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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놀드 슈워제네거 주연의 <콜래트럴 데미지>
2002-02-28

낯뜨거운 애국주의

● 요즘 미국을 휩쓸고 있는 새로운 호전적 분위기 덕을 가장 많이 본 영화는 <블랙 호크 다운>일 것이다. 이 작품은 최근의 슬픈 상처와 딱 맞아떨어지는 면모들 덕분에 흥행에 큰 성공을 거두었다. 9·11 테러는 미국인들로 하여금 스스로를 피해자인 양 느끼게 만들었고 그래서 마치 1993년 소말리아 작전에 투입된 불쌍한 군인들처럼, 약자를 맘놓고 괴롭히는 역할을 스스럼없이 맡도록 부추기고 있다. <블랙 호크 다운>을 호전적인 영화라고 분류하기는 어렵지만 대립구도를 맹목적인 “우리 vs 그들”로 나눈 것 역시 바람직하다고 보기 어렵다.

우리는 드디어, 대대적으로 홍보되고 오랫동안 관객을 기다리게 한 아놀드 슈워제네거의 새 영화 <콜래트럴 데미지>를 만난다. 독자들이 이 글을 읽을 때쯤이면 이 작품은 <블랙 호크 다운>을 몰아내고 미국 극장가의 가장 매력적인- 그리고 가장 비난받는- 박스오피스 성적을 기록하고 있을 것이다. 9·11 테러 발발을 보고 민첩하게 개봉일을 늦춘 이 영화는 아내와 아이를 희생시킨 콜롬비아 테러리스트들에 대한 LA 소방대원의 복수를 다루고 있는데, 진부한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테러사건에 힘입어 매우 뜻있는 영화인 양 재조명되는 행운을 누리고 있다.

테러 직후인 9월12일에는 이런 영화가 준비되고 있었다는 것 자체가 매우 민망한 노릇으로 생각되었을 텐데, 그로부터 다섯달이 지나니 마치 애국적인 선견지명이라도 지닌 영화라는 듯 새로이 각광받고 있다. 전혀 놀랄 일이 아니지만, 워너브러더스는 이제, 관객이 9·11 테러 이전보다 지금 훨씬, 이런 종류의 영화에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것을 실감하고 있을 것이다. 이렇듯 이 영화의 개봉버전은 원본에 비해 수정이 가해져서, 세계무역센터 학살의 현장이라도 되는 듯한 곳에서 아놀드와 동료 소방대원들이 인명을 구하는 데서부터 시작한다. “준비됐나! 시작이다!” 마치 하이재킹 진압팀의 작전신호 “시작이다!”(Let's roll!)를 예감이라도 하듯 스타 아놀드가 외친다.

한 신이 흘러가면, 아놀드의 아내와 아들은 그가 보는 앞에서 콜롬비아 테러리스트의 폭탄테러 제물로 사라져버린다. 이 폭발로, 세계무역센터 테러사건을 기준으로 보자면 작은 피해라 할 만한 9명 사망 24명 부상의 피해를 입지만, 이 정도면 테러리스트 엘 로보를 상대로 한 아놀드의 1인 전쟁을 시작하기엔 충분하다. 아마도 새로 삽입된 신 중에는 후드를 걸친 게릴라 대장이 비디오테이프를 보내 “미국 전쟁 범죄자들”이 자신들의 행동을 불러일으켰다며 비난하는 신이 포함돼 있을 것이다. 이 영화의 감정적 호소를 더욱 자극하는 것은 한 콜롬비아 좌파가 테러리스트들을 노골적으로 동정하며 미군이 즐겨쓰는 용어 “무고한 희생자”를 사용해 아놀드 가족의 희생을 합리화시키고, 그럼으로써 아놀드로 하여금 야구방망이 하나 들고 쳐들어가도록 만드는 대목일 것이다.

슈워제네거는 <콜래트럴 데미지>가 자신의 연약한 모습을 관객이 볼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 말은 사실이다. 그는 여자와도 일대일로 싸워야 했으니까. 열대우림을 질주할 때든 폭포에 뛰어들 때든 아놀드 선생은 엘 로보의 마스크 뒤의 능글맞은 웃음을 걷어낼 정도로 터프하긴 했다고만 말해두자. 혁명가들의 대사는 알 카에다의 경전 해적판에서 대개 나왔다. “미국인들은 가족의 가치라는 방패 뒤에 숨는다.… 그들은 우리와 달리, 전쟁의 현실이 어떠한지를 망각했다” 그리고 이 “현실”은 사디스틱한 게릴라들이 잔혹한 본성을 발동시켜 그들 중 하나에게 산 뱀을 삼키도록 강요할 때 명백히 드러난다.

영화는 또, 일종의 균형잡힌 대립을 추구하려 한 건지, 격렬한 액션이 전개되다가도 갑자기 정색을 하고 생뚱맞게 논쟁을 제기하기도 한다. 예를 들면 윤리적으로 선한 복수와 악한 복수가 따로 있느냐는 것 등이다(“당신네 미국인들은 참 순진하기도 하다. 어째서 필부에게도 복수의 총이 필요할 수 있는지, 당신들은 의구심을 품어보는 법이 없다. 독립을 위해 싸우는 건 왜 오로지 미국인들뿐일 거라고 생각하는 건가?”, “무엇을 위한 독립이었나? 여자들과 아이들을 맘놓고 죽이기 위한?” 등). 그러나 이런 부분적인 노력에도 불구하고 <콜래트럴 데미지>는 투박하고 성긴 액션영화의 좋은 예일 따름이다. 한 가지 우연은 또다른 우연으로 이어지고 내러티브상의 필연이란 술 취해 길을 잃어버린다.

<콜래트럴 데미지>는 미국이 당한 것보다 훨씬 더 앙갚음을 해댄 영화인데, 이 경우 이것은 엄청난 수익과도 일맥상통한다. 조지 부시의 의심스런 대통령 자격과 리더십이 이번 “테러와의 전쟁”을 계기로 신성화되어버렸듯이, 슈워제네거의 쇠잔해진 영향력도 다시 살아날 수 있을 것이다. 아마 그 소방대원은 통치자를 위해 다시 한번 일하리라고 마음먹을 것이다. 그럼 이제 다같이 외쳐보자. “준비됐나! 이제,… 시작,… 이다!” 짐 호버먼/영화평론가. <빌리지 보이스>(<빌리지 보이스> 2001.11.5. 짐 호버먼은 미국 영화평단에서 대안영화의 옹호자로 가장 명망이 높은 평론가로 <빌리지 보이스>에 기고하고 있습니다. <씨네21>과 <빌리지 보이스>는 기사교류 관계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