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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오션스 일레븐
2002-02-26

시사실/오션스 일레븐

■ Story

뉴저지 교도소에서 풀려난 대니 오션(조지 클루니)은 출감하자마자 라스베이거스 카지노 세곳의 현금이 모이는 철통 같은 금고를 터는 계획을 추진한다. 세 카지노의 주인은 대니가 여전히 사랑하고 있는 전처 테스(줄리아 로버츠)의 애인이자 냉혈한 사업가인 테리 베네딕트(앤디 가르시아). 대니는 할리우드 배우들에게 카드를 가르치며 지루한 나날을 보내던 단짝 러스티 라이언(브래드 피트)과 재결합하고 멤버 규합에 나선다. 물주 루벤(엘리엇 굴드), 폭파전문가 배셔(돈 치들), 곡예사 옌(샤오보 퀸), 운송담당 쌍둥이 형제 터크(스캇 캔)와 버질(케이시 애플렉), 베테랑 사기꾼 사울(칼 레이너), 보안전문가 리빙스턴(에디 제미슨), 천재 소매치기 라이너스(맷 데이먼) 등은 대니와 러스티의 치밀한 계획 아래 1억5천만달러가 걸린 불가능한 미션에 착수한다.

■ Review 대니 오션의 대담무쌍한 카지노 강도계획에는 열한명의 최정예가 필요하다. 그들은 핵무기고 수준의 보안시스템을 갖춘 지하 200피트의 금고에 침투해야 한다. 12시간마다 바뀌는 여섯 자리 암호로 잠긴 도어를 통과해 지문 인식으로 작동하고 적외선 감시망이 깔린 엘리베이터 갱을 내려가면 음성인식장치와 무장경비가 기다린다. 그것만 지나면? 누워서 떡 먹기, 라고 오션은 말한다. 물론 1억5천만달러의 현금 뭉치를 안고 갔던 경로를 되짚어나오는 ‘간단한’ 과제 하나가 남아 있긴 하지만. 스티븐 소더버그 감독이 <오션스 일레븐>에서 감행한 거사도 비슷하다. 오션처럼 높은 목표를 세운 감독은 열한명 이상의 최강 멤버를 꾸려서 러스티 라이언만큼이나 교묘한 책략으로 관객의 주의를 완벽하게 날치기하는 완전 범죄에 도전한다. 그의 판돈은 제작비 8500만달러. 결과는? 오션과 소더버그의 깔끔한 승리다.

프랭크 시내트라를 방주로 모인 스타 패거리 랫 팩(Rat Pack)의 1960년 영화 <오션스 일레븐>은 노쇠한 감독이 자아에 도취된 배우들에게 휘둘려 만든 ‘나쁜’ 영화로 기억돼왔다. 랫 팩의 ‘클럽 하우스’격인 라스베이거스 샌즈호텔에서 진탕 노는 근사한 스타들을 보여주고 대중에게 그 파티에 초대받지 못한 그들의 인생이 얼마나 시시한지 일깨워 주는 것이 목표였던. 어쨌거나 오리지널 <오션스 일레븐>과 새로운 <오션스 일레븐>은 영화와 영화 만들기 과정이 닮았다는 점에서는 적어도 통하는 셈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재미 외에 아무것도 의도하지 않았다”는 감독의 확실한 제품 설명이 첨부된 영화 <오션스 일레븐>이 주는 첫 즐거움은 <제5전선>류의 앙상블이 발하는 묘미다. 로맨티스트 대니가 기막힌 아이디어를 내면 러스티는 실행 스토리보드를 그린다. 눈치빠른 딜러 프랭크는 정보를 수집하고 배셔가 적재적소에 폭탄을 터뜨리면 베테랑 사기꾼 사울이 상대를 현혹하고 쌍둥이 형제가 유치한 언쟁으로 감시자들의 넋을 빼놓아 곡예사 옌을 금고에 들여보낸다. 오션의 드림팀은 이 모든 쇼의 리허설 세트까지 마련할 돈을 대는 물주까지 포함한다. <오션스 일레븐>의 두 번째 메인 이벤트는 말할 것도 없이 한 화면 속에 넉살좋게 둘러앉은 특급 배우들의 파워. 극중 할리우드 스타들이 팬에게 포위된 가운데 브래드 피트와 조지 클루니가 눈길 한번 받지 않고 유유히 걸어나오는 장면이나 “신인 줄리아 로버츠양을 소개하며”라는 자막은 <오션스 일레븐>이니까 구사할 수 있는 농담이다. 곰곰이 따져보면 다른 수작 범죄영화에 비해 탁월할 것도 없는 <오션스 일레븐>의 플롯을 몇배 기발하고 화려하게 보이도록 만드는 힘도 바로 스타들의 당당한 존재감이다. 매력과 장기가 뚜렷한 일군의 인물들이 합목적적으로 정확히 움직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짜릿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아는 소더버그 감독은 서스펜스를 위해 앞뒤 재지 않고 일사천리로 사건을 펼쳐나간다.

<오션스 일레븐>의 이 경쾌한 무궁동(無窮動)은 영화가 다 끝날 무렵에야 잠깐 숨을 고른다. 그때까지 <오션스 일레븐>에는 그야말로 피도 눈물도 없다. 리더와 루키, 과거의 부부, 연적 등등 심리전의 계기는 많고 많지만, 열한명의 시한부 동지들은 결코 개인사를 묻거나 콤플렉스를 털어놓거나 지갑 속에 든 사진을 보여주지 않는다. 1억5천만달러를 손에 넣고 나서야 생각났다는 듯 감독은 이들의 얼굴을 천천히 들여다본다. 드뷔시의 <달빛>을 반주 삼아 춤추는 분수 앞에 늘어선 사내들은 보일 듯 말 듯 미소를 짓고 하나둘 떠난다. 그들의 만족감은 관객의 입 안에도 퍼져나간다. 그 맛은 뜨거운 목욕 뒤에 들이켜는 찬 맥주를 연상시킨다.

사회성 짙은 주제와 형식미를 겸한 <트래픽>과 <에린 브로코비치>로 지난해 오스카에서 이중 후보지명을 받았던 소더버그는 올해 오스카 근처에도 가지 않았다. 음악적 해석을 철저히 배제한 고난도의 ‘연습곡’같은 <오션스 일레븐>에서 그가 원한 것은 극중 인물의 대사처럼 “일류들과 일하는” 즐거움과 영화적 재미를 빚어내는 자기만족이 전부인 양 보인다. 스티븐 소더버그는 <오션스 일레븐>에서도 에드거 앨런 포의 <도둑맞은 편지>에 나오는 D장관처럼 훤한 장소에 비밀 편지를 놓아두고 시치미를 뗀다. 자꾸만 움직이는 그의 재능은 모두가 겉봉을 읽을 수 있지만 정확한 내용을 읽기는 의외로 까다로운 편지와 같다. 그나저나 <오션스 일레븐>을 볼 때는 팝콘이 따로 필요없을지도 모른다. 영화 자체가 최적의 온도로 튀기고 절묘한 당도의 버터 시럽으로 양념한 ‘예술적 경지’의 팝콘이기 때문이다. 김혜리 vermeer@hani.co.kr

<오션스 일레븐>의 조연들

11인조의 앙상블

리더십은 조지 클루니와 브래드 피트의 차지지만, <오션스 일레븐>은 명실상부한 앙상블 영화다. 그저 등장인물이 많은 영화가 아니라 모든 캐릭터가 내러티브의 벨트와 베어링으로 불가결하게 기능하는 드라마라는 의미에서. 소더버그는 11명 인물의 성격이나 개인사에 지나치게 파고들지 않으면서도 캐릭터의 색깔이 섞이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였다. 스타가 아닌 멤버 가운데 제일 인상적인 인물은 두 베테랑. 엘리엇 굴드가 연기한 일당의 ‘물주’ 루벤은 전통을 존경할 줄 모르는 사업가 테리에 대한 분노 때문에 그만 오션의 황당한 계획에 말려든다. 그의 요란한 장신구와 선글라스는 ‘테마파크’로 변모하기 전 라스베이거스의 한 시절을 떠올리게 한다. 79살의 배우 칼 레이너가 분한 전설적인 사기꾼 사울 블룸은 은퇴하여 참한 연애나 하며 살려고 하지만 내심 근질근질했던 일에 대한 향수가 “우리 같은 사람은 강해지거나 물컹해질 뿐 변할 수는 없다”는 러스티의 부추김에 발동한다. 기관지가 약해 따뜻한 라스베이거스로 이직한 딜러 프랭크는 제일 먼저 포섭된 멤버. 인종차별주의를 한탄하며 “왜? 아예 블랙 잭을 화이트 잭이라고 하지?”라고 외치는 장면이 코미디의 압권이다. 이런 종류의 팀에 빠지지 않는 것이 ‘고문관’ 스타일의 기술 전문가. 에디 제미슨이 분한 도청 감시 전문가 리빙스턴은 내내 땀범벅이 되어 히스테리를 일으키지만 임무만큼은 실수없이 완수한다. 실제로 영어가 서툰 샤오보 퀸은 중국인 곡예사 옌으로 분해 <미션 임파서블>의 톰 크루즈가 와이어에 몸을 매달아 보여준 묘기를 유연한 관절 하나로 소화했다. 스콧 칸과 케이시 애플렉이 연기한 운송담당의 말로이 형제는 모르몬 교도로서 기계를 다루는 재주도 뛰어나지만 주변의 판단력을 흐리고 짜증을 유발하는 유치한 말다툼이 작전에 더 크게 이바지하는 괴짜들이다. 이 밖에도 <오션스 일레븐>에는 원래 팔이 하나뿐인 캐릭터도 있었으나 CG 예산 절감을 위해 대체됐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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