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살 소녀 지소(이레)는 엄마(강혜정), 동생과 함께 자동차에서 살고 있다. 피자 가게를 하던 아빠가 가게가 망한 다음 집을 나갔기 때문이다. ‘평당 500만원’이라고 적힌 부동산 광고를 보고 그 돈만 있으면 ‘평당’이라는 동네에 집을 구할 수 있다고 믿은 지소는 사례금을 노리고 개를 훔치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엄마를 해고한 레스토랑 마르셀의 괴팍한 사장(김혜자)의 개 월리를 납치 대상으로 점찍는다.
바버라 오코너의 원작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은 구조는 단순하지만 이야기는 진지하고 현실적인 소설이다. 남루하고 눅눅한 삶을 담은 그 소설에는 500만원을 둘러싼 귀여운 착각이나 우아한 갑부 노부인, 하이힐을 신고 일하는 천진난만한 엄마는 없다. 이 정직한 소설을 있는 그대로 영화로 만들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그래서 영화는 치장을 시작했다. 낡은 공책에 적은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은 그림책 뺨치게 꾸몄고, 마르셀을 둘러싼 음모와 사장의 비밀이 추가됐다. 가족간의 사랑을 눈물로 강조하는 것은 물론이다. 이 모든 게 재미있어지라고, 감동적인 영화가 되라고 한 노력일 텐데 결과는 그저 그렇다. 자질구레한 에피소드와 예쁘게 꾸민, 드라마에서는 의미 없는 장면이 많고, 그래서 딴 데 쓸 시간이 없다 보니 피상적인 배경 이상의 역할을 하는 인물이 거의 없고, 음모와 비밀이라는 것도 치졸하다. 원작에서 살아남은 건 ‘꼬마가 개를 훔친다’는 설정 하나뿐. 그래도 판권 산 보람은 있으니 이 영화에서 제일 재미있는 것도 그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