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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춘기를 통과하는 소녀의 성장 과정 <버진 스노우>

평범한 중산층 가정, 성실한 남편과 열일곱살 딸을 둔 엄마, 이브(에바 그린)가 갑자기 사라진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무덤덤한 부부 생활을 해왔던 아빠도, 까닭 모를 엄마의 히스테릭한 행동에 지쳐 있던 딸, 캣(셰일리 우들리)도 그 사실이 그렇게 놀랍지 않다. 작은 소동처럼 이브의 실종 사건이 단순 가출로 결론나고 캣과 아빠는 일상의 평온함을 되찾는다. 몇년 후, 대학 입학과 함께 고향을 떠났던 캣은 방학을 맞아 집으로 돌아오고, 우연히 친구들의 이야기 속에서 엄마의 실종에 더 큰 비밀이 숨겨져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버진 스노우>는 로라 카지스키의 소설 <눈보라 속 하얀 새>(White Bird in a Blizzard)를 원작으로 하고 있으며, 90년대 ‘뉴 퀴어 시네마’의 대표적 감독 그렉 아라키가 연출을 맡았다(‘처녀설’(處女雪)이라는 뜻의 ‘버진 스노우’는 국내 개봉 제목이다).

엄마의 실종 사건과 그 속에 숨겨진 비밀이 전체 이야기를 끌고 가는 가장 큰 동력임에 분명하지만, 영화는 엄마가 왜 사라졌는지를 묻는 대신 사춘기 소녀 캣이 엄마의 부재를 어떻게 받아들이는지에 주목한다. 엄마가 사라진 다음 캣은 엄마와 있었던 지난 일들을 회상하기 시작한다. 캣의 기억 속에서 꼬마였던 자신을 애완용 새끼고양이처럼 귀여워했던 엄마는 어느 순간 여성으로 성숙해가는 딸의 육체를 질투 어린 시선으로 훔쳐보고, 딸의 섹스에 과도할 정도로 집착하는 히스테릭한 여자로 변해간다. 탄탄한 남성미를 갖춘 남자친구 필을 보면서 캣은 자신의 아빠가 엄마를 전혀 만족시켜주지 못했다는 사실도 알게 된다. 육체적으로는 완벽한 여자가 되었지만 정신적으로는 아직 완벽하게 성장하지 못한 사춘기 소녀 캣의 머릿속에서 재구성된 이 모든 ‘육체적’ 정황은 엄마의 실종을 가출로 받아들이도록 만들어준다. 사건의 진실이 제대로 밝혀지는 것은 영화의 후반부, 그러니까 캣이 부모로부터 정신적, 육체적으로 독립해 온전한 성인으로 거듭난 다음이다. 이때 그렉 아라키는 영화를 캣의 일인칭 시점으로 진행시킴으로써 사춘기를 통과하는 소녀의 성장 과정을 세심하게 묘사해낸다.

물론 무엇보다 눈에 띄는 건 두명의 여배우 셰일린 우들리와 에바 그린이다. <디센던트>로 얼굴을 알리고 <다이버전트> 시리즈 주인공으로 스타덤에 오른 셰일린 우들리와 <몽상가들>과 <다크 섀도우> <씬 시티: 다크 히어로의 부활> 등을 통해 ‘뇌쇄적 관능미’의 대명사로 자리잡은 에바 그린의 존재감은 예상대로 상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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