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틸 작가 이상욱이 자신의 거처라고 밝힌 ‘상상 사진관’은 다름 아닌 ‘신바람 찍사’ 강영호의 스튜디오. “2/4 정우성·고소영 삼성카드, 2/5 엘라스틴, 2/6 던킨 도너츠, 2/18 <울랄라 시스터즈> 포스터, 22 배스킨 라빈스, 2/30 <집으로…> 포스터, 3월중 <챔피온> <오아시스> <해적 디스코왕이 되다>, <결혼은, 미친 짓이다> 포스터 촬영 예정.” 작은 스튜디오 한쪽 벽면을 꼬박 채운 스케줄만으로도 그 유명세를 짐작케 하는 이곳에 ‘느낌에 죽고 갓 뽑은 헤이즐넛 향에 사는’ 스틸 작가 이상욱이 산다.
강영호의 수제자로 작업실을 드나든 게 어언 5년에다 지금의 사진관으로 옮겨 본격적인 작업에 뛰어든 게 올해로 2년째다. 영화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로 시작한 3편의 영화 스틸 작업은 그에겐 독립선언이었던 셈. 나이를 묻지 말아달라고 하지만 아직은 노련한 전문가보다 귀엽고 발랄한 막내의 모습에 가까운 그는 강영호 실장을 어시스트하는 4명 중 팀장의 위치다. “영호 형의 영향을 진짜 많이 받았죠. 초기에 찍은 사진은 제가 봐도 영호 형 거라고 착각할 정도였으니까요” 하지만 그가 정말 강영호에게서 가져온 것은 사람에 대한 애정과 일할 때의 특유의 흥이다. “형이 항상 그래요. 사진은 핀이나 앵글, 노출보단 필(feel)이 중요하다고. 그 필이 오려면 저 사람이 날 딱 믿게 해야 한다고.”
“스틸사진이 정확히 어디에 쓰이냐고 묻는 사람이 아직도 많아요. 지금까진 스틸이 콘티 대용이나 홍보용, 보도용 자료 사진만으로 쓰여왔지만, 그렇게 쓰고 말면 너무 아깝잖아요. 앞으로는 사진 그 자체가 상품의 역할을 하게 될 거예요.” 그래서 대부분의 스틸사진이 영화 속 장면을 앵글 하나 틀리지 않고 그대로 옮겨놓은 데 반해, 그의 카메라가 비추는 자리는 촬영감독의 그것과는 언제나 조금씩 다르다. 그가 일부러 현장의 구석만을 찾아다니는 걸 보고, 하루는 촬영감독이 “너, 내 앵글에 불만있냐?”고 물었을 정도. “영화에서 볼 장면을 굳이 다시 사진으로 옮겨놓을 필요가 있을까요? 세트장 자체가 너무 예쁘잖아요. 이런 스타일리시한 투견장이 어디 있겠어요. 이걸로도 작품이 되겠다 싶더라고요.” 홍보사에서 나온 사람들 처음엔 ‘뜨악’했다. 배우 얼굴 크게 찍힌 컬러사진을 바라고 온 그들에게 깨진 유리조각,드럼통, 밧줄, 가로등이 주인공인 흑백사진들만 잔뜩 안겨줬으니. 근데 신기하다. 홈페이지에 올려놓은 사진들 가운데 흑백사진들 인기가 컬러사진을 일찌감치 눌러버렸다.
<피도 눈물도…> 촬영 현장에서, 그는 제자리를 잘 찾는 스탭으로 유명했다. 간혹 현장에서 짐짝 취급당하기 일쑤라는 스틸 작가의 애환은 그와는 거리가 먼 이야기. 오히려 촬영 내내 대접받는(?) 날들이 이어졌다. 힘들다고 늘어져 있으면 어김없이 감독의 재롱이 이어졌고, 촬영감독은 틈만 나면 사진 찍으라며 자신의 자리를 슬쩍 내어주기도 했다. 비결은 하나다. 일의 경계를 지우는 것. 가끔은 사진기를 벗고 남의 자리에 대신 서주는 것. 글 심지현 simssisi@dreamx.net·사진 이혜정 hyejung@hani.co.kr
프로필
연극배우 추상록, 영화배우 이혜은, 모델 심재명 프로필 작업
임창정 6집 앨범 재킷 촬영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 스틸
<커밍 아웃> 스틸
<피도 눈물도 없이> 스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