다. 그의 경고와 충고는 제대로 맞아떨어졌다. 2014년 11월12일부터 임기를 시작한 유영식 원장은 “겨우 적응을 마치고 한창 정신없는 나날을 보내는 중”이다. 유영식 원장은 연세대학교 건축공학과를 졸업한 뒤 한국영화아카데미 9기로 입학했고 ‘헝그리 정신’으로 산전수전 다 겪고 나서 아카데미를 졸업했다. <아나키스트>(2000)로 감독 데뷔를 했고 <아카시아>(2003) <화이트: 저주의 멜로디>(2011) 등의 프로듀서로도 활발히 활동하며 기획 노하우를 쌓았다. ‘본진’인 아카데미로 돌아와 개혁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유영식 원장의 발걸음을 잠시 붙들고 안부를 물었다.

-먼저 피해갈 수 없는 질문이, 관련 제도 개정 계획으로 영화진흥위원회의 영화등급분류 면제추천을 받지 못해 취소된 한국영화아카데미 31기 졸업영화제에 관한 것이다.

=취임 직후 초유의 사태를 맞아 적잖이 당혹스러웠다. 무엇보다 학생들의 충격이 컸다. 어쨌든 이런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다행히 3월6일부터 8일까지 원래 프로그램대로 열릴 예정이다.

-취임 직후 개인적인 ‘첫 출근 기념식’도 있었나.

=출근 첫날, 책장 정리를 했다. 정체 모를 파일이 쌓여 있기에 뭔가 싶어 보니 오래전 박기용 원장님 때부터 최익환 원장 때까지의 각종 아카데미 관련 기록이었다. 예전에는 요즘처럼 SNS가 있을 때도 아니니 그렇게 기록했나 보더라. 학생들에 대한 개인적인 원망과 험담을 포함해 별별 얘기가 다 있었다. (웃음) 그거 읽느라 한참 시간을 보냈다. 덕분에 시스템을 파악하는 데 크게 도움이 됐다.

-한동안 서원대학교 공연영상예술학과 교수로 있으며 현장을 떠나 있었는데, 어떤 이유로 아카데미 원장직에 출사표를 던졌나.

=2011년부터 현장을 잠시 떠나 학교에 있으며 워크숍 강의에 집중했다. 그전에 제작사 운영할 땐 작가, 프로듀서, 감독들과 거의 동시에 두 작품 이상 개발하며 바쁘게 살았다. 그러다보니 개인적으로 산업 자체에 싫증이 나더라. 나를 좀더 다듬기 위해 뭐가 필요할까 고민하다 회사 법인까지 다 정리하고 학교로 갔다. 주로 워크숍을 교육하다보니 아카데미 시절 생각이 많이 났다. 마침 원장임용 공고가 났고 선배 몇분이 권유하는 전화를 주셨다. 아카데미 20주년 행사 때 ‘성인식’을 잘 이끌었던 모습을 유능하게 봐주신 모양이다. (웃음)

-2003년 한국영화아카데미 20주년 기념 행사 때의 <이공> 프로젝트는‘업적’이지 않았나. 기획의 힘이었다. 오래전 VHS 대여점 시절 <이상한 영화>라는 시리즈를 성공적으로 기획한 경험도 있다.

=<이상한 영화>는 지금도 자부심을 갖고 있다. (웃음) 1995년 최초로 한국 단편영화들을 묶어 비디오 시리즈로 만든 일이다. <걸어서 하늘까지> <그대 안의 블루>를 제작한 세경영화사가 도산하면서 그 정보를 바탕으로 태일영상이 세워졌다. 마침 친구가 태일영상에 적을 두고 있어서 <이상한 영화>라는 타이틀로 한국영화아카데미 베스트 졸업 단편들을 묶어 비디오로 출시했다. 김의석 감독의 <창수의 취업시대>, 변혁•이재용 감독의 <호모비디오쿠스>, 김태균 감독의 <잠시 멈춰서서>, 장준환 감독의 <2001 이매진>, 봉준호 감독의 <지리멸렬>, 허진호 감독과 내가 공동 연출한 <고철을 위하여>가 실렸고 영화마을에서 배급을 맡았다. 아카데미 출신이라 하면 현장에서 텃세가 심하던 시절이라 우리의 존재를 알리는 게 중요했다. 동숭아트센터를 빌려서 출시 기념 시사회도 야심차게 열었는데 자리가 없어 되돌아간 사람만 100여명이 넘을 정도로 성황이었다. 뿌듯했지. (웃음)

-‘선배’들이 전화 준 데엔 기획뿐만 아니라 추진력에 대한 기대도 있었던 모양이다.

=잘해볼 생각이다. 교육 파트에 대한 고민도 하고 있지만 내가 현장에서 제작 일 하며 얻은 노하우를 장편제작연구과정에 녹여보고 싶다. 스크린X나 3D파트 등 신기술에 대한 전문화 과정도 필수다. 플랫폼을 발굴하고 배급 라인을 탄탄히 하는 것도 중요하다. 이 모든 영화제작과정이 아카데미 한곳에서 이루어진다. 전세계 어디를 뒤져도 이만한 잠재력을 갖춘 영화학교가 없다. 영화학교에서 극장용 장편을 만드는 것 자체가 드문 사례이긴 하다. 심지어 배출한 감독만 해도 한둘이 아니잖나. 앞으로 세계 10대 영화학교 반열에 한국영화아카데미를 올려놓고 싶다.

-장편제작연구과정에 대한 개편안은 어느 정도로 계획돼 있나.

=저예산이지만 학생들은 퀄리티에 대한 욕심이 있어서 스탭도 베테랑을 고용하고 싶어 한다. 예산과 퀄리티가 어쩔 수 없이 부딪치는 상태로 9년이 지났다. 힘들어요, 배고파요, 하는 불만의 목소리는 예나 지금이나 같다. 가난한 영화제작사를 운영하고 있는 기분이 들더라. 이 구조를 수정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당연히 예산 확보가 우선이다. 아카데미가 국가기관이다보니 수치로 판명되는 성과에 대해 생각보다 신경을 안 쓰는데 앞으로를 생각하면 관객을 모으는 것도 중요하다. 배급 플랫폼을 다각화할 필요도 있다.

-장편제작연구과정 7기 홍석재 감독의 <소셜포비아>는 극장 개봉을 앞두고 있다.

=안국진 감독의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도 올해 중 공개할 예정이다. 기획 단계인 애니메이션도 한편 있다. 국내 최초의 3D 옴니버스영화 <신촌좀비만화>처럼 KAFA+ NEXT 3D 옴니버스 프로젝트로 만들고 있는 단편 세편도 모두 촬영 중이다. <신촌좀비만화>의 경험을 바탕으로 더욱 명확한 마케팅 플랜을 짜려고 한다. (웃음) <신촌좀비만화>는 3D 성과를 과신해 마케팅에 실패한 사례다. 기본적으로 국고사업이기 때문에 실패를 거듭해선 지속이 불가능하다. 대신 앞으로 발굴에 의의를 두고 배우는 신인 위주로 꾸릴 생각이다. 그래도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에 노개런티로 참여해준 이정현씨처럼 호기심과 호의로 출연해주는 스타들이 있다면 더없이 고마울 거다.

-올해는 마스터클래스도 강연 형태가 아닌 워크숍 위주로 확장한다.

=지난번 정두홍 무술감독, 정도안 특수효과감독 마스터클래스의 반응과 결과가 무척 좋았다. 구체화된 안은 아니지만 여배우 마스터클래스도 구상 중이다. 파워 있는 여성 ‘마스터’를 찾고 있다. 올해부턴 워크숍도 워크숍에서 끝내는 게 아니라 결과물을 더 다듬어서 완성도 있는 단편 콘텐츠로 만들어볼 생각이다. IPTV 등 새로운 배급 라인을 찾아 일반 관객을 만나게 하거나 영화제에 출품할 수도 있지 않겠나.

-지난해엔 배리어프리영화위원회와 협력해 KAFA+ 배리어프리전문작가과정 및 배리어프리전문PD과정도 신설했다. 지난해 연말엔 2015년 계획이 추상적으로 논의된 것으로 알고 있다. 올해의 구체적인 안이 나왔는지 궁금하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교육과정에 대해 구체적인 계획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 배리어프리영화위원회,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 등 시청각장애인 관련 단체가 많다. 이러한 단체들의 협력구조와 소관 문제가 깔끔히 정리되는 것이 먼저일 듯하다. 우리가 협력할 수 있는 부분은 영화 관련 교육부문뿐인데 정책이 얽혀 있는 게 많아 여전히 고민 중이다. 차차 정리해 나가려 한다.

-신임 원장으로서 2015년 한국영화아카데미의 가장 중요한 목표를 한마디로 정리한다면.

=효율적인 업무 정리와 집중이다. 학생, 교직원, 교수들의 초목표가 희미해져 있는 상황인 것 같다. 부분적 매너리즘이랄까. 애니메이션 과정을 보강하고, 한동안 없었던 프로듀서 과정을 되살릴 생각이다. 여기서 프로듀서로 훈련받아 나간 뒤에도 현장에선 제작부 막내부터 시작할 수밖에 없는 경우들을 보면서 고민이 많았다. 이번엔 현장에서 두 작품 이상 참여한 경력자 위주의 학생들로 뽑고, 장편제작연구과정과 연계해 졸업과 동시에 전문 프로듀서로 바로 투입될 수 있게끔 고쳐보는 게 목표다.

-전임 원장 시기에 없어졌던 프로듀서 과정을 재개한 이유는 뭔가.

=완벽한 비즈니스 프로듀서를 양성해야 하는 이유는 확실하다. 해외정책과 관련해 논의를 하다보면 감독들은 영화제 등을 통해 세계에 알려지는 것이 가능한데 비즈니스 측면에서 우리의 시스템과 콘텐츠 자체를 알리고 교류의 폭을 넓히는 부분은 대단히 미약하다. 이 부분에서 전문적으로 뛰어줄 인력이 시급하다. 특히 극장용 애니메이션 쪽은 전문 프로듀서가 반드시 필요하다. 대개 국내 창작애니메이션은 개인적으로 작업하는 감독들이 많다. 창작자들이 마케팅, 프로듀싱 등 영화 외적인 일까지 요령 있게 해내긴 힘든 상황이다. 그 씨앗을 보호하고 키워줄 수 있도록 상업적인 감각을 지닌 프로듀서가 반드시 붙어줘야 한다. 지금 한국 영화계도 그런 크리에이티브한 프로듀서를 필요로 하고 있다.

-극장용 애니메이션에 전문 프로듀서가 필요하다고 판단한 건 어떤 직접적인 계기가 있었던 건가.

=여러 간담회에 참석하며 기업체들이 극장용 애니메이션 시장에 관심이 많은 걸 알게 됐다. 또 애니메이션 전공자들은 대개 바로 자기 작품을 만들 수 없으니 게임회사나 웹툰 시장으로 진출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순수한 극장용 애니메이션 시장은 완전히 빈집인 거다. 그 빈 땅에 씨앗을 심어야 한다. 애니메이션에서도 중요한 건 스토리, 시나리오다. 투자자들에게 튼튼한 시나리오랑 파일럿까지 들고 다니면서 보여줘야 한다. 튼튼한 극장용 애니메이션 시나리오는 어디서 공부하나? 아카데미가 제일 잘하는 게 그거다. 크리틱 과정 유명하잖나. (독설로) 두들겨패면서 가르친다. (웃음) 졸업한 학생들 사이에서도 “가장 끔찍했지만 가장 많은 걸 배운 수업이었다”는 얘기가 많다. 시나리오 개발할 학생을 세명으로 압축해 선발했다. 한명은 2년 동안 장편애니메이션 만들도록 프로듀싱할 계획이고, 두명은 기업과 연계해 월급 줘가며 기업의 아이템을 시나리오화하고 파일럿까지 제작하게 할 생각이다. 기획과 공동제작으로 한국영화아카데미 이름 포함하고, 수익이 나면 발전기금 명목으로 아카데미에도 조금 나눠주고. 많이 주면 더 좋고. (웃음) 교육이란게 1, 2년 해서 될 게 아니다. 이렇게만 꾸준히 해도 5년에서 10년 사이엔 분명 엄청난 게 나올 거라고 믿는다.

-청사진이 대단하다. 아카데미 원장으로서의 자신의 색깔을 정의한다면.

=박기용 원장님은 호인이셨지만 학생, 교수들에겐 엄격한 원장이셨다. 아카데미의 역량을 다각화한 최익환 원장은 반대로 교수들에게 열려 있는 사람이었고 학생들은 철저하게 교육하는 편이었다. 나는 글쎄. 정해진 색은 없는데. 아마 앞으로 1년 정도 지나면 교직원들이 평가해주지 않을까. (웃음) 나도 아카데미 학생이었으니 학생의 생각을 먼저 파악해주는 학교가 좋은 학교란 걸 안다. 조금 먼저 생각하고 튼튼한 플래닝을 하자는 것이 우선 각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