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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 속의 댄서> <파리 텍사스>의 로비 뮐러
2002-03-06

재미없는 이미지와의 투쟁

촬영감독 로비 뮐러에게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의 <어둠 속의 댄서>(2000)는 전통적으로 촬영감독에게 기대되는 것 이상을 요구하는 힘든 작업이었다. 그러나 라스 폰 트리에의 작품은 곧 그를 매료시켰고, 흔쾌히 이 도전을 받아들인 뮐러는 지금껏 시도하지 않았던 새로운 촬영을 선보인다. 지난한 현실의 삶을 살아가지만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던 셀마의 푸른빛 환상은 뮐러의 세례를 받아 스크린에 그 모습을 드러낸다.

기찻길 뮤지컬 장면의 경우, 장비일체를 프레임 바깥이나 건초더미, 나무 뒤로 숨기고 100대의 카메라를 설치하여 촬영이 진행되었다. 카메라를 트레일러로 연결하였고 그 안에 20대의 모니터가 있었는데, 이 20대의 모니터가 각각 다섯번만 형태를 조절하면 100대의 카메라가 담고 있는 이미지 모두를 볼 수 있는 것이다. 시네마스코프 렌즈를 사용했기 때문에 카메라에 비친 이미지는 굴절돼 있는데도, 모니터의 간단한 내부조작은 그 이미지를 본래의 모습으로 바꿔놓을 수도 있었다. 이렇게 철저히 계획된 시스템의 통제 한 호흡으로 처리된 뮤지컬 장면은 비욕의 음울한 음색과 어우러지면서 관객의 영혼을 울릴 촉매제로 역할을 훌륭히 수행해낸다.

<어둠 속의 댄서>의 영상은 고도의 테크놀로지와 정교한 시스템의 산물이지만, 이 영상의 지휘자 로비 뮐러가 가장 최근까지도 흑백 화면의 아름다움을 추구한 고전주의자라는 사실은 흥미롭다. 빔 벤더스의 함께 한 일련의 문제작들에서 로비 뮐러는 미니멀리즘에 가까운 모노톤의 미장센이 빠르고 화려한 색채 영상보다 훨씬 강렬한 정서적 호소력을 지닐 수 있음을 입증했다. 라이 쿠더와 함께, 결핍의 심연과 상실의 상처를 화면에 여백에 담아낸 로비 뮐러는 빔 벤더스의 진정한 미학적 동반자였다. 그러나 또한편 로비 뮐러는 현존하는 촬영하는 감독 가운데 디지털로 대표되는 첨단 테크놀로지에 가장 적극적인 인물이기도 하다.

1940년 네덜란드 태생으로 인도네시아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뮐러가 영화와 인연을 맺은 것은 조국인 네덜란드로 돌아와서이다. 작가, 뮤지션, 화가들과 함께 교류하면서 암스테르담에 있는 영화학교에서 정식적인 교육을 받게 되고, 졸업 뒤 독일에서 어시스턴트 카메라맨으로 촬영생활을 시작한 그는 당시 어시스턴트 감독으로 일을 하던 빔 벤더스와 만난다. 이때 벤더스의 데뷔작이기도 한 <알라바마>를 촬영하면서 첫 인연을 맺었다. 벤더스와의 만남은 마치 인물의 머릿속에나 들어간 듯 그려낸 <파리, 텍사스>의 황량한 풍광으로 뇌리에 새겨진다. 그러나 ‘벤더스의 카메라맨’이라는 꼬리표가 내심 우습게 여겨졌던 그는 이후 여러 감독들과 다양한 작업을 통해 자신의 영역을 점차 넓혀나간다.

이즈음 벤더스를 통해 알게 된 짐 자무시와의 만남은 그에게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해준다. <다운 바이 로>의 콘트라스트 강한 흑백의 영상은 그를 수식하는 하나의 수식어가 된다. 필요 이상의 정보를 배제한 채 작품 자체의 스토리에 주력하게 만드는 흑백의 세계는 뮐러를 사로잡았다. 색으로 표현될 수 있는 모든 회색을 총망라한 듯한 <데드맨>에서 뮐러의 강렬하면서도 선명한 영상은 한껏 도드라진다. 이후 라스 폰 트리에와 함께 작업한 <브레이킹 더 웨이브>에서 뮐러는 자연스러운 빛을 살리는 데 주력한다. 다큐멘터리 형식의 이 영화는 핸드헬드 카메라로 촬영하였으며, 필름으로 찍고 다시 비디오로 전환하고 그것을 다시 필름으로 인화하는 방식의 시도를 한다. 벤더스와 함께한 디지털영화 <부에나비스타 소셜 클럽>으로 다시 한번 촬영감독으로의 자신의 역할에 대한 물음을 제기하면서 결국 <어둠 속의 댄서>에서 새로운 테크놀로지인 디지털과 전면적으로 조우한다. 언제나, 그는 쉼없이 도전하고 모험했다.

그럼에도 정작 뮐러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좋은 영화의 조건은 스토리이다. “촬영을 못해도 좋은 이야기는 전개될 수 있지만, 아무리 촬영을 잘했다 하더라도 실패한 영화를 구제할 수는 없다.” 촬영에 임하는 그의 태도 또한 이것과 멀지 않다. 함께 해나가는 영화작업에서 자신의 역할만이 중요한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아는 겸손함이 바로 그것이다. 첨단의 기술에도 변하지 않는 기본기는 촬영의 달인으로 오늘을 사는 그의 신념이자, 철학이다. 이화정/ 자유기고가 zzaal@hanmail.net

촬영

(24 Hour Party People, 2002) 마이클 윈터보텀 감독

<톰과 제시카>(My Brother Tom, 2001) 돔 로세로 감독

<인 더 붐붐 룸>(In the Boom Boom Room, 2000) 바버라 코플 감독

<어둠 속의 댄서>(Dancer in the Dark, 2000) 라스 폰 트리에 감독

<고스트 독>(Ghost Dog: The Way of the Samurai, 1999) 짐 자무시 감독

<부에나비스타 소셜 클럽>(Buena Vista Social Club, 1999) 빔 벤더스 감독

<섀터드 이미지>(Shattered Image, 1998) 라울 루이즈 감독

<탱고 레슨>(The Tango Lesson, 1997) 샐리 포터 감독

<브레이킹 더 웨이브>(Breaking the Waves, 1996) 라스 폰 트리에 감독

<구름 저편에>(Al di la delle nuvole, 1995)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 빔 벤더스 감독

<데드맨>(Dead Man, 1995) 짐 자무시 감독

<돼지가 날 때>(When Pigs Fly, 1993) 사라 드라이버 감독

<형사 매드독>(Mad Dog And Glory, 1993) 존 맥노튼 감독

<세상의 끝까지>(Until the End of the World, 1991) 빔 벤더스 감독

<도시와 옷에 놓인 공책>(Aufzeichnungen zu Kleidern und Stadten, 1989) 빔 벤더스 감독

<미스터리 트레인>(Mystery Train, 1989) 짐 자무시 감독

<작은 악마>(Il Piccolo diavolo, 1988) 로베르토 베니니 감독

<빌리버스>(The Believers, 1987) 존 슐레진저 감독

<술고래>(Barfly, 1987) 바벳 슈로더 감독

<커피와 담배2>(Coffee And CigarettesII, 1986) 짐 자무시 감독

<다운 바이 로>(Down By Law, 1986) 짐 자무시 감독

<롱샷>(The Longshot, 1986) 폴 바텔 감독

<늑대의 거리>(To Live And Die In L.A., 1985) 윌리엄 프리드킨 감독

<보디 록>(Body Rock, 1984) 마르셀로 엡스타인 감독

<파리, 텍사스>(Paris, Texas, 1984) 빔 벤더스 감독

<리포 맨>(Repo Man, 1984) 알렉스 콕스 감독

<트리처스>(Tricheurs, 1983) 바벳 슈로더 감독

<데이 올 래프트>(They All Laughed, 1981) 피터 보그다노비치 감독

<허니서클 로즈>(Honeysuckle Rose, 1980) 제리 스캇츠버그 감독

<세인트 잭>(Saint Jack, 1979) 피터 보그다노비치 감독

<미스터리>(Mysteries, 1978) 폴 드 루사네 감독

<유리 천장>(Die Glaserne Zelle, 1978) 한스 쥐센도르프 감독

<왼손잡이 여자>(Die Linkshandige Frau, 1977) 피터 행크 감독

<미국 친구>(Der Amerikanische Freund, 1977) 빔 벤더스 감독

<야생오리>(Die Wildente, 1976) 한스 쥐센도르프 감독

<시간이 흐르면>(Im Lauf Der Zeit, 1976) 빔 벤더스 감독

<빗나간 동작>(Falsche Bewegung, 1974) 빔 벤더스 감독

<도시의 엘리스>(Alice in den Stadten, 1974) 빔 벤더스 감독

<주홍 글씨>(Der Scharlachrote Buchstabe, 1972) 빔 벤더스 감독

<패널티 킥을 맞은 골키퍼의 불안>(Die Angst Des Tormannes Beim Elfmeter, 1971) 빔 벤더스 감독

<도시의 여름>(Summer In The City, 1970) 빔 벤더스 감독

<죠나단>(Jonathan, 1970) 한스 쥐센도르프 감독

<알라바마>(Alabama: 2000 Light Years, 1969) 빔 벤더스 감독

<토엣>(Toets, 1968) 팀 톨른 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