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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성치 영화’는 어떻게 완성되었나
주성철 2015-02-05

여덟 번째 연출작 <서유기: 모험의 시작>까지, 주성치 감독론

<서유기: 모험의 시작>은 주성치의 8번째 감독 작품이다. <007 북경특급>(1994)과 <007 북경특급2>(1996)를 통해 그는 ‘감독 주성치’의 면모를 알렸는데, 사실상 팬들 입장에서는 그가 감독을 맡았건 배우로 출연만 하건 ‘주성치 영화’라는 점에서 그 크레딧을 딱히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게다가 두 영화는 주성치 단독 연출작이 아니라 각각 이력지와 곡덕소라는 조력자가 공동감독으로 이름을 올렸다(말하자면 유위강, 맥조휘 공동감독 <무간도> 같은 시스템). 그처럼 주성치와 감독으로 인연을 맺은 친구들을 경유하여 <소림축구>(2001)를 통해 단독 연출로 우뚝 선 ‘감독 주성치’의 현재를 돌아본다.

<식신>의 곡덕소

주성치와 이소룡

이력지의 경우 이후 <식신>(1996)과 <희극지왕>(1999)까지 주성치와 공동감독으로 호흡을 맞췄다. 두 사람의 우정은 아주 오래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주성치의 또 다른 출세작이라 할 수 있는 무협 드라마 <개세호협>(1991)에서 시작된 그들의 인연은 이후 이력지가 연출을 맡은 <신격대도>(1991), <당백호점추향>(1993) 등으로 이어지며 승승장구했다. <도학위룡> 시리즈와 <무장원 소걸아>(1992) 등을 함께한 진가상 감독, <녹정기> 시리즈나 <도협2>(1991), <구품지마관>(1994) 등을 함께한 왕정 감독, <서유기: 월광보합>과 <서유기: 선리기연>을 함께한 유진위 감독 등도 감독 주성치를 만든 주인공들이라 할 수 있으나(물론 이중에서 가장 큰 영향을 준 사람을 꼽으라면 <쿵푸허슬> 제작자이기도 한 유진위다) 아무래도 절친한 ‘동년배’라는 입장에서 보면 단연 이력지가 첫머리에 선다. 주성치만큼이나 ‘말장난’의 달인인 그는 직접 각본까지 썼으며 2000년대 들어서는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기도 했다. 물론 <007 북경특급2>에서 덥수룩한 매생이 코털을 뽐내는 궁의 신하로 출연하기도 하는 등 이른바 ‘주성치 사단’의 배우로도 큰 족적을 남겼다.

<007 북경특급2>를 공동감독한 것 외에 이력지처럼 <식신>과 <산사초>(1997)에 배우로 출연하기도 했던 곡덕소 또한 지금의 감독 주성치에게 많은 영향을 준 사람 중 하나다. 주성치 영화 인생에 있어 단 한번의 카메오 출연이라 해도 틀리지 않을 성룡, 서기 주연 <빅 타임>(1999)에 그가 지나가는 경찰 역할로 얼굴을 비춘 것도 바로 곡덕소의 연출작이었기 때문이다. <가유희사 2009>(2009), <남인여의복>(2012), <육복희사>(2014) 등 주로 코미디 장르에 일가견을 보여온 그 또한 주성치나 이력지 못지 않은 ‘말발’의 소유자다. 아마도 주성치의 팬이라면 <식신>에서 배우로 출연해 주성치에게 ‘배신을 때리던’ 뚱보 이력지를 잊지 못할 것이다.

주성치의 첫 번째 단독 연출작 <소림축구>

공동감독이라 할지라도 주성치 ‘개인’의 향기가 짙게 풍기는 작품은 역시 <희극지왕>부터라고 할 수 있다. 무명 엑스트라로 살아가는 주인공 주성치의 모습에서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그의 자전적인 요소를 발견할 수 있다. 홍콩영화 중 <희극지왕>만큼 공간의 정서가 깊이 배어든 영화는 없을 텐데, 마을 복지회관에서 손님 하나 없는 연극을 하는 주성치와 그를 구경하는 꾀죄죄한 동네 사람들, 쓰러질 듯 쓰러지지 않으며 세월을 버텨온 회관마당의 늘어진 나무 등으로 이뤄진 정서가 주성치 전체 필모그래피의 어떤 분기점처럼 자리한다. 흥미로운 것은 <희극지왕>에서도 주성치가 이소룡에 대한 오마주를 바쳤다는 점이다. 동네 어르신과 꼬마들을 모아놓고 연극 <뇌우>와 이소룡의 <정무문>을 공연했던 것. 물론 <정무문>의 ‘진진’(이소룡) 역할에 너무 몰입한 나머지 관객 장백지의 복부를 강타하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감독 주성치를 이루는 가장 큰 요소 중 하나는 바로 이소룡이다. 그것은 오래전 영화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홍콩 란타우섬의 한 소박한 마을 타이오를 배경으로 삼은 <도성타왕>(1990)에서 주성치는 이소룡을 너무나 좋아한 아버지(원화) 때문에 ‘주소룡’이라는 이름으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만나는 사람들마다 자신이 과거 이소룡의 <정무문>(1972)에 출연했던 기억을 떠벌리며 이소룡이 자신의 사형이라고 으스댄다(실제로 배우 원화가 스턴트맨으로 활동하던 시절 <정무문>의 단역으로 출연했으니 딱히 틀린 얘기는 아니다). 그러한 영향관계는 이후 제목부터 노골적인 <신정무문> 시리즈나 <쿵푸허슬>에도 드러난다. 더불어 <도성타왕>에는 이소룡적인 것 외에 감독 주성치를 드러내는 요소 중 하나인 ‘뮤지컬’적인 형태의 장면도 등장한다. 여주인공 모순균과 뮤지컬을 하듯 율동을 펼치는 주성치의 모습은 이후 <소림축구>나 <쿵푸허슬>에서도 발견할 수 있으며, 언제나 팬들 사이에서는 명장면으로 회자된다.

<007 북경특급2>의 이력지

<서유기>로 거의 모든것을 새롭게 시작하다

코미디적인 측면에서 보자면, 감독 주성치는 과거 홍콩영화 코미디의 원조라 할 수 있는 ‘허씨 3형제’의 계승자이자 무협 신필 김용의 마니아라 할 수 있다. <미스터부> 시리즈로 유명한 허관문, 허관영, 허관걸 ‘허씨 3형제’는 바로 홍콩 코미디영화의 원조나 다름없다. 특히 주성치처럼 감독을 겸하며 소시지를 쌍절곤처럼 돌리던 <반근팔량>(1976)의 허관문은 황당무계 혹은 서민적 광둥어 코미디의 전형이라는 점에서 주성치의 직속선배다. 주성치가 이소룡과 더불어 가장 존경한다고 말하는 영화인이 바로 허관문이기도 하다. 일상적인 구어체 말장난, 기존 영화들의 현대식 패러디가 가장 큰 무기였다. 특히 할리우드 인기 영화들을 비롯해 남의 영화를 거침없이 끌어와 난도질하는 키치정신은 주성치에게 큰 영감을 줬다. 물론 한국식 개봉 제목이긴 하지만 <홍콩 레옹>(1995)과 <홍콩 마스크>(1995)에서도 경계를 넘나드는 주성치식 코미디를 엿볼 수 있다.

<신룡교>라는 속편까지 내놓은 <녹정기>에서 주성치는 홍콩 스타들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꿈꿔봤을 김용 소설의 주인공이 됐다. 김용이 창조한 캐릭터 중 가장 현실적이고 세속적인 인물로 평가받는, 그러니까 엉큼하고 약삭빠르고 거짓말을 서슴지 않는 위소보의 모습은 주성치와 너무나 잘 어울렸다. 아니, 주성치를 통해 결코 미워할 수 없는 매력적 캐릭터로 완성됐다. 아마도 이룰 수 없는 사랑에 눈물 흘리는 <서유쌍기>의 인간다운 지존보(주성치)의 모습은 그렇게 천천히 만들어지기 시작한 것일 테다. 바로 그 <서유쌍기>의 프리퀄이라 할 수 있는 <서유기: 모험의 시작>을 보면서 가장 놀라운 연출은 역시 삼장법사와 손오공의 과거를, 이전 시리즈를 떠올릴 수 없게끔 과감하게 해체한 시도였다. <서유쌍기>에서 말이 많아서 손오공에게 얻어맞기까지 했던 삼장법사(나가영)는 <서유기: 모험의 시작>에서 순수하고 진지하며 어떤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는 미소년이다. 반면 <서유쌍기>에서 자신이 직접 출연까지 했던 손오공의 경우 거의 <반지의 제왕>의 ‘골룸’처럼 우스꽝스럽고 표독하게 묘사한다. 자신의 8번째 연출작이되 직접 출연하지 않은 유일한 영화를 만들면서, 거의 모든 것을 새롭게 시작하려는 의지로 읽혔다.

더 놀라운 것은 컴퓨터그래픽 등 특수효과에 매진하면서 ‘규모’ 그 자체에 대한 유혹을 미련없이 버렸다는 점이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소오강호>(1990)나 <동방불패>(1991), 가까이는 ‘<와호장룡>(2000) 이후’라 할 수 있는 무협 블록버스터의 난마전 속에서 <서유기: 모험의 시작>은 지극히 아기자기하다. 현장(문장)을 유혹하는 단소저(서기)가 마치 ‘연애조작단’처럼 사건을 꾸며 접근하는 모습은, 왕년의 주성치 영화를 떠올리게 할 정도로 귀엽기까지 하다. 뻔한 얘기지만 주성치는 언제나 주성치다. 물론 <서유기: 모험의 시작>은 다시 단독연출이 아닌 홍콩 영화계의 한창 주목받는 감독 곽자건과 공동연출한 작품이다. 그럼에도 그의 오랜 팬들이라면 ‘주성치 영화’라는 서명은 전혀 흔들림이 없다고 느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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