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Magazine > 칼럼 > TView
[유선주의 TVIEW] 이 기시감, 우연은 아니겠지

OCN 오리지널 드라마 <나쁜 녀석들>이 연상시키는 영화들

스릴러나 누아르 장르를 즐겨본다면 장소나 사건으로 작품을 굴비 엮듯 쭉 나열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이를테면 <이스턴 프라미스>의 터키탕 격투 다음에 <아저씨>에서 장기밀매업자들의 아지트였던 터키탕 액션을 놓고, <공모자들>에서 수술대가 놓인 목욕탕에서의 장기밀매 장면을 배열하는 식이다. 2002년작 <복수는 나의 것>에서 장기밀매업자의 아지트는 기둥만 있고 외벽이 트인 빌딩이었다. 공사 중인 고층 건물은 이후 한국 영화와 드라마에 손에 꼽기 벅찰 정도로 자주 등장했는데, 조폭의 아지트, 접선, 납치 등 주로 황량한 이미지를 반복하던 이곳은 <신세계>에 이르러선 이중구(박성웅)의 사무실 겸 바(Bar)로 호화롭게 꾸며졌다.

이렇게 반복되는 장소들을 연결하고 좌표를 그리고 점을 찍다보면 어느 시기에 밀집된 유행을 읽을 수도 있고, 어떤 시기냐에 따라 같은 장소가 다른 맥락을 얻을 수도 있다. 플롯이나 캐릭터, 액션 등과 마찬가지로 장소나 사건 역시 현지화를 거치고 반복되는 동안 원본과 다른 층이 생기는 재미를 얻는다. 사설이 길었던 이유는 당대 장르물의 각종 코드와 핫 플레이스를 모조리 찍고 돌아다니는 드라마가 나타났기 때문이다. 영화채널 OCN의 오리지널 드라마 <나쁜 녀석들>이다.

경찰 오구탁(김상중)이 청장의 밀명으로 장기수들을 모아 꾸린 임시 수사본부가 낡은 성당인 것으로 시작해, 목욕탕 장기밀매, 살인의 후처리를 위해 비닐을 친 작업장, 공사 중인 빌딩의 조폭 아지트처럼 눈에 익은 장소는 물론이고, 10화에선 <무간도>와 <신세계>의 뒤를 이은 조폭의 사찰 장례까지 등장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순직한 경찰의 장례식에 비가 온다거나, 우비를 입은 살인마, 낚시터에서 소일하는 경찰 간부 등 온갖 클리셰를 집대성한 <나쁜 녀석들>은 OCN ‘오리지널’ 드라마라는 표현이 농담처럼 느껴진다. 게다가 4, 5, 6화에서 표절 의혹이 불거진 <저지 드레드> <잭 리처> <더 콜>은 모두 OCN에서 TV 방영한 영화들이다.

오리지널만큼 그 뒤를 잇는 이야기들에도 큰 흥미를 느끼고, 어떤 장면이나 아이디어가 유사해도 계보를 그리는 것으로 재미를 얻을 수 있으나, 이 정도로 노골적이면 양산형 장르물을 뽑아내는 기계라도 갖춘 게 아닐까 괴상한 상상을 하게 된다. <신세계>를 보면서 수도 없이 <무간도> 시리즈를 떠올렸지만 기업과 회사원으로 의태하는 조폭의 모습은 <무간도>와는 다른 세계를 납득시켰고, <나쁜 녀석들> 역시 그래주길 바랐다. 최종회만 남긴 지금은 뭐랄까, 푸드코트의 샘플음식들을 진열한 쇼윈도 앞에 선 기분이다. 마초형사 오구탁의 얼굴에 드리운 짙은 그늘은 몹시 매혹적인데, 그의 멱살을 잡은 조폭 박웅철(마동석)이 친절하게도 성당 천장에서 핀 조명이 떨어지는 지점으로 밀어붙일 때는 실소가 터지더라. 군침 당기는 모형에 떨어지는 조명이 생각났다.

+ α

유미영 경감은 찬밥인가

<나쁜 녀석들>의 배우들은 흠잡을 데 없는 연기로 찬사를 받지만 유독 유미영 경감(강예원)만큼은 미스 캐스팅으로 비난당하는 일이 잦다. 그녀를 변호하자면, 앞사람 말을 반복하거나 되묻는 대사가 태반이고 범죄자보다 못한 추론을 내놓고 발끈하는 역할이 주어지는 상황에선 연기의 여신이 캐스팅된다 해도 매력적이긴 어려울 것이다.

관련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