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끝별 시인의 말에 따르면 “돈이 자본주의의 꽃이라면, 시는 인간 정신 혹은 인간 언어의 꽃이다”. <경향신문>에 연재했던 글을 묶은 <돈 詩>는 같이 피는 법이 별로 많지 않아 보이는 두 꽃을 나란히 꽂아두고 완상하는 글모음이다. 문정희 시인의 <성공시대>는 이렇게 흐른다. “어떻게 하지? 나 그만 부자가 되고 말았네/ 대형냉장고에 가득한 음식/ 옷장에 걸린 수십 벌의 상표들/사방에 행복은 흔하기도 하지. (후략)” 약간의 돈으로 맛볼 수 있는 행복의 감정. 시인은 성공하고 말았다 웃으며 덧붙인다. “이제 시만 폐업하면 불행 끝.” 뭐든 손닿는 데 있는 세상에서 돈이 되지 않는 어떤 것을 사랑하여 겪는 어려움. 시뿐 아니라 글을 쓰는 많은 사람들이 공유할 문제이겠으나 천양희 시인은 시가 저축이라며 운을 뗀다. “시를 쓰니 세상에 빚 갚는 것이고/ 의지할 시를 자식처럼 키우니 저축 아닌가.”
고은 시인의 <재회>라는 시는 돈의 근본적 성격과 시인 자신의 삶을 같이 드러내는 단막극 같은 긴장감이 있는, 결말이 인상적인 작품이다. 고은 시인은 네 번째 감옥에서 나온 뒤, 그러고도 연금당한 날에, 돈 천원짜리에 새 한 마리를 그려 다른 돈과 함께 썼다. 6년이 지나 1998년 2월16일, ‘그’ 새 그림을 그려놓은 천원짜리가 돌아왔다. 경기도 안성에서 쓴 것이 제주도 KAL호텔 앞 술집에서. 나와 돈 사이에 대화가 오간다. 야 네가 웬일이냐-오랜만이다. 김수영 시인의 <돈> 역시 그런 이유로 “내 돈이 아닌 돈”이라고 노래한다. 어쨌든 오고, 간다, 돈다. 이 책에는 <씨네21>의 필진으로 멋진 칼럼들을 보여주고 있는 권혁웅 시인의 <김밥천국에서>(제목부터 21세기 한국의 돈냄새가 물씬 풍기는 이 시에는 “김밥들이 가지 않는 불신지옥도 있을까” 하는 그 특유의 유머감각이 밥풀처럼 달라붙어 있다)도 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