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만한 소녀 감성이 또 없어요.” 최근 그린나래미디어의 새 식구가 된 임진희 과장이 유현택 대표를 가리키며 웃는다. 그의 말이 과장이 아님은 그린나래미디어의 첫 배급작인 <시스터>부터 <진저 앤 로사> <폭스파이어> <프란시스 하>로 이어지는 라인업만 봐도 잘 알 수 있다. “사람들이 소녀 취향이라고 하는데 부정할 수 없다. (웃음) 주인공들이 성장하는 과정이 나에게는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스릴러도 배급해야 하는 것 아닐까 고민한 적도 물론 있지만 결국 좋아하는 영화를 하나씩 정성들여 배급하는 게 제일이라고 결론내렸다.”

그랬던 그가 최근엔 과감한 베팅을 시작했다. 다르덴 형제의 <투 데이즈 원 나이트>, 켄 로치의 <지미의 댄스홀>, 베넷 밀러의 <폭스캐처>까지 제67회 칸영화제의 주요 경쟁작 세편이 모두 유현택 대표의 손에 들어온 것. <투 데이즈 원 나이트> <지미의 댄스홀>, 리브 울만의 <미스 줄리>를 지난해 아메리칸필름마켓(AFM)에서 패키지로 구매했고 <폭스캐처>는 칸 현지에서 보고 바로 구매했다고 한다. 적극적으로 라인업을 정비하기 시작한 건 회사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이기도 했다. 꼭 사고 싶었던 영화를 다른 수입사에 넘겨줘야 했던 씁쓸한 일을 몇 차례 겪고 난 뒤 수입사의 필모그래피가 셀러들과의 전쟁에서 가장 중요한 전력임을 깨달아서다. “배급 규모를 좀더 키워보자는 전략적인 선택이었다. 운 좋게도 미리 사둔 영화들이 칸 경쟁부문에 두 작품이나 오른 거다. 소위 말하는 국내의 ‘다양성영화 시장’도 조금씩 커지고 있는 상황이라서 적절한 구매였던 것 같다.”

원래 영화 마케터가 되고 싶었던 유현택 대표는 한겨레문화센터에서 영화 홍보마케팅을 배우고 어학연수까지 다녀왔다. “그 뒤 마케팅사 여러 곳에 입사지원서를 넣었는데 단 한 군데에서도 연락이 오지 않았다. (웃음) 나이가 적지 않았기 때문에 마냥 꿈만 좇을 순 없어 일단 일반 회사에 들어갔다. 사회생활 1년이 넘어가니 점점 안정을 좇게 되더라.” “안정성”이 싫었던 유현택 대표는 다시 영화계로 돌아와 다우리엔터테인먼트에서 수입 업무부터 시작했다. 회사는 노련한 수입 담당자가 절실했고, 그 덕에 그는 짧은 기간 동안 마켓이란 마켓은 죄다 다닐 수 있었다. 이후에 다우리와 합병한 모회사가 상장폐지되는 불운을 겪고 독립한 유현택 대표는 그린나래미디어를 세웠다.

“우리 색깔을 가지고 영화를 선택해온 게 ‘라인업이 좋다’는 칭찬을 듣게 된 이유인 것 같다. 비전? 안 되다 보면 돈 되는 영화를 하고 싶은 마음이 나라고 왜 들지 않았겠나. 그래도 당장의 매출에 연연하기 보다는 흔들리지 않고, 한눈팔지 말고 가고 싶었던 길을 가는 게 최선이지 않을까.” 사명 ‘그린나래’는 순우리말로 ‘그린 듯이 아름다운 날개’라는 뜻이다. 소소하지만 올곧은 그의 소망이 앞으로 그린나래미디어에 더욱 튼튼한 날개가 되어줄 것 같다.

레아 세이두가 직접 사인한 <시스터> 엽서

레아 세이두는 유현택 대표의 “첫사랑”이다. 그린나래미디어의 첫 배급작 <시스터>로 맺게 된 인연이다. 모 매체의 인터뷰 요청으로 “비용 절감 차원”에서 유현택 대표가 직접 전화 통역을 맡았고, 이를 계기로 레아 세이두와 몇 차례 이메일을 주고받는 친구가 된 것. 광고 행사차 방한한 레아 세이두와 가로수길에서 “예기치 않게 식사를 하게 되는 행운”까지 얻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