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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피해자이면서 가해자
이다혜 2014-04-10

<침묵의 거리에서> 오쿠다 히데오 지음 / 민음사 펴냄

한 학생이 학교에서 죽은 채 발견된다. 학생의 등에는 꼬집힌 상처가 수도 없고, 휴대폰에는 숙제부터 스포츠음료까지 같은 반 아이들에게 ‘셔틀’당한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동네에서 다 아는 부잣집 외아들이지만 왜소한 체격에, 사건을 취재하러온 기자들이 “따돌림당하게 생겼잖아”라고 수군거리는 인상. 경찰은 집단 따돌림에 대해 수사를 시작하고 같은 테니스부 소속이던 네 아이를 본격 조사하기 시작한다.

한국에서도 베스트셀러였던 <공중그네> <남쪽으로 튀어!>를 쓴 오쿠다 히데오의 신작인 <침묵의 거리에서>는 중학생의 사망사건에 연루된 여러 사람의 상황을 차례로 보여주며 진실에 접근하고자 시도한다. 처음 시신을 발견한 선생을 비롯한 학교 관계자들과 죽은 아이의 부모와 친척, 가해자로 몰린 아이들과 그 부모들, 경찰과 검사가 이 사건을 각자의 관점에서 바라본다. 오쿠다 히데오의 유머감각을 좋아하는 독자라면 묵직한 분위기에 놀랄지도 모르지만 등장인물 소개가 끝난 뒤 이야기에 가속도를 붙여 몰입하게 하는 솜씨는 여전하다.

단순해 보이던 가해자-피해자의 구도를 의심하게 될 즈음 제목으로 쓰인 ‘침묵의 거리’라는 표현을 이해하게 된다. “중학생이란 생물은 연못 속의 물고기 같은 존재라, 모두 같은 물을 마실 수밖에 없어.” 진흙탕일지언정 같은 연못 물을 마셔야 하는 상황이 된 이상 책임감과 배려조차 아이들을 도울 수 없게 되어버린다. 괴롭힘을 당하던 아이는 자기보다 약한 대상을 찾기 무섭게 당했던 대로 행동하고 만다. 이 책의 가장 인상적인 부분 중 하나는 어른들의 대처법이다. 제법 잘나간다는 사실을 숨기지 않는 변호사는 진실을 가리자는 학부모에게 잘라 말한다. “감정에 이성을 들이대면, 그때는 상대의 입을 막을 수 있겠지. 하지만 화근은 남아요. 같은 동네 주민끼리 그런 일은 피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특히 일본인은 농경민족에다 공동체 의식이 강하기 때문에 이성으로 감성을 제어하는 걸 꺼려요. 흑백을 확실히 가리자고 나서면 더 분란을 일으키는 꼴이오. 한동안은 애매한 채로 상황을 지켜봅시다. 그것도 우리의 지혜니까요.” 억울하다는 목소리를 잠재우는 꾸짖음. 일본인이라는 단어가 한국인으로 겹쳐 보이는 것은 우연의 일치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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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이면서 가해자 <침묵의 거리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