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뜻 (‘왜 그래?’와 함께 쓰여) 상대방의 상식적이지 못한 행동을 질책하는 말 속뜻 상대방이 보잘것없다고 무시하는 말
주석 “알 만한 사람이 왜 그래?” 선임이나 연장자가 훈계할 때 흔히 하는 말이다. 저 말이 따라붙으면 후임이나 젊은이는 엉뚱하거나 상식에 어긋난 행동을 한 사람이 된다. 저 말은 답변을 요구하는 말도 아니다. 질책이 아니라면 은근한 회유다. 회유일 때, 저 말 뒤에는 하여가(何如歌)가 따라붙는다. “세상 둥글게 살아야지. 젊은 사람이 그렇게 모가 나서야 쓰나.” 요컨대 둥글둥글하게 살라는 거다.
‘상식’이란 무엇일까? 사전에는 ‘일반적인 사람이라면 누구나 갖고 있는 지식이나 판단력’이라고 나와 있다. 그럼 ‘일반적’이란? ‘일부에 한정되지 않고 전체에 널리 걸치는’이란다. 요컨대 상식이란 그 집단이나 공동체에 널리 퍼진 관습이나 행동을 따르려는 생각이다. 논문 표절이 일반화된 사회에선 스승이 제자 논문을 훔쳐서 자기 것으로 삼는 게 상식이고, 친일파가 권력을 잡은 나라에선 식민 지배가 하느님의 뜻이 되는 게 상식이다. 그게 알 만한 사람들이 둥글게 사는 방법이다.
그러니 알 만하다는 말은 ‘알 수 있는 수준에 있다’는 뜻이 아니라 그냥 달걀이나 메추리알만 하다는 뜻이다. “알 만한 사람이 왜 이래?”를 번역하면, “요 지름 3~5cm밖에 안 되는 놈이 어딜 까불어?”가 된다. 난 타조알이야. 내가 너보다는 큰 알이라고.
그렇게 알로 된 몸을 알몸이라고 한다. 지금도 여고 앞에는 바바리로 서툴게 포장한 큰 알들이 굴러다닌다. 알 만한 사람의 특징 가운데 하나가 그처럼 쉽게 벗는 거다. 욕망을 옷 대신 입었기 때문이다. 벌거벗은 임금님은 타인의 시선을 욕망했지만 알로 된 사람은 자신의 욕망을 욕망한다.
우리는 얼마 전까지 곡학아세, 일제사랑, 장교학생, 셀프임명, 나태민족 등의 이상한 사자성어로 대표되는 사람을 총리로 모실 뻔했다. 방송에서 본 그는 큰 탁구공 혹은 타조알처럼 보였다. 그의 항변은 정확히 이렇게 들렸다. 알 만한 사람이 왜이래? 나만 그런 것도 아닌데. 우리는 대답해야 한다. 우리는 알 만하지 않다고. 당신은 아무리 커도 큰 알이지만, 우리는 아무리 작아도 사람이라고. 난생설화의 시대는 끝난 지 오래라고.
용례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에서 어머니가 자꾸 달걀을 사던 일을 기억하는가? 사랑방 손님이 달걀을 좋아한다고 한 이후다. 원작에는 없지만, 1978년작 영화에서는 식모가 임신한 일로 사랑방 손님(하명중)이 의심을 받는다. 범인은 달걀 장수(김상순)였다. 알몸이었으니 그럴 수밖에. 알을 들고 왔으니 그럴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