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보다 맑은>은 한국 독립애니메이션계에서 주목받고 있는 한지원 감독의 4편의 단편을 묶은 옴니버스 형식의 영화다. 4편의 성격을 하나로 아우를 수 있는 키워드는 없어 보이지만 4편을 희미하게 관통하며 흐르는 감독의 고민은 ‘현재’이다. 현재의 불안한 소망들을 ‘희망’이라는 이름으로 견뎌내보라고, 영화는 조용히 제안한다.
2편씩 나누어 볼 수도 있다. ‘돈벌이’가 되지 않는 전공에 넉넉지 않은 집안 사정까지 감당해야 하는 대학생이 우연히 신인 여배우와 만나면서 겪는 감정의 변화를 그린 <럭키 미>와 ‘메탈신의 계시’를 받았다고 믿는 열혈 메탈소녀와 부모의 반대로 록밴드를 탈퇴해야 하는 친구의 이야기를 담은 <코피루왁>이 현재를 살고 있는 청춘들의 ‘꿈과 현실’이라는 흔하지만 끝나지 않을 대당을 다루었다면, <사랑한다 말해>와 <학교 가는 길>은 애니메이션만이 가질 수 있는 상상력에 좀더 무게를 싣고 있다. <사랑한다 말해>에서 직장 상사와 비밀 연애를 하며 무뚝뚝한 그에게서 사랑한다는 말을 듣고 싶은 은솔의 꿈은 집안에 갇혀 바깥세상을 동경하던 <학교 가는 길>의 강아지 ‘마로’의 꿈과 닮아 있다.
돈과 공이 더 많이 들어간 매끄러운 애니메이션에 익숙한 관객이라면 낯설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저예산 독립’이라는 말이 애니메이션 앞에 붙었을 때 개봉이 얼마나 어려운지 생각해준다면 이렇게 우리 앞에 도착한 것만으로도 고마운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