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EBS국제다큐영화제(EIDF2014)가 ‘이스라엘 특별전’을 마련했다가 취소한 일은 하나의 현상으로 보인다. 지난해부터 기획해온 특별전이 최근 가자지구 공습 사태와 맞물리면서 한국 영화인들의 반발에 부딪혔고 EIDF 사무국은 영화제 개최를 열이틀 앞두고 결국 특별전 취소를 결정했다. 개별 작품이 지닌 특수성과는 무관하게 이스라엘군의 야만과 정부의 기만적 문화정책이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이다. 현실과 떨어지려야 떨어질 수 없는 다큐의 숙명이 지구 반대편 한국에서 드러난 셈이다.
‘다큐, 희망을 말하다’라는 올해 EIDF2014의 캐치프레이즈가 2014년에 채택된 문구라는 점 또한 쉽게 봐넘기기 어렵다. 대체 무슨 수로 희망을 말할지 알 길이 없는 2014년 지구 곳곳의 비극들 앞에서, 이건 너무나 손쉬운 캐치프레이즈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다행히 출품작들의 면면은 무난하지 않다. 개막작 <그 노래를 기억하세요?>는 음악이 치매 환자들에게 놀라운 치유력을 발휘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요양원 자원봉사자 댄이 전국 요양원을 돌며 음악을 전도한다는 이야기다. 이 세상 다큐의 제작 태도를 거칠게 둘로 나누면, 날것 그대로를 가능한 한 생생하게 보여주려는 쪽과 정교하게 짜인 촬영과 연출로 완성도를 높이려는 쪽이 있을 텐데, <그 노래를…>은 후자쪽이다. 무엇을 버리고 담을지를 정확히 계산한 프레임, 어디에 배치될지를 아는 듯한 인터뷰이들의 리액션 등을 보면 편집자 출신의 마이클 로사토 베넷 감독의 용의주도함을 알 수 있다. 올해 선댄스영화제에서 관객상을 수상했다.
<달에 부는 바람>은 <달팽이의 별>에 이어지는 이승준 감독의 두번째 장애인 소재 다큐다. 이번에도 시각장애와 청각장애를 함께 갖고 있는 인물과 그 가족을 담았다. 시청각 복합장애인 19살 딸 예지를 키우는 어머니의 시선은, 딸이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고 말하지 못하는 만큼 더 예민하다. 그 일거수일투족을 꾸밈없이 따라가는 카메라 역시 인물들에 놀랍게 밀착해 있어 전작에서 본 작품의 밀도를 또 한번 기대하도록 한다.
등장인물들의 상상력이 돋보이는 <마이크로토피아>도 눈에 띈다. 시스템이 해결해주지 못하는 주거 문제를 자발적인 불복종 운동으로 풀어내는 사람들을 만나 이들이 어떤 집에서 살고 있는지를 들여다본다. 최소한의 공간에 침실과 주방, 작업실 등 있을 것은 다 있는 초소형 목조주택을 지어 사는 사람, 폐품으로 강에 떠다니는 집을 만들어 사는 사람, 접어서 가지고 다닐 수 있는 비닐하우스에 사는 사람 등 덜 쓰고 더 단순하게 집을 짓는 흥미로운 사례를 취재했다. 건축 철학이란 기본적으로 비움의 철학임을 알려주는 인터뷰들도 솔깃하다.
이 밖에도 EIDF 사무국에서는 내전과 다국적 기업의 횡포 속에 몸살을 앓는 콩고의 국립공원을 지키는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 <비룽가>, 민주화 시위가 내전으로 번지면서 끔찍한 결과를 가져온 시리아 내전 다큐 <홈스는 불타고 있다>, 연애 못하기로 소문난 공대생 5명이 연애를 공식에 대입해 성공 여부를 실험한 <공대생의 연애 공식> 등을 추천작으로 꼽았다. 올해 EIDF2014에서는 82개국 781편의 출품작 가운데 23개국 50편의 작품을 상영한다. 8월25일부터 31일까지 EBS스페이스와 상명대학교, 서울역사박물관, 인디스페이스 등에서 만날 수 있으며, 영화제 기간 동안 EBS 채널을 통해 동시 방송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