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는 도시 자체가 거대한 무덤인 천년 고도 경주에서의 하룻밤을 다룬다. 친한 형의 장례식에 참석하기 위해 귀국한 베이징대 정치학과 교수 최현(박해일)은 문득 7년 전 본 춘화(春畵)의 기억을 더듬어 경주를 찾는다. 하지만 춘화가 있던 찻집 아리솔의 주인은 바뀌고 그림의 행방은 알 수 없다. 최현은 옛 애인, 조용한 모녀, 관광안내원 등을 만난 뒤 다시 찻집 아리솔을 찾아오고, 찻집 여주인 공윤희(신민아)는 두 번째 본 최현에게 묘한 매력을 느낀다.
소박한 유머들과 엉뚱함이 살아 있기에 <경주>는 장률의 유쾌한 영화일 것이다. 곳곳에 죽음을 딛고 있으면서도, 생의 긍정일 춘화의 행방을 좇는다는 점에 있어서도 그러하지만 생명력이 충만한 지방 도시 여름의 낮과 밤을 다룬다는 점에서도 그러하다. 만남의 반복, 술자리 그리고 남녀간의 미묘한 감정 등은 홍상수적 소재처럼 보이지만, 장률은 끝내 인간과 풍경에 대한 기품을 잃지 않는다. 경주의 여신으로 묘사될 뿐 환상에서조차 위험한 선을 넘지 않는 여주인공 설정이 좀더 과감했으면 싶은 아쉬움도 남는다. <경주>는 장례식으로 시작해 최현이 하루 동안 겪는 죽음을 경유하는 영화다. 죽음은 실재하지만 저 멀리서 들린 것 ‘같기도’ 한 천둥소리처럼 있었던가 싶은 풍문이나 허상처럼도 보인다. 작품에서 비극은 영화의 표면으로 떠오르지 않고, 주인공의 관심은 춘화의 행방을 좇는 데 맞춰진다. 창궐하는 죽음들, 사라진 춘화, 메말라버린 강물 등 실상 그곳에서 불모의 세계를 확인하게 된다 하더라도 설레는 만남의 예감이 있기에 경주는 낭만적 판타지의 공간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