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을 보면 영화가 보인다?가로 세로 19줄 좌표가 빚어내는 정밀하고 오묘한 게임, 바둑. 한집 또는 반집을 다투는 정밀성 때문에 고도의 계산력을 요구하는 수학적인 게임인 동시에 `초반에 큰 집을 지으면 반드시 진다` `작은 것을 탐하면 큰 것을 잃는다(小貪大失)` 등 인생을 살아가는 교훈을 되새기게 하는 심오한 기예이기도 하다. 대국적 시야와 정밀한 계산이 동시에 요구된다는 면에서 영화 만들기도 바둑과 닮은 점이 있다.그것 때문만은 아니겠지만, 충무로에도 바둑 애호가들이 꽤 많다. 감독 중에서는 강우석, 이창동, 김상진, 박철수, 이민용, 김영빈, 김유진, 신승수, 이세룡 감독 등이 유명하다. 제작자 중에서는 기획시대 유인택, 씨네월드 이준익, 씨네라인 석명홍 대표 등 배우로는 안성기, 김일우, 장진영씨 등이 있다. 스탭 중에서는 사진작가 송기철, 촬영감독 박희주, 조명감독 임재영씨 등이 바둑 애호가다. 실제로 씨네월드의 <달마야 놀자> 촬영중에는 숙소에 바둑판을 갖고 가 대표와 촬영감독, 조명감독이 모여 바둑을 두곤 했다고한다. 꼭 바둑 때문은 아니겠지만 숙소를 침대방 대신 온돌방을 택한 것도 바둑을 두기 위한 `포석`임에 틀림없다는 것이 주변의 평이다.바둑두는 스타일도 각각인데, 평소 성격과 많이 닮아 있다. 지금 <오아시스>를 촬영중인 이창동 감독은 3급 정도의 실력을 자랑하는데, 김상진 감독에 따르면 영화계 최고수일 것이라고. 평소 성격과 어울리게 꼼꼼히 수를 읽는 장고파. 이스트필름의 한 직원은 이창동 감독이 어느 영화잡지 기자와 바둑두는 것을 옆에서 지켜보다 답답해서 가슴이 터지는 줄 알았다고 털어놓았다. 배우 설경구씨 등 주변 사람들이 “배고파요, 감독님 빨리 밥먹으러 가요” 하고 조르는 소리도 듣는 둥 마는 둥 묵묵히 바둑을 두었다고. <봉자>의 박철수 감독은 모든 것을 잊고 싶을 때, 머리를 비우고 싶을 때 바둑을 둔다. 그래서 현장에선 바둑을 멀리한다. 영화찍는 스타일처럼 바둑도 속전속결형이다. 모험을 즐기는 편이라 전체 판세를 보고 순발력 있게 두는 편. 상대가 돌을 놓기가 무섭게 대응하며, 한판 두는 데 20∼30분 정도밖에 안 걸린다. 현장에서 김일우, 신승수, 안성기 등이 바둑두는 모습을 보다가 빠져들었다는 박철수 감독은 지금도 연출부 뽑을 때 “바둑 둘 줄 아느냐”고 꼭 물어본다.
<할렐루야>의 신승수 감독도 박철수 감독 못지않게 속전속결형이며, 혼자서 책보고 두기도 하는 연습파. 바둑을 두면서 말을 많이 하는 편이다. 말이 많기로는 씨네월드 이준익 대표, 씨네라인 석명홍 대표도 유명하다. 두 사람이 주로 같이 두는데, 바둑을 두는지 수다를 떠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말을 많이 주고받고 추임새를 많이 넣는 등 유쾌한 대국을 즐긴다. <주유소 습격사건>의 김상진 감독은 실력도 비슷하고 스타일도 유사한 강우석 감독과 많이 둔다. 실력은 5∼6급쯤이고, 승부는 엎치락뒤치락한다. 두사람 모두 전투적이고 호전적인 스타일이라 급하게 두고, 절대 양보하지 않는다. 6급 정도 실력인 기획시대 유인택 대표도 장고하지 않고 시원시원하게 두는 편. 판 전체를 길게 보지만 대신 잔수나 포석에 약하다고. 바둑을 둘 때는 꼭 이길 필요있나 생각하지만, 그렇다고 한번 둔 수를 물러주는 법은 없다. 배우 안성기씨는 난공불락의 `기사`다. 평소의 분위기 그대로, 바둑두는 것도 꼼꼼하고 침착한 스타일이다. 실력은 4∼5급 정도. 촬영현장에서 짬짬이 기보도 들여다보면서 공부하는 학구파이기도 하다. 역시 장고파 계열이어서 박철수 감독은 “웬만한 인내심을 갖지 않고는 상대하지 말아야 한다”고 `훈수`한다. 치밀한 전략을 세우고 대국을 하기 때문에 함께 두노라면 숨이 막힐 듯하다고.위정훈<사진설명>1. 이창동 감독 2.신승수 감독 3. 김상진 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