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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FF 37.5] 퓨전이라고? 전통이다!
장영엽 사진 백종헌 2014-05-16

<역린>의 정경희 의상감독

2014 <역린> 2013 <조선미녀삼총사> 2012 <나는 왕이로소이다> 2011 <혈투> 2010 <방자전> 2009 <작은 연못> 2008 <신기전> 2006 <음란서생> <길> 2005 <형사 Duelist> <혈의 누> 2004 <아홉살 인생> 2002 <YMCA야구단> 1999 <>

정경희 의상감독의 별명은 ‘한복 아줌마’다. “사극을 많이 했다고, 사람들이 그렇게 부르더라. (웃음)” <혈의 누>와 <형사 Duelist>, <음란서생>과 <신기전>, <방자전>과 <역린>이 모두 그녀의 작품이니 수긍할 수밖에 없는 별명이다. 배우들에게 그녀의 의상을 입혀본 스탭들은 독특한 색감과 질감이 정경희표 사극 의상의 매력이라고 입을 모아 말한다. 당장 4월30일에 개봉한 <역린>만 보아도 그렇다. 정조의 곤룡포 밑으로 촤르르 흘러내리는 주름천은 현대 여성들이 입는 플리츠 스커트를 닮았다. “곤룡포를 입으면 사실 번지르르한 느낌이잖나. 그런데 <역린>의 정조는 부드러운 사람은 아니니까. 왕의 거친 내면을 표현하기 위해 곤룡포 속에 입는 옷에는 선이 많이 들어간 주름천을 사용했다.” 심미적으로 깊은 인상을 남기지만, 사실은 등장인물의 심리에 더 주의를 기울이는 과정에서 탄생한 그녀의 의상은 영화가 미처 보여주지 못하는 인물의 속마음을 담고 있다. 정조의 곤룡포 흉배에 수놓은 성난 용, 흰 치마 아래 은밀하게 드러난 정순왕후의 빨간 속치마 등이 그 증거다.

과감한 소재와 대담한 색깔을 사용하는 만큼 정경희 의상감독의 옷을 두고 “고증을 따르지 않았다”, “저 옷은 완전히 퓨전이다”라고 말하는 이들도 있지만 그녀의 생각은 다르다. “대학교 1학년 때부터 한복을 모았다. 황학동 시장도 가고, 독특한 옷을 발견하면 옷가게 주인을 졸라 쟁여두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친구 어머니가 미국으로 이민을 가시면서 내게 시집올 때 가지고 왔던 한복을 모두 주셨다. 함경북도 출신이었던 그분 할머니의 옷까지 받았는데, 한복이 얼마나 다양한 줄 아나. 사극 의상 하면 으레 떠올리는 옷보다 훨씬 과감하고 색깔도 예쁘더라. 심지어 옷깃에 호랑이 털을 덧댄 옷도 있었다. 그 옷들로부터 영감을 받아 무지기 치마도 만들고, <음란서생>의 속저고리도 만들었다. 퓨전이라고? 나에게 그런 얘기하면 안 된다. 실제로 존재하는 옷을 기본틀로 삼아 만들었으니까.”

정경희 의상감독의 입봉작은 배창호 감독의 1999년작 <>이다. 대학에서 무대의상을 전공한 후 국립극장과 롯데월드의 의상 디자이너로 일한 그녀는 함께 작업하던 업체 담당자의 제안으로 영화의상 일을 접한 뒤 곧 영화작업의 매력에 빠져들었다. “공연이 끝날 때마다 무대에 올렸던 옷이 남지 않아 아쉬웠다. 의상을 영원히 기록으로 남길 수 있는 영화 매체만의 매력이 있더라.” 재미있는 건 그녀는 영화도, 한복도 썩 좋아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상한가? 좋아하는 것도 아닌데도 일을 계속 하고 있으니. 한복은 입기 불편하고 부해 보여서 싫어한다. 그런데 그 불편함 때문에 이 일을 계속 하고 있는 것 같다. 내가 좋아하는 한복, 내가 편안하게 느낄 수 있는 한복을 만들 때까지 계속 옷을 만들고 싶다.” 불편한 걸 불편하지 않게 만들고 싶은 오기. 이게 바로 베테랑 ‘한복 아줌마’의 원동력이다.

묵주

“<역린>을 작업하는 도중에 갑자기 갱년기가 왔다.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살아왔는데, 이제야 가족으로서의 내 역할과 일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게 됐다. 많은 것을 속으로 꾹꾹 눌러담고 살아야 했던 혜경궁 홍씨의 마음을 알 것만 같고…. 누가 종교 믿는다고 할 때 거들떠보지도 않았는데, 어느새 손에 묵주를 쥐게 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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