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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제] 오일머니의 파워를 넘어

2014아랍영화제

<팩토리 걸>

2000년대 중반, 아랍 영화계에 새로운 분위기가 감돌았다. 각종 부동산 그룹과 미디어 그룹이 할리우드와의 교류에 뛰어들고 오일머니를 등에 업은 두바이국제영화제와 아부다비국제영화제가 나란히 출범하면서, 아랍 영화산업의 잠재력을 이끌어내려는 움직임이 활발해졌던 것이다. 이런 흐름 속에 성장해온 동시대 아랍영화의 활력을 확인하고 싶다면 2014아랍영화제를 찾아봄직하다. 서울 아트하우스 모모에서는 6월19일부터, 부산 영화의 전당에서는 6월20일부터 일주일간 열린다.

주제 면에서는 여전히 여성의 자유에 관한 화두가 가장 두드러져 보인다. 지난해 두바이국제영화제 최우수 아랍영화상을 수상한 모하메드 칸 감독의 <팩토리 걸>은 이집트의 재봉공장에서 일하는 21살의 히얌이 새로 부임한 감독관 살라를 좋아하게 되면서 벌어지는 크고 작은 소동을 다룬다. 여성의 순결에 관해 억압적인 문화와 계급 차 문제가 엉켜 있는 가운데 신파를 피해가는 당당한 결말이 돋보인다. 상황은 <모나리자의 미소>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다. 언니의 강요로 억지 약혼을 맺게 된 요르단 노처녀 모나리자는 직장에서 만난 이집트 남자 함디와 가까운 사이가 되는데, 주변의 편견 속에서도 자유로운 사랑을 뒤쫓는 한 여인의 소박한 마음이 결국 승리한다.

여자들의 삶을 가족이란 틀을 통해 바라본 영화도 있다. 탕헤르의 온화한 공기를 머금은 <락 더 카스바>는 아버지의 죽음을 애도하려 모인 어머니와 딸들을 중심으로 행복한 삶에 대한 각기 다른 관점을 보여준다. 이슬람 전통의 가부장 질서를 중시하는 집안사람들과 미국식 개인주의의 삶을 선택한 막내딸 사이의 골이 특히 깊지만, 아직 그곳에 머물러 있는 고인의 존재가 그들을 굽어살피는 듯하다. 다큐멘터리인 <내 안의 아버지>도 아버지의 그림자에서 벗어나기 위한 자녀들의 기록이다. 남자는 생전에 절연관계였던 아버지가 죽은 지 22년 뒤, 누이로부터 받은 아버지의 편지를 들고 아버지의 마지막 거처였던 쿠웨이트의 한 호텔을 찾아 자신의 기원을 더듬는다.

팔레스타인 분쟁에 관해 상이한 접근 방식을 택한 두 준수한 작품도 눈에 띈다. <사랑은 바다에서 나를 기다리고>는 처음으로 고국 팔레스타인을 찾은 감독의 여정을 담은 시적 다큐멘터리다. 한편 칸과 부산에서 소개된 바 있는 <오마르>는 레지스탕스 청년 오마르의 사랑과 신념을 집요하게 파헤치는 극영화다. 이스라엘 군부대 총격사건으로 체포된 그는 여자친구의 오빠이자 불알친구인 타렉을 잡아오란 명을 받고 풀려난 뒤, 윤리적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된다. 그 딜레마로부터 관객 역시 자유롭기 힘들다.

나머지 두편은 주제보다 서사적 설계에 집중했다. 아쉬가르 파라디의 추리극이 떠오를 법한 <증거>는 한 남자가 아내와 불임검사를 받으러 병원에 갔다가 어느 임신부로부터 고소를 받고 불임과 간통 중 하나를 인정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하는 이야기다. 레바논에서 온 <블라인드 인터섹션>은 하루아침에 고아가 된 여대생, 어머니의 학대를 받는 소년, 아이를 갖고 싶은 여자, 세 사람의 운명의 교차점을 예기치 못한 방식으로 찍어낸다. 이렇듯 고른 만듦새를 자랑하는 8편의 상영작과 함께 풍부한 해설 프로그램까지 만나볼 수 있다. ‘아랍영화’라는 한 단어로 묶기 아쉬울 만큼, 다양한 문화적 토양과 정치적 관점을 지닌 영화들을 만날 수 있는 시간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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