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영화 오타쿠.”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영상이론과 김소영 교수의 유머러스한 자평이다. 그런 그녀는 아시아영화를 중심으로 한 횡단적 연구를 멈추지 않는다. 트랜스: 아시아영상문화연구소 소장으로서 마포문화재단과 공동으로 ‘2014 트랜스 아카데미’를 개최하는 것만 봐도 그렇다. 예년에 비해 행사 내용을 더 알차게 구성했다. 3월26일부터 5월28일까지 매주 1회씩 총 10회에 걸쳐 진행되는 이번 강좌의 주제는 ‘한국영화와 인문학: 미학, 윤리, 정치학’이다. 그간 역사, 정치, 사회학적 방법론으로 영화라는 텍스트를 풍부하게 해석해온 연구자들이 마련한 대중 강좌다. <풍경>의 장률, <수련>의 김이창 감독 등이 초청돼 관객과의 대화도 진행한다.
-‘트랜스 아카데미’는 언제부터 기획한 건가. =2000년 문을 연 트랜스: 아시아영상문화연구소에서 2007년부터 매년 두 차례씩 ‘트랜스 아카데미’를 개최해왔다. 컨퍼런스나 세미나를 통해 영화이론에 대한 학문적 담론은 어느 정도 형성됐지만 대중화하기엔 많이 부족하다. 제작쪽에 비해 영화이론은 특히나 더 그렇다. 이런 자리를 통해서 영화 연구자, 예술가, 대중이 자연스럽게 만나는 게 필요해 보였다.
-연구소명이나 강좌명에 영어의 접두사 ‘트랜스’가 계속 붙는다. =기본적으로는 발터 베냐민이 말하는 ‘번역과 횡단’의 의미가 있다. 또 하나는 역(易), 즉 ‘변화와 전환’이다. 영화나 영상이라는 것도 문화적 차원의 번역의 일환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올해는 마포아트센터와 함께한다. 이 지역에 강좌를 열게 된 특별한 이유라도 있나. =최근 신촌과 마포구 일대에 재미있는 바람이 불고 있는 것 같다. 다른 구에 비해 비혼자 비율도 높고 공동체 상영 붐도 있고. 대중 강좌의 거점을 이곳으로 잡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전부터 지역 주민이나 이곳 학생들을 만나보고 싶기도 했고, 마포아트센터쪽의 제안도 있었다. 이 프로젝트를 장기적으로 가져갈 생각이다.
-이번 강좌를 비롯해 영화를 인문, 사회과학 분야의 학문들과 엮어서 들여다보려는 시도를 꾸준히 해오고 있다. =영화 그 자체가 역사의 유물이고 사회적 산물이 아닌가. 관련 분야의 사람들이 다 같이 모여서 들여다봐야 영화가 제대로 보이는 것 같다.
-‘한국영화와 세계의 파편들: 디아스포라에 응답할 책임 혹은 윤리?’라는 강좌는 직접 강연한다. =고려인들의 이야기를 다룬 <열린 도시 프로젝트>라는 다큐멘터리를 찍으며 현지조사를 하던 중에 경이로운 발견을 했다. 중앙아시아 지역에 옛 소련의 국립영화학교 출신 감독들이 상당히 많더라. 그중에서 카자흐스탄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송 라브렌치 감독의 영화를 입수하게 됐다. 러시아 말과 고려 말이 뒤섞인 그의 영화를 보는데 이 지역의 영화를 어떤 식으로 수용해야 할지 고민이 드는 거다. 한국의 근현대사와 긴밀한 관계에 놓인 지역이지만 우리가 거의 경험해보지 못한 지역 아닌가.
-다큐멘터리 작품을 다루는 강좌들도 꽤 있다. =내가 특별히 주목한 작품은 김이창 감독의 <수련>이다. 자기 삶을 마음먹고 기록하고 그걸 관철시키는 방식이 놀라웠다. 마치 ‘퓨어시네마’(순수영화)를 보는 것 같았다. 김지훈 선생은 <용산> <미국의 바람과 불> <논픽션 다이어리> 등을 통해 ‘한국 독립다큐멘터리와 아카이브’에 대해 이야기할 것이다. 장률의 <풍경>, 박이용의 <가리봉>을 보며 강의하는 하승우 선생의 강좌도 주목하길 바란다.
-영화 전문 연구자들뿐 아니라 지역 주민들의 강좌 참여를 이끌기 위해 고심하는 부분이 있나. =기본적으로 나는 영화 강연을 할 때 클립 영상을 많이 사용하는 편이다. 인문학은 사유를 바탕으로 하지만 영화는 직접 영상을 보고 곧바로 느끼는 게 많은 분야인 것 같다. 이런 방식이 영화이론의 문턱을 낮출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2012년에 ‘비판적 영화: 사회를 다시 보다’라는 주제로 진행한 강좌가 호응이 좋았다. <두 개의 문> <파수꾼> 등 각이 살아 있는 영화들 위주로 프로그래밍한 것이 유효한 것 같다. SNS 등 뉴미디어와 재스민 혁명(튀니지 혁명)의 관계를 다룬 것도 평이 좋았고. 영상문화의 범위를 좀더 넓게 가져가다보면 대중적 호응도 커지지 않겠나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