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도대체 무엇을 위해서?’라는 질문은 이 영화 앞에서 무용하다. 이 작품은 음모를 파헤치는 미스터리가 아니며 난관의 해결을 향해 전개되는 스토리 영화도 아니기 때문이다. <언더 더 스킨>은 외계인의 신체 강탈을 소재로 한 SF영화다. 킬러 로라(스칼렛 요한슨)는 아름다운 지구인으로 가장한 채 밴을 몰고 다니며 남성들을 유인한다. 로라에게 이끌린 남성들은 검고 끈끈한 늪으로 이끌려 피부만 벗겨진 채 나머지는 상상만 가능할 어떠한 곳으로 운송된다. 이 연쇄살인이 그녀 자신을 위해서인지 다른 목적을 위해서인지는 끝내 밝혀지지 않는다. 그녀는 자신의 배후에 있는 거대한 목적의 무심한 매개자로 보일 뿐이다.

영화를 위해 전라노출을 불사한 스칼렛 요한슨은 제몫을 다했다. 그녀의 입장이 모호해 보이는 것은 성격화의 실패이거나 연출상의 결함이 아니다. 로라에게 성격과 감성이 배제되어 있다는 것이 중요한 설정이기 때문이다. 영화는 미헬 파버르의 동명 SF소설을 느슨하게 각색했다. SF라는 장르적 외피는 이 영화에서 장식적인 것에 불과할지 모르겠다. 실제 영화는 극도로 미니멀한 설정만 취한 채 실험적 비주얼과 사운드로 전개되기 때문이다. 외계인의 시점을 실험해보기 위해 감독은 남성들이 로라와 대화하는 장면에서 몰래카메라를 통해 다소 즉흥적인 설정으로 촬영했다. 남자 배우들은 대부분 비전문 배우들이다.

영화의 인상적 오프닝은 외계의 어떤 존재가 공간이동을 하거나 블랙홀로부터 빠져나오는 듯한 이미지를 선사한다. 영화 자체에 대한 예언인 양 외계인이 읊조리는 최초의 낱말들은 알파벳 f로 시작되는 느낌(feel), 영화(film), 실패(fail), 타락(fall), 여성(female), 어리석은 자(fool) 등이다. 익스트림 롱숏으로 포획된 스코틀랜드 하이랜드의 자연풍경과 익스트림 클로즈업으로 잡힌 로라의 공허한 눈동자는 이 영화가 전달하려는 의도의 실마리를 제공한다. 감정이 배제된 무심하고 숭고한 자연풍경과 그 안에 아무것도 비치지 않는 로라의 동공은 기괴하고도 언캐니(uncanny)하다. 그녀의 검은 눈동자는 블랙홀처럼 존재를 모두 빨아들이고 결국 무심한 공허 속으로 내모는 암흑의 핵심이 된다. 영화 <언더 더 스킨>은 추상적 감성을 실체화한 실험영화에 가깝다. 이 몽환적 묵시록은 주체가 해체될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 안으로 맹렬히 빨려들고 마는 암흑의 궁극, 즉 압도적 공허감의 실체화를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