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명인간처럼 존재감 없는 사이먼(제시 아이젠버그)은 자기 집 창문에서 마주 보이는 곳에 사는 복사사무원 한나(미아 바시코프스카)에게 반해 있다. 그는 회사에서도, 요양원에 있는 가족에게서도 얼간이 취급을 받으며 무기력한 나날을 보낸다. 어느 날, 자신과 똑같은 외모에 교활하고도 매력적인 분신 제임스가 나타난다. 제임스는 일과 연애 뭐 하나 제대로 해내지 못하는 사이먼에게 충고를 해주며 다가오지만 결국 회사, 여자, 집까지 차근차근 사이먼의 것들을 독차지하기 시작한다.
영화는 기괴한 소극인 표트르 도스토예프스키의 <분신>을 각색한 것이다. 원작에서처럼 영화의 사건들이 소심한 사이먼의 망상과 피해의식에 기반한 것인지 아니면 실제의 분신과의 갈등과 충돌을 다룬 것인지 분간하긴 힘들다. 중요한 것은 이 영화가 사이먼의 내면을 시각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자기 삶의 이방인처럼 사는 주체가 어느 순간 낯선 힘에 존재의 기반을 잠식당한다. 이러한 철학적 설정은 영화의 외피를 다소 난해해 보이게 할 것이다. 더불어 이 영화는 능란한 화술과 외양을 중시하는 자기PR 시대의 풍자적 코미디로도 읽히는데, 사이먼 역의 제시 아이젠버그의 웅얼거리는 너드 연기는 꽤 인상적이다.
분명 영화는 세계에 대한 폐쇄적 감각에서 카프카를, 복고풍 SF의 음울한 미장센에서 테리 길리엄을, 인물 묘사의 그로테스크함에 있어서 데이비드 린치를 참조하고 있다. 편집증적일 정도로 집요한 시각화에 대한 욕망에서는 데뷔작 <서브마린>(2010)에 이어 웨스 앤더슨이 떠오르기도 한다. 하지만 정작 이 모든 것을 조합해 리처드 아요데가 자신만의 세계를 창출해냈는가 하면, 여기엔 조금 회의적이다. 철지난 20세기풍 부조리와 아이러니를 붙잡아 1980년대식 복고적 스타일로 뒤섞었지만 주제에 깊이 파고들지 못한 채 설정에 머문 인상이다. 배우이기도 한 감독 리처드 아요데는 <디어 한나>(2011)의 패디 콘시딘과 더불어 주목해야 할 영국 인디영화계의 신예이다. <더블: 달콤한 악몽>은 그로테스크한 판타지로, 아직 자신만의 영화적 정체성을 찾지 못한 과도기의 습작처럼 보인다. 그럼에도 이 불균질한 작품이 매력적이지 않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블랙코미디적 감성, 제어되지 않는 과잉된 에너지와 스타일은 앞으로 주시해야 할 가능성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이 영화는 평론가들에게 소포모어 징크스에 갇힌 작품으로 보일 수도 있겠지만 동시에 누군가에게는 생애 최고의 영화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