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로증이 있는 소년 아름(조성목)은 세살부터 늙기 시작했다. 꼬마처럼 조그만 그의 몸은 벌써 여든이지만, 열일곱에 그를 가진 부모는 아직 서른셋, 눈이 부시게 젊은 나이다. 그 부모를 두고 떠나야 한다. 짧은 생에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책을 읽는 것뿐이었던 아름은 엄마와 아빠를 위한 마지막 선물로 소설을 쓰기로 마음먹는다. 바람이 불던 날, 녹색의 숲에서 만난 대수(강동원)와 미라(송혜교)의 사라진 청춘을, 글로나마 돌려주기로 한다.
여기, 완벽한 신파의 조건이 있다. 젊고 예쁘고 가난한 부모와 살날이 얼마 남지 않은 아이, 그들의 삶을 가득 채우는 사랑, 그리고 눈물. 아름이네 가족을 섭외한 PD가 예감했듯이 이건 ‘휴먼 다큐멘터리’에 기가 막히게 어울리는 사연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건 다큐멘터리가 아니다. 영화 <두근두근 내 인생>이다. 두근두근, 놀란 심장이 뛰는 소리, 기대와 불안이 맥박 치는 소리. 열서너살이면 죽을 거라 믿었던 소년이 어떻게 인생 앞에서 두근두근할 수 있을까. 원작인 김애란의 장편소설은 한발만 잘못 디뎌도 억지가 될 수 있을 그 모순과 긴장 위에서 무리 없이 균형을 잡는 편이다. 이가 시린 아들을 위해 딱딱한 젤리는 빼고 덜어준 빙수의 맛, 얼굴만 늙은 주제에 자기를 형으로 안다며 펄펄 뛰는 옆집 할아버지의 투정, 유치했던 엄마의 첫사랑을 캐는 재미. 지나치게 감상적이고 관념적인 말을 늘어놓을 때도 있지만, 그럴 때면 소설의 화자 아름이도 정색을 한다. 일부러 그런 거야, 라면서. 그런데 이상하다. 아주 작게 반짝거리던 빛이 어느 순간 환하게 불을 밝히는 원작과 달리 영화는 같은 사람의 입으로 같은 말을 하는데도 맥이 없다. 아름이의 기나긴 하루를 견디게 하던 유머는 사라지고, 자비 출판 에세이에서 건져 조각조각 조합한 것처럼 지루한, 삶에 대한 무의미한 예찬만이 남는다.
이 영화에서 제목과 어울리는 인물이 있다면 아버지 대수뿐이다. 깜찍하게 욕설을 내뱉으며 자랑스럽게 임신한 배를 내밀던 미라는 생기를 잃었고 아름이는 삶의 경계에 선 사춘기 소년이 아니라 어른인 척하는 꼬마처럼만 보이는데, 오직 대수만이 애처로울 정도로 앳되고 해맑다. 아들이 선물받은 게임기를 탐내는 강동원의 얼굴은 소설에 자주 묘사되는 것처럼 ‘눈이 부시다’.
생각해보면 <두근두근 내 인생>은 서로 다른 속도로 흐르는 시간 속에 던져진 연약한 영혼들의 싸움이었다. 아름이에게 하루는 한없이 길지만 삶은 너무도 짧다. 그 터무니없는 간극 사이에서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찰나에 집중하여 그것을 간직하는 길뿐이다. 하지만 영화엔 그것이 없다. 두근, 1초 만에 끝나버리더라도 그 느낌만은 잊히지 않는 박동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