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수정>의 키워드가 `기억'이었다면 <생활의 발견>은 `모방'이다. 남녀 사이에 한쪽이 컵을 들 때 새끼손가락을 내뻗는 버릇 따위를 다른 쪽이 따라하는 건 다른 영화에서도 자주 등장한다. <생활의 발견>은 이런 자잘한 습관에서부터 한 인간의 행동을 결정하는 동인에 이르기까지 모방의 외연을 확장시킨다.20대의 경수(김상경)가 있다. 연극배우였다가 영화로 옮겼는데 일이 잘 안 풀린다. 영화 출연계획이 무산되자 춘천 사는 한 선배에게 들렀다가 부산의 부모에게 갈 작정으로 여행을 떠난다. 춘천에서 무용학원을 하는 명숙(예지원)을 만나 하룻밤을 보낸다. 그러나 다짜고짜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사랑해”라고 말해달라는 푼수같은 명숙이 부담스럽다. 게다가 알고보니 명숙은 경수의 춘천 선배의 애인이었다. 재수 옴 붙었다는 기분으로 부산 가는 기차를 탔다가 거기서 경주 사는 유부녀 선영(추상미)을 만난다. 선영을 쫓아 경주로 새고, 집까지 뒤쫓아가 불러내 몸을 섞는다. 어찌보면 재수좋은 남자이지만 조금씩 경수의 멍청한 구석이 드러난다. 서울서 만난 영화감독의 말을 따라하더니, 술 마실 때 몸을 좌우로 흔드는 춘천 선배의 버릇도 무심결에 배운다. 더 심각한 건 선영에 대한 자기의 생각을 사랑이라고 단언하고 “사랑해”라고 연거푸 말한다. 이건 명숙을 모방한 거다. 자기 행동의 동기를 스스로 부여하는 능력을 결여한 경수나 그와 애정행각을 벌이는 두 여자 모두 웃긴다.<생활의 발견>은 홍상수 감독 작품가운데 관객이 가장 많이 웃을 수 있는 영화가 될 것 같다. 문제는 이들이 보이는 멍청하고 엉뚱한 모습이 꼭 남의 것만 같지 않다는 데 있다. 그 안에서 자신이나 주변 사람들이 보인다. 그래도 홍 감독의 전작들 만큼 불편하게 만들지는 않지만, 사랑마저 자기 방식으로 하지 못하고 헤어질 때도 남에게 들은 대로 따라하는 경수의 모습이 오랫동안 여운을 남긴다. 그 잔상은 처연하고 씁쓸하다.홍 감독은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 <강원도의 힘>에서 `너희들(또는 우리들) 왜 그렇게 사는거야?'라고 묻다가 <오! 수정>에서는 `사는 게 다 그렇지'라며 관객을 다독거렸다. <생활의 발견>은 사는 게 다 그렇다는 전제 아래 사람들의 행동 방식을 생태학자처럼 관찰한다. 그 표정은 고릴라를 살피는 제인 구달처럼 부드럽지만 거기서 끝내 실체없는 사랑까지 모방하는 인간 군상의 속절없는 행태를 찾아내고야 만다.임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