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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 히어로] 공주님, 왕자님은 개뿔!
이주현 2015-01-26

디즈니가 마블과 손잡고 만들어낸 애니메이션 <빅 히어로>

디즈니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와 마블의 첫 콜라보레이션 작업물인 <빅 히어로>는 치료용 목적으로 개발된 로봇 베이맥스와 천재소년 히로의 우정을 바탕으로 한 슈퍼히어로영화다. 마블과 디즈니, 두 집안의 궁합은 꽤 잘 맞아 보인다. 지금까지의 디즈니 애니메이션과 결을 달리하는 <빅 히어로>의 매력을 짚어봤다.

마법에 걸린 공주 자매의 이야기 <겨울왕국>은 누가 뭐래도 디즈니 영화였다. <겨울왕국>을 보고 픽사나 드림웍스를 떠올리는 사람은 여태 보지 못했다. 디즈니는 자신들이 가장 잘할 수 있는 것을 선보임으로써 옛 영광을 되찾았다. 디즈니의 신작 애니메이션 <빅 히어로>는 그러한 <겨울왕국>의 대척점에 놓여 있는 작품이다. 10대 소년의 감성으로 무장한 <빅 히어로>는 어딘가 디즈니 애니메이션답지 않다(마치 디즈니다운 영화가 뭔데, 라고 자신만만하게 항의하는 듯한 느낌도 든다). 로봇 격투 장면으로 시동을 걸고, 슈퍼히어로 군단을 조직하면서 예열하고, 악당과의 대결로 속도를 높이는 짜임새는 흡사 마블의 영화를 연상케 한다. 맞다! <빅 히어로>는 마블과 디즈니 애니메이션이 처음으로 손 맞잡고 만든 작품이다. 디즈니와 마블이 만났고, 슈퍼히어로 군단은 공주님과 왕자님이 있어야 할 자리를 완벽히 대체한다. 디즈니의 감성과 유머, 마블의 액션과 스펙터클이 멋지게 조화를 이룬다. 사실 동명의 마블 코믹스가 원작이지만(코믹스 및 영화의 원제는 <Big Hero 6>), 돈 홀 감독의 표현에 따르면 코믹스에서는 그저 “영감”만 얻었다. “제목과 캐릭터만 가져왔을 뿐 이야기는 완전히 새롭게 창조했다.” 마블쪽에서도 ‘마블 유니버스’는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고 허락했다. 상상력의 한계는 애초에 없었다. 돈 홀 감독과 크리스 윌리엄스 감독은 자유롭게 디즈니만의 “오리지널 스토리”를 구축할 수 있었다. 그것은 현명한 선택이었다.

마성의 캐릭터, 베이맥스

“디즈니에선 영화를 만들 때 어른을 위한 영화, 아이를 위한 영화, 여자아이를 위한 영화, 남자아이를 위한 영화를 구분하지 않는다. 남녀노소 모두가 좋아할 만한 영화를 만든다. 아이도 좋아하고 어른도 좋아할 수 있는 이야기의 연결고리를 찾는 게 스토리텔링의 핵심이다.” 프로듀서 콘 로이의 얘기다. <빅 히어로>는 베이맥스라는 힐링로봇을 통해, 히로와 베이맥스의 관계를 통해 그 연결고리를 찾는다. 가상의 도시 샌프란소쿄(샌프란시스코+도쿄). 로봇 전투에 빠져 허송세월하던 열네살 천재소년 히로(라이언 포터)는 로봇공학을 공부하는 형 테디(대니얼 헤니)를 따라 SFT공과대학에 입학한다. 그러나 입학이 결정된 행사장에 이유를 알 수 없는 화재가 발생하고, 히로는 하나뿐인 가족인 형 테디를 잃는다. 히로에겐 형이 개발한 힐링로봇 베이맥스(스콧 애짓)가 덩그러니 남겨진다. 히로와 베이맥스의 동거가 출발부터 완벽했던 것은 아니다. 상실감에 빠진, 정서적으로 불안정한 사춘기 소년에게 베이맥스가 내리는 처방은 껴안아주기 같은 낯간지러운 위로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베이맥스를 사랑하지 않을 도리는 없다. 아이언맨, 캡틴 아메리카, 헐크 등 마블의 간판 히어로들보다 힘에선 한참 밀리지만 귀여움으로는 절대 밀리지 않는 베이맥스는 시도 때도 없이 사람들의 건강을 체크하는 건강 도우미 로봇이다. 마시멜로 같은 감촉에 곰처럼 푸근한 외형. 다리가 짧아 빨리 걷지 못하고, 배가 나와 좁은 골목을 통과하지 못하는 등 이상한 신체비율에서 비롯한 실수투성이 행동들이 오히려 베이맥스의 귀여움을 증폭시킨다. 베이맥스가 이토록 사랑스럽지 않았다면 <빅 히어로>는 결코 밝고 따뜻한 슈퍼히어로영화가 되지 못했을 것이다. 형의 죽음에 의문을 품은 동생이 괴짜 동료들과 함께 악당을 무찌르는 이야기에 특별히 새로움은 없다. 단순한 이야기 구조에 꽤 큰 감동 한방. 그것이 <빅 히어로>의 스토리텔링 전략이다. 그 과정에서 베이맥스는 영화의 유머와 함께 감동의 처음과 끝을 책임진다. 수백년간 지구의 폐기물을 처리하며 자신만의 라이프스타일을 만들어낸 <월•Ⓔ>의 월•Ⓔ 이후 오랜만에 만나는 귀여운 감성로봇이다.

베이맥스는 사람의 손발을 대신하는 로봇이 아니라 사람의 몸과 마음을 치유하는 로봇이란 점에서 특별하다. 사람을 해치지 못하게끔 프로그래밍됐고, 환자가 치료에 만족해야만 프로그램이 종료된다. 돈 홀 감독은 베이맥스를 창조하는 과정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이제껏 아무도 보지 못한 로봇을 창조하는 것이 이 영화의 큰 도전이고 어려움이었다. 로봇에 관한 모든 것을 조사했다. 영화에 등장하는 로봇들의 그림도 죄다 방에 붙여놓았다. 월•Ⓔ는 물론이고 R2D2와 C3PO 등. 그러다 카네기멜론대학의 크리스 앳킨슨 교수를 만나면서 우리가 생각했던 로봇을 발견했다. 첨단 의료산업 분야에서 개발 중인, 비닐 재질의 푹신한 공기 팔을 지닌 로봇을 보고 영감을 얻었다.” 로봇의 디자인은 처음부터 복잡하게 갈 의도가 없었다. 최소한의 디자인으로 최대한의 감동을 주는 “Less is More”의 정신으로 탄생한 것이 지금의 베이맥스다. “로봇이 너무 인간을 닮으면 오히려 사람들이 거부감을 느끼게 된다는 언캐니 밸리(uncanny valley) 이론에 다들 동의했다. 인간을 닮은 로봇이 아니라 껴안고 싶은, 심플한 디자인의 로봇을 만들고자 했다.” 애니메이터들은 두개의 점과 하나의 선으로 이루어진 베이맥스의 얼굴에 여러 감정을 입히는 고난도의 작업을 수행해야 했는데, 그 과정에서 “이것은 애니메이션(animation)이 아니라 어니메이션(unimation)이다”라며 작업의 고됨을 표현했다고 한다(부정 접두사 ‘un’을 붙여 애니메이션이 아닌 것, 애니메이션의 영역을 넘어선 일을 자신들이 하고 있다는 뜻에서).

일본의 영향이 지나치게 많다고?

다양한 인물 표현과 정교한 배경 표현을 가능하게 한 데니즌과 하이페리온 기술은 애니메이터들의 노고를 덜어주었다. 데니즌은 캐릭터의 특징을 여러 경우의 수로 조합해 다양한 인물을 만들어내는 캐릭터 관리 시스템이고, <빅 히어로>에 처음 쓰인 신기술 하이페리온은 빛의 반사를 정확히 표현해주는 렌더링 기술이다. 빛의 굴절과 반사를 정확히 표현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닌데, 하이페리온 기술을 활용하면 보다 현실적인 빛 반사를 표현할 수 있다고 한다. 샌프란시스코의 위성 지도를 활용해 언덕의 가파름 정도, 빌딩의 높이 등을 계산해 시뮬레이션 모델을 만들었고, 그렇게 완성된 21만개의 가로등, 26만 그루의 나무, 1800만개의 빌딩이 샌프란소쿄를 꽉 채운다. 마치 실제 사람들이 복작복작 어울려 사는 것 같은 가상의 도시가 탄생한 것이다.

<빅 히어로>의 디자인에서 또 하나 특징적인 것은 동서양 문화를 적극적으로 혼합했다는 점이다. 제작진은 샌프란시스코와 도쿄를 한데 섞어 샌프란소쿄라는 가상의 도시를 만들었다. 샌프란시스코의 가파른 언덕길 양옆에 벚꽃나무가 줄지어 서 있고, 샌프란시스코의 랜드마크인 금문교와 케이블카 사이사이 일본풍 가옥과 골목길이 늘어서 있다. 거기다 행운을 가져다준다는 고양이 인형 마네키네코가 빈번하게 영화에 등장한다. 콘 로이는 말했다. “샌프란시스코를 기반으로 다양한 문화적 요소를 반영하고 싶었다. 실제 우리의 현실도 그렇지 않은가. 호주의 어느 거리를 걷든 런던의 어느 거리를 걷든 다양한 문화가 섞인 세상에 살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이것은 미야자키 하야오가 자신의 작품에서 표현해왔던 것이기도 하다.” 베이맥스가 힐링로봇에서 전투로봇으로 변신할 때, 히로가 새 프로그램에 저장하는 무술도 일본의 가라테다. <빅 히어로>의 두 감독이 재패니메이션, 일본의 망가, 전대물(다수-대개는 다섯명이 팀을 이뤄 악당을 물리치는 내용의 일본의 특수촬영물)에 지나치게 영향을 받은 것은 아니냐고? 돈 홀 감독의 대답은 이렇다. “<빅 히어로>를 만들며 수많은 영화를 참조했다. 로버트 레드퍼드의 <보통사람들>도 있고, 리들리 스콧의 <블레이드 러너>도 있고. 개인적으로는 <아키라>와 미야자키 하야오의 팬이다.” 베이맥스, 히로와 함께 ‘빅 히어로 6’를 구성하는 괴짜 친구들 고고, 와사비, 허니레몬, 프레드 역시 다양한 문화적 배경을 가진 인물로 나온다. 그중 고고는 한국인 캐릭터로 설정됐다.

콘 로이는 디즈니와 마블의 결합을 두고 “매시 업”(mash up)이라는 표현을 썼다. 두 가지 이상의 것을 잘 섞는다는 뜻의 ‘매시 업’은 <빅 히어로>를 설명하는 중요한 키워드다. 디즈니는 자신들이 이제껏 시도하지 않았던 방식으로 파격을 선보인다. 그래서 <겨울왕국>보다 신선하다. 이토록 펑키한 디즈니 애니메이션은 <빅 히어로> 이전까지 보지 못했다.

한국 배우, 한국 스탭

<빅 히어로>에는 한국계 배우 두명이 목소리 연기에 참여했다. 대니얼 헤니가 베이맥스를 개발한 테디의 목소리를 연기했고, <씬시티: 다크 히어로의 부활> <행오버2> 등에 출연한 제이미 정이 스피드광 고고의 목소리를 연기했다. 목소리를 의식하며 듣다보면 테디의 얼굴이 대니얼 헤니의 얼굴처럼 보이는 순간이 찾아온다. 김시윤 수석 캐릭터 디자이너가 고고 캐릭터를 디자인했고, 김상진 캐릭터 디자인 슈퍼바이저는 2D 캐릭터를 CG 캐릭터로 전환하는 작업을 총괄했다.

스탠 리를 찾아라

마블의 아버지, 스탠 리 찾기 놀이는 <빅 히어로>에서도 계속된다(애니메이션이라고 빠지면 섭섭하니까). 일단 프레드의 집이 공개되는 장면에서 눈을 크게 뜨자. 그리고 엔딩 크레딧이 모두 올라갈 때까지 자리를 지키자. 쿠키영상에서 스탠 리는 깨알 같은 개그를 선사한다. 돈 홀 감독은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의 쿠키 영상을 보고 패닉에 빠져, 애초 계획에 없던 쿠키 영상을 만들게 됐다”고 제작 비하인드 스토리를 들려줬다. “스탭 중 25명만이 스탠 리가 등장하는 쿠키 영상이 비밀리에 만들어지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최종 작업이 끝나고 마지막 파티 때 서프라이즈 영상으로 공개했더니 사람들이 다들 좋아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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