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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해일] 어쩐지 낯설지 않더라
윤혜지 사진 최성열 2014-11-03

<나의 독재자> 박해일

‘나의 마지막 청춘.’ 박해일은 <나의 독재자>의 태식을 그렇게 표현했다. “삼십대에 연기하는 마지막 인물이지 않을까 싶어 나에겐 청춘으로서 마지막 캐릭터라는 느낌도 있다. 화면도 최대한 뽀얗게 해달라고 했다! (웃음) 결핍이 많은 태식은 어른이 돼도 내면은 성장하지 못한 채 여전히 철없는 마음으로 아버지를 바라본다. 영화가 드러내고자 하는 코믹한 톤이 있지만 태식의 내면까지 밝다고 생각하진 않았다. 그렇다면 태식이 가진 어둠이 순간순간 보일 타점들은 어디일까. 무겁게 할 생각은 없었지만, 그런 태식의 과거들을 오래 생각해볼 필요는 있었다.”

사고친 아버지의 일을 수습하느라 고등학교 연합고사를 볼 수 없었던 소년 태식은 자라 어떤 어른이 되었을까. 다단계로 건강보조기구를 판매하고 있는 태식은 빚더미를 타고 앉았어도 강남에 살며 외제차를 모는 인물이다. 박해일이 연기하는 성인 태식은 기운찬 목소리로 “돈은 목숨!”이라고 외치며 영화의 2막을 연다. 배우가 되기 전의 청년 박해일도 잠시 다단계 판매를 경험한 적이 있다. 태식의 숙련된 판매 기술이 어쩌면 그런 기억에서 나온 것은 아닐까. “내가 이십대가 막 되었을 땐 다단계 판매를 접하기가 무척 쉬운 환경이었다. 대학 선배가 아르바이트를 알아봐준다고 해서, 친구가 취직 자리를 소개해준다고 해서, 손쉽게 빠지곤 했다. 방황하던 시기여서인지 나 역시 한달쯤 해보게 됐다. 덕분에 태식이 살아온 흔적이랄지 걸어온 방향이 조금 짐작이 되더라.”

이해준 감독과의 인연은 “인사치레로 작품을 함께하자고 했던 말들”에서 비롯됐다. 술자리에서 우연히 자꾸 만났고, 처음엔 인사로 작품을 함께하고 싶다고 서로 얘기하다 여기까지 오게 됐다고 한다. “어느 날 둘이 치킨에 맥주를 마시는데 각자 아버지에 대한 얘기를 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감독님이 생각하는 영화의 질감이 구체적으로 느껴지진 않았다. 하지만 그 뒷이야기, 속이야기가 궁금했고 호기심이 생겼다.” 박해일은 영화에 대해 말하며 “낯설지는 않았다”는 표현을 거듭 사용했다.

1970년대에서 90년대라는 시대 배경도, 감독과 나눈 아버지에 관한 기억들도, 박해일의 실제 말투를 살려 입에 착착 붙게 만든 대사까지 <나의 독재자>의 많은 것들이 박해일에게는 낯설지 않았다고 한다. “감독님이 나와 여러 차례 만나면서 잡아낸 나라는 배우의 기질이나 말의 뉘앙스를 시나리오에 가져온 게 아닌가 싶다. 어쩐지 낯설지가 않았고, 감독님이 가진 재밌는 대사의 맛도 직접 연기하며 많이 느꼈다.” 연극 경험이 있는 배우들이 많이 출연하기도 했지만, 한 배우의 예술혼에 관한 영화라 남다르게 느끼기도 했다. “극중극으로 <리어왕> 무대가 펼쳐진다. 연극 자체가 영화 프레임 안으로 들어온 경우가 오랜만이라 무척 반가웠다. 영화를 통해 보여지는 연극 무대의 언어들이 새롭게 다가오기도 했고, 연극하는 선배들도 계셔서 배운 게 많았다. 아마도 감독님의 히든카드일 철주 역의 이규형도 사실 연극배우니까. 설경구 선배가 연극할 땐 저런 모습일까 나름 상상도 해봤다.”

<경주>와 <제보자>, 그리고 <나의 독재자>까지 박해일의 2014년은 그 어떤 해보다도 쉴 틈이 없다. “나한테도 이런 날이 있어야지. 요즘은 술을 마셔도 공허함이 없다. (웃음) 작품이 계속 이어지고 있지만 무리하고 있다는 생각은 들지 않고 자연스럽다. 작품의 이야기나 캐릭터가 모두 달랐기 때문에 기운을 잃지 않고 촬영할 수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박해일의 올해 출연작은 <나의 독재자>가 마지막이다. “물 흐르듯이 가는 걸 중요하게 생각한다. 올해는 촬영 계획이 더 없다. 지금까지 공개된 영화들을 잘 책임지고 나면 연말은 탈 없이 보내고 내년을 기약할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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