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영화들은 몇번을 다시 보아도 매번 새로운 깨달음을 얻는다. 당연한 말이지만 요즘처럼 많은 영화들이 정신없이 흘러가는 시기에 한번쯤 곱씹어보아야 할 말인 것 같다. 이에 고맙게도 부산 영화의 전당에서는 5월20일부터 6월5일까지 12편의 나루세 미키오 영화를 35mm필름으로 상영하는 ‘앙코르! 나루세 미키오’전을 진행할 예정이다. 초기작에 속하는 <아내여 장미처럼>에서부터 유작인 <흐트러진 구름>에 이르기까지, 나루세 미키오가 활동했던 거의 대부분의 시기에 걸친 대표작 12편을 상영한다.
나루세 미키오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그가 보여주었던 ‘여성’들의 삶에 대한 관심일 것이다. 그중에서도 나카노 미노루의 원작 소설 <두 아내>를 바탕으로, 어머니와 새로 들어온 아버지의 첩, 그리고 이런 ‘두 아내’를 거느리고 사는 아버지의 모습을 딸의 시선으로 바라보며, 여성으로서 가족과 사랑의 의미를 깨닫는 과정을 그린 <아내여 장미처럼>(1935)과 전쟁 이후 남편과 아들을 잃은 엄마가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바라보는 어린 딸의 시선을 담은 <엄마>(1952), 어려운 환경 속에서 부모형제와 갈등을 겪는 딸들의 심리를 섬세하게 그려낸 <번개>(1952)와 <오누이>(1953), 그리고 아들의 외도로 의지할 곳 없는 신세가 된 며느리와 그녀를 측은지심으로 바라보는 시아버지 사이의 애틋한 감정을 절제된 방식으로 담아낸 <산의 소리>(1954)에는 가족이라는 보수적인 집단 내에서의 여성의 모습이 잘 드러나 있다. 특히 <산의 소리>는 하라 세쓰코를 매개로, 딸과 (시)아버지와의 미묘한 관계를 담았다는 점에서 오즈 야스지로의 <만춘>이 떠오르기도 한다.
한편 가족을 떠난 나루세의 여성들은 사랑에 실패하거나 화류계 여성으로 또 한번 힘든 시간을 겪는다. <만국>(1954)과 <흐르다>(1956)는 나이가 들어 더이상 게이샤로 살아갈 수 없게 된 이들이 겪는 어려움을 그리고 있다. 나루세의 대표작 중 하나로 빈번하게 손꼽히는 <부운>(1955)은 <번개>와 <만국>과 더불어 하야시 후미코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작품으로, 유부남과 사랑에 빠진 여주인공이 겪는 심리적 갈등을 꽤 오랫동안 바라본다.
종종 나루세의 영화가 비슷한 시기에 활동했던 오즈의 영화들과 비교되며 그의 영화와 ‘어떻게 다른가’를 중심에 놓고 기술되지만, 이때 잘 언급되지 않는 것이 바로 화면 사이즈의 문제다. 오즈가 자신의 영화에서 항상 1.37:1의 화면비율을 고집한 반면, 나루세는 1920년대 쇼치쿠에서 영화 경력을 시작해 1934년 도호의 전신이었던 PCL로 옮겨서 활동하다가, 1950년대 후반 일본의 영화사들이 앞다투어 시네마스코프를 도입하던 시기와 만나자, 자연스럽게 도호에서 2.35:1의 화면비를 받아들였다. 이번 상영작 중 <여자가 계단을 오를 때>(1960), <방랑기>(1962), <흐트러지다>(1964), <흐트러진 구름>(1967)이 이에 해당하는데, 특히 술집의 계단을 수직 이동하는 주인공 게이코의 움직임을 수평으로 길게 펼쳐진 시네마스코프의 화면으로 담아낸 <여자가 계단을 오를 때>와 이번 상영작 중 유일한 컬러 시네마스코프 영화인 <흐트러진 구름>은 꼭 챙겨보길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