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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를 만들어버리자!
이주현 2014-12-09

<인터스텔라> <다크 나이트> 네이선 크롤리 Nathan Crowley

<프레스티지>

Filmography

<인터스텔라>(2014) <다크 나이트 라이즈>(2012) <존 카터: 바숨 전쟁의 서막>(2012) <퍼블릭 에너미>(2009) <다크 나이트>(2008) <프레스티지>(2006) <레이크 하우스>(2006) <배트맨 비긴즈>(2005) <베로니카 게린>(2003) <인썸니아>(2002) <에너미 라인스>(2001) <에버래스팅 피스>(2000) <더 테일 오브 스위티 바렛>(1998)

크리스토퍼 놀란이 <배트맨> 3부작을 만들자 사람들은 배트모빌을 만든 이는 누구이며 고담시를 재현한 이는 누구인지 덩달아 궁금해하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네이선 크롤리라는 이름은 크리스토퍼 놀란과 짝패로 붙어다녔다. 놀란의 <인썸니아>에서 해가 지지 않는 백야의 알래스카를 선득하고 신경질적인 공간으로 표현한 네이선 크롤리는 이후 <인셉션>을 제외한 놀란의 모든 작품에 프로덕션 디자이너로 참여했다. 그가 늘 놀란과 작업한 것은 아니다. <인썸니아>와 <배트맨 비긴즈> 사이에 조엘 슈마허의 <베로니카 게린>을, <배트맨 비긴즈>와 <프레스티지> 사이에 키아누 리브스와 샌드라 불럭 주연의 멜로영화 <레이크 하우스>를, <다크 나이트>와 <다크 나이트 라이즈> 사이에 <퍼블릭 에너미>와 <존 카터: 바숨 전쟁의 서막> 프로덕션 디자인을 담당했다. 하지만 크롤리를 말할 때 마이클 만의 <퍼블릭 에너미>나 앤드루 스탠튼의 <존 카터: 바숨 전쟁의 서막>을 거론하는 사람은 보지 못했다. 크롤리와 놀란은 그 누구보다도 ‘리얼리티’에 집착하는 남자들이다. 놀란은 이런 얘길 했다. “네이선은 세트의 크기에 흥분하지 않는다. 그는 현실에 존재하는 것들의 사이즈에 더 흥분 하는 사람이다.” 이 말은 놀란에게도 그대로 적용 가능하다.

<인터스텔라>의 우주선

6개월간 옥수수를 길렀다

놀란과 마찬가지로 크롤리도 영국 런던 태생이다. 영국 브라이튼 폴리테크닉에서 3D 디자인을 공부한 뒤 잠시 건축 일에도 몸담았다. 1990년에 미국으로 건너간 그는 파라마운트 스튜디오 맞은편에 위치한 멜로즈의 어느 바에서 런던의 아트스쿨에서 함께 수학했던 친구를 만난다. 친구는 당시 스티븐 스필버그의 <후크>(1991)에 스탭으로 참여하고 있었고 크롤리에게 일자리를 소개해준다. <후크>의 세트 디자이너로 일하게 된 크롤리는 프로덕션 디자이너 노먼 가우드(<미져리> <엔트랩먼트>) 밑에서 당시로선 충격적인 프로덕선 디자인의 세계를 경험한다. 노먼 가우드는 18세기 영국 해군 함선인 HMS 빅토리호 크기만 한 배를 실제로 제작해 세트장에 띄웠다. 크롤리는 당시를 “혼란스러웠다”는 표현으로 회상한다. 규모의 한계를 깨부수게 해준 작업이 <후크>였다면, 이후 참여하게 되는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의 <드라큐라>는 퍼펫과 미니어처를 활용한 미술의 세계, 착시효과를 이용한 연출의 세계에 눈뜨게 해준다. “<후크>는 내게 거대한 세트를 짓는 법을 알려주었고, <드라큐라>는 카메라의 경이를 가르쳐주었다.”

빅어처이건 미니어처이건, 크롤리에게 중요한 것은 ‘실재하는 것’ 혹은 ‘실재하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다. <배트맨 비긴즈>의 배트모빌 ‘텀블러’나 <다크 나이트 라이즈>의 ‘더 배트’는 영화에서 보여지는 것과 똑같은 크기로 제작되었다. <인터스텔라>에 등장하는 3대의 우주선 역시 실제 크기로 제작되었다. “우리는(크리스토퍼 놀란과 나는) 나사(NASA)와 함께 자란 세대라서 로켓 발사에 대한 설렘이 있다. 영화 속 우주선도 새롭고 진화한 동시에, 친숙한 모습으로 만들기로 했다.” 크롤리의 설명처럼, <인터스텔라>의 우주선 발사 장면엔 다함께 카운트다운을 외치며 로켓 발사 중계 장면을 TV로 시청하던 세대의 어떤 향수가 담겨 있다. 그리고 12개의 조각으로 분리 가능한 회전체 형태의 인듀어런스호의 디자인은 단연 새롭고 혁신적이다. 나아가 놀란과 크롤리는 4.5t이 넘는 우주선을 우주 행성 촬영지였던 아이슬란드로 싣고 갔다! “우주선이 아이슬란드의 수면 위나 얼음 위에 있는 모습을 촬영하고 싶었다”는 놀란의 의지 때문이었다.

‘최대한 사실적인’ 그림을 얻으려는 놀란과 크롤리의 집념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크롤리는 영화 속 쿠퍼(매튜 매커너헤이)네 옥수수밭을 직접 경작했다. 놀란은 “작물을 경작하기 부적합해 보이는 곳에서 옥수수가 자라고 있는 실제 모습”을 카메라에 담고 싶어 했고, 크롤리는 캐나다 캘거리에 30만평이 넘는 옥수수밭을 일구었다. 그리고 6개월간 옥수수를 길렀다. 어떻게 보면 이건 미친 짓이다. 보통의 프로덕션 디자이너라면 너무도 비효율적인 이런 작업 방식을 쉽게 수긍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크롤리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듯하다. “사람들이 비주얼 이펙트를 사용하는 것 이외의 방법들을 잊어버린 것 같다.”

현실적이고 아름다운

<인터스텔라>의 호이트 반 호이테마 촬영감독은 네이선 크롤리를 두고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단순히 경치를 찍어내는 것이 아니라 그곳에 사는 사람들까지 담아내려 했다. 그리고 네이선의 세트 디자인은 언제나 현실적이어서 아름답다.” 크롤리는 관객을 속이지 않을 때 관객이 진짜로 느끼게 된다고 믿는 프로덕션 디자이너다. <다크 나이트 라이즈>의 촬영감독 월리 피스터도 말했듯 “과시하지 않는 방식으로 풍경과 규모를 전달하는 프로덕션 디자이너는 극소수”다. 크롤리는 그 극소수 중 한명이며, 그렇게 장인처럼 일한다.

<레이크 하우스>의 호수 위 통유리집

<레이크 하우스>의 호수 위 통유리집

네이선 크롤리는 <시월애>의 할리우드 리메이크작인 <레이크 하우스> 작업을 하면서 통유리집을 한채 지었다. 샌드라 불럭과 키아누 리브스가 시차를 두고 편지를 주고받는 이 영화에서, 크롤리가 설계한 호수 위의 통유리집은 주인공들보다 더 인상적이다. 자연과 하나된 이 집은 촬영이 끝난 뒤 철거됐는데, 이 집을 너무나도 마음에 들어 했던 샌드라 불럭은 어느 인터뷰에서 이렇게 얘기했다. “그 집을 내가 유지할 수도, 옮길 수도 없었다. 최소한 게스트하우스로라도 사용할 수 있으면 좋을 텐데 그럴 수 없어 무척 실망했다.” 참고로, 건축가 아버지를 둔 크롤리는 어린 시절 아버지가 직접 디자인한 유리로 만든 집에서 자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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