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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우식] <거인>
주성철 사진 백종헌 2014-11-11

최우식

소년은 이제 어디로 가야 하는가. 집을 나와 보호시설인 그룹홈에서 지내는 열일곱 영재(최우식)는 어느덧 시설을 나가야 할 나이가 됐지만, 무책임한 아버지(김수현) 집으로는 결코 돌아가고 싶지 않아 초조하다. 당장의 삶도 팍팍하다. 성당 안에서는 밝은 웃음을 띠며 언젠가 신부가 될 모범생처럼 지내지만, 한편으로는 후원품인 운동화를 훔쳐 학교에서 파는 이중적인 삶을 살고 있다. 게다가 꿈에 그리는 신학교에 가기에는, 실업계 학생으로서 성적이 영 시원찮다. 점점 진짜 독립해야 할 날이 다가오고 있지만 그 무엇도 속 시원히 풀려가는 일이 없는 것. 그처럼 하루하루가 조마조마한데, 자신에게 동생 민재(장유상)마저 떠맡기려는 아버지로 인해 절망과 분노는 극에 달한다. 모든 게 그대로인데 몸집만 커져버린 ‘거인’의 무게가 그 위태로운 영혼을 짓누른다.

스스로 고아가 된 <거인>의 영재를 연기한 최우식은 단연 올해의 발견이라 부를 만하다. 2011년 TV드라마 <짝패>에서 귀동(이상윤)의 아역으로 얼굴을 알린 뒤 <폼나게 살거야>에서 ‘폼생폼사’ 반항아 재수생 나주라, 시트콤 <닥치고 패밀리>에서 ‘시스타’ 다솜에게 꼼짝 못하는 오빠 열우봉, 그리고 <옥탑방 왕세자>에서 조선시대 왕세자 이각(박유천)과 함께 300년을 거슬러 서울로 날아온 신하 중 한명인 도치산으로 출연해, 언제나 엉뚱하고 귀여운 모습으로만 각인됐던 그였기에 그 변신은 놀랍다. <뿌리 깊은 나무>에서 청년 정기준(윤제문), <특수사건 전담반 TEN>에서 다혈질에 잡학다식하기까지 한 신참형사 박민호로 출연했을 때와 비교해도 그렇다. <거인>에서 학교와 성당, 그리고 그룹홈을 오가며 힘겨운 일상을 보내고 있는 영재의 얼굴에서 지난 TV드라마들의 이미지를 발견하기란 힘들다. ‘아, 드라마 OOO에서 까불대던 애가 걔였구나’ 하고 알아보던 사람들에게 멋진 반전의 순간을 선사한 것이다.

게다가 그는 <거인>이 올해 부산국제영화제 ‘한국영화의 오늘-비전’ 부문에 초청되면서 ‘올해의 배우상’까지 덜컥 수상했다. 대선배인 김희애와 유지태가 심사위원이 되어 직접 결정한, 그리고 영화제의 오랜 역사에 비춰볼 때 이제야 신설된 연기상의 영광스런 첫 번째 주인공이 된 것이다. 시상식 자리에서 유지태가 “앞으로 영화에서 자주 봐요”라고 말할 때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는 그는 어깨에 기분 좋은 ‘짐’을 하나 얹었다. “원래 좀 걱정이 많은 스타일이다. 처음에는 괜히 ‘상 타면 어떡하지?’ 했다가 정작 타고 난 다음에는 ‘이제 어떻게 감당하지?’ 하고 걱정됐다. 게다가 김태용 감독님이 빈말을 되게 잘하시는데, 한번은 어떤 인터뷰에서 ‘최우식의 연기는 기적 같았다’고 하셨다. 오죽하면 부모님도 그 기사를 보고선 낯뜨거워하셨다. 친구들도 ‘극장 가서 너의 기적 같은 연기 잘 볼게’라고 문자를 보내질 않나, 정말 부담스럽다. (웃음) 그래도 다들 ‘앞으로 이 녀석이 얼마나 잘하는지 두고 보자’ 하는 시선이라고 생각하니까, 뭔가 내 안에서 꿈틀대는 게 있다.”

아마도 영화로 그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웹툰을 원작으로 한 <은밀하게 위대하게>(2013)의 윤유준을 떠올릴 것이다. 등굣길에 “우리 누나 쳐다보지 말랬지”라며 원류환(김수현)의 뒤통수를 때리는 학생이었다. 비록 웹툰의 팬들은 윤유준의 비중 축소가 아쉬웠지만 최우식으로서는 긴장되는 영화 신고식이나 다름없었다. 대사하면서 형인 김수현의 머리를 때리는 장면을 하루에도 몇 천번씩 연습했다. 그리고 영화는 이른바 ‘대박’이 났다. “잠실야구장에 사람들이 꽉 들어차도 3만명이 안 되는데, 700만명이 본 영화에 출연했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그래도 길에서 아무도 알아보는 사람이 없더라. (웃음) ‘최우식, 더 힘내자!’라는 생각뿐이었다.” 그처럼 <은밀하게 위대하게>가 TV드라마 속 ‘명랑소년’ 이미지의 연장이었다면, <거인>은 전혀 새로운 도전이었다. 게다가 그는 영화 속 영재와는 다른 부족함 없는 삶을 살았다. 그럼에도 영재의 마음속 깊은 상실감이나 살아남고자 애쓰는 오기의 근본적인 줄기를 직관적으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현실의 나는 영재와 전혀 다른 환경에서 살았지만, 누구나 비슷하게 겪어봤을 감정이라고 생각했다. 나 또한 어려서 캐나다에 뚝 떨어져 지낼 때 말이 통하지 않고 모든 것이 낯설어서, 어떻게든 환경에 적응하고 살아남으려 하루 종일 머리를 굴렸다. 영재가 보여주는 ‘처세의 달인’ 같은 면모는 그런 감정을 여러 방향으로 극대화해 표현하려 한 것이다.”

하지만 <거인>을 본 사람들은 영재의 그런 면모를 십분 이해할 것이다. 스스로 세상에 살아남기 위해서, 그리고 동생이 세상에 홀로 남겨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 그 누구보다 야비하고 때론 지질하게 구는 모습에 마음이 아파올 것이다. 살아남을 수만 있다면 그 어떤 수치심도 견딜 수 있다. “<거인>을 통해 ‘수치심’이라는 감정을 처음 느껴봤다. 영재는 왜 저렇게 안간힘을 쓰면서까지 버티려고 할까. 무책임한 부모에 대한 복수심일 수도 있고, 가여운 동생에 대한 책임감일 수도 있다. 부모를 증오하면서도 가족이 완전히 무너지는 것에 대한 공포도 있다. 이제껏 수많은 작품을 하면서 이렇게까지 큰 무게를 감당한 적이 있나 싶다. 한번은 <거인> 촬영 도중 잡지 촬영을 한 적이 있다. 늘 하던 것처럼 ‘프레피 룩’을 입고 까불까불 귀엽게, 사진작가님이 ‘웃어주세요~’ 그러시는데 정말 죄송하게도 그게 잘 안 되는 거다. 머릿속으로 계속 영재 생각만 하던 때였다. 장편의 호흡이 이런 거구나, 뭔가에 몰입한다는 게 이런 거구나, 깊이 느꼈다. 맨 처음 <눈물>이었던 시나리오가 <거인>으로 바뀔 때, 당시 한창 유행하던 <진격의 거인> 아류인가 하고 생각했었는데(웃음) 어느새 영재는 평생 잊지 못할 캐릭터가 됐다.”

현재 그는 지난 10월 말 시작한 TV드라마 <오만과 편견>에 출연 중이다. 그가 연기하는 인천지검 평검사 이장원은 강남 부잣집 아들로 엘리트 코스를 밟아온, 스타일 좋고 ‘칼퇴근’을 중요시하는 ‘요즘 젊은 검사’다. 그의 위에는 부장검사 문희만(최민수)이 있다. “최민수 선배님과 함께한다는 것 자체가 어마어마한 미션이다. 대본 리딩 때부터 긴장감이 이만저만 아니었다. 최민수 선배님이 ‘야, 세상에 이딴 검사가 어딨어!’ 그러실까봐 내내 떨었다. (웃음) 그래서 마음속으로 ‘아무리 최민수라도 대기시간에만 선배님일 뿐이고 카메라가 돌아가기 시작하면 그냥 검사 대 검사야!’라고 마인드 컨트롤을 단단히 했다. 물론 그래도 잘 안 된다. (웃음)”

곧이어 그는 10월 말 개봉할 최호 감독의 <빅매치>로도 찾아온다. 영화에서 익호(이정재)를 조종하려 드는 천재 악당 에이스(신하균)와 언제나 붙어다니는, 현실과 가상을 종종 헛갈리는 컴퓨터 해커 ‘구루’ 역할이다. “비중은 적고 대사도 별로 없어서 ‘60억~’ 하고 외치는 게 가장 중요한 대사 중 하나지만(웃음) 신하균 선배님과 영화에서 항상 붙어 있다. 대선배님과 몇날 며칠 붙어 지내며 호흡을 맞춘 경험이 처음이라 정말 많이 배웠다. 현장에서 사슴 같은 눈빛으로 내 고민 상담을 해주던 분이, 카메라가 돌아가기 시작하면 불과 몇초 만에 그 눈빛을 뒤집어 바꾼다. 사슴이 갑자기 카리스마 넘치는 호랑이가 되는 거다. (웃음) 전에는 류승범 선배님의 그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날것 같은 연기, 조승우 선배님의 집요하고 확고한 분석력, 유지태 선배님의 연기와 연출을 병행하는 폭넓은 스펙트럼을 닮고 싶다고 얘기해왔는데, 거기에 신하균 선배님의 짐승 같은 집중력을 하나 더 추가했다.”

앞으로 TV와 영화를 통해 최우식을 만날 일은 더 많아질 것 같다. 2015년에는 <거인>을 통해 받은 큰 상에 대해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이게 만들 것이다. 마지막으로 그는 새로운 다짐을 하나 더 얘기했다. “올해 초 <씨네21>에서 나를 ‘라이징 스타’ 특집(939호)에 초대해줘서 무척 뿌듯했다. 사진도 매우 좋아서 부모님은 집에 붙여놓으셨다. (웃음) 그런데 <거인>으로 다시 긴 인터뷰를 하게 되니, 더 큰 자신감이 생긴다. 다음 <씨네21>과의 만남에서는 꼭 ‘표지’로 돌아오고 싶다. (웃음) 이제 진짜 시작이다.”

magic hour

내 안의 비릿함

<거인>의 김태용 감독은 몇년 전 미쟝센단편영화제에 <밤벌레>로 참가했을 때, 같은 섹션 ‘사랑에 관한 짧은 필름’에 있던 유대얼 감독 <에튀드, 솔로>의 배우 최우식에게 눈길이 갔다. 한쪽 팔에 깁스를 한 채 피아노 앞에 앉아 있던 소년의 눈빛을 잊을 수 없었다. 그는 “한 섹션에 묶여 있던 영화라 별 생각 없이 그 영화를 봤는데, 순하게 생긴 얼굴임에도 뭔가 거칠고 비릿한 느낌을 받았다. <거인> 시나리오를 쓰고 있을 때도 계속 그 눈빛이 떠올랐다”고 말했다. 이에 대한 최우식의 대답. “<에튀드, 솔로>는 가수 나얼의 쌍둥이 동생인 유대얼 감독님과 원래 친한 사이여서 편하게 출연했던 작품이다. 나로서는 늘 까불대는 역할만 연기하다가 말 없는 친구로 나와서 신선했던 기억이 있다. ‘이렇게 하면 안 돼요? 저렇게 하면요?’ 하는 요구를 다 들어주셨기에, 나로서는 ‘요구하는’ 연기라 아니라 ‘원하는’ 연기를 하는 쾌감이 있었다. 그래도 아직 김태용 감독님의 그 ‘비릿하다’는 표현이 정확히 어떤 의미인지 모르겠다. 눈을 어떻게 뜨면 그 ‘비릿한 눈’이 되는 건지.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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