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떻게 할리우드에서 백 편의 영화를 만들고 한푼도 잃지 않았는가>는 ‘자뻑’으로 가득한 회고록이다. 하지만 공대 출신으로 이십세기 폭스사에서 문서배달사원으로 영화일을 시작해, 스토리 분석가를 거쳐 감독 겸 제작자로서 자신의 제국을 일군 ‘B무비의 제왕’이자 인디 영화인들의 우상이 되기까지, 로저 코먼은 충분히 그럴 만한 자격이 있는 사람이다. 서문에서 밝히듯 50편이 넘는 저예산영화를 감독하고 ‘뉴 월드 픽처스’와 ‘콩코드 뉴 호라이즌’을 설립해 150편 이상을 제작, 배급했는데 그가 그렇게 손댄 300편의 ‘이상한 영화’ 중 280편이 이익을 남겼다. 개봉 당시에는 ‘드라이브 인 시어터’를 거점으로 오직 흥행만을 노린 싸구려 B무비라는 소리도 들었지만 세월이 흘러 파리의 시네마테크 프랑세즈와 런던의 국립영화극장, 그리고 뉴욕의 현대미술관에서 그 영화들의 회고전이 열렸다. 모두가 궁핍했던 대공황 시대, 본편에 대한 ‘원 플러스 원’ 개념으로 시작했던 B무비가 이른바 ‘로저 코먼 사단’을 통해 본격적, 조직적으로 A무비를 교란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 책에는 영화사 혹은 영화이론 ‘교재’가 다루지 않는, 1960, 70년대 할리우드의 숨겨진 역사가 생생하게 묘사되고 있다. 먼저 ‘로저 코먼 학교’라고 불릴 정도로 그는 수많은 인재를 배출했다.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의 <디멘시아 13>(1963), 마틴 스코시즈의 <바바라 허쉬의 공황시대>(1972)를 제작한 것은 물론 조너선 드미, 조 단테, 론 하워드 감독 등도 그 ‘학교’ 출신이다. 스탭으로 보자면 로저 코먼의 <블러디 마마>(1969)로 데뷔한 존 알론조 촬영감독이 이후 로만 폴란스키의 <차이나타운>(1974), 브라이언 드 팔마의 <스카페이스>(1983)를 촬영했고 피터 보그다노비치 감독은 로저 코먼의 <붉은 죽음의 마스크>(1964)의 촬영감독 출신이다. 배우로는 역시 그가 감독한 <머신 건 켈리>(1958)의 찰스 브론슨, <공포의 구멍가게>(1960)의 잭 니콜슨을 빼놓을 수 없다. 커플도 있다. 뉴 월드 픽처스의 제작부였던 게일 앤 허드는 무려 존 세일즈가 각본을 쓴, 하지만 <7인의 사무라이>와 <스타워즈>의 ‘짬뽕’인 <우주의 7인>(1980)에서 아트디렉터였던 제임스 카메론을 만나 사귀기 시작해 이후 <터미네이터>(1984)를 만들고 결혼까지 했다.
<나는 어떻게 할리우드에서 백 편의 영화를 만들고 한푼도 잃지 않았는가>에는 그와 함께 했던 수많은 영화인들의 인터뷰가 곁들어져 있는데, 마틴 스코시즈는 “뉴욕대학에서 잉마르 베리만의 <산딸기>(1957)를 공부하는 것보다 싸구려 극장에서 로저 코먼의 영화를 공부하는 것이 더 좋았다”라고 고백하고 있다. 특히 그가 좋아했던, 실제 오토바이 폭주족을 캐스팅한 로저 코먼의 <와일드 엔젤스>(1966)는 바로 ‘아메리칸 뉴시네마’의 진정한 신호탄으로 여겨지는 데니스 호퍼의 <이지 라이더>(1969)의 원조쯤 된다. 실제로 <이지 라이더>의 주인공 피터 폰다는 앞서 <와일드 엔젤스>의 주인공이었는데, 그와 함께 로저 코먼의 <트립>(1967)에서 각각 조감독과 시나리오작가였던 데니스 호퍼와 잭 니콜슨이 내놓은 아이템이 바로 <이지 라이더>였다. 하지만 다소 큰 예산에 부담을 느낀 로저 코먼이 제작을 망설이는 사이, 위대한 영화사의 주인공이 바뀌게 된 것이다. 이처럼 이 책은 흠모와 질투가 뒤범벅된 할리우드의 성공과 좌절의 기록이다. 그를 따라가다 보면 현장과 산업의 진짜 지도가 그려진다. 그가 얘기하길, “영화란 ‘예술’과 ‘상술’의 조화로운 결합이다”.
당신이 당장 위의 책을 읽을 수 없다면, <로버트 로드리게즈의 십 분짜리 영화학교> 로버트 로드리게즈 지음 / 고영범 옮김 / 도서출판 강 펴냄 를 추천합니다
23살의 나이에 7천달러로 혼자 시나리오를 쓰고 촬영, 편집, 음악까지 도맡아 만든 <엘 마리아치>(1992)의 로버트 로드리게즈가 써내려간 흥미진진한 제작일지다. 제작비를 모으는 것에서부터 예상치 못한 행운이 끼어들기까지, ‘무’에서 ‘유’를 창조해가는 그 고난의 인디 정신이 빼곡히 담겨 있다. ‘집 밖으로 나가 일단 찍어라!’라는 이 ‘바닥’의 명제를 가장 충실히 보여주는 사례다. 아마도 전성기의 로저 코먼이라면 당장 그를 자신의 사단으로 끌어들였을 것. 추천사를 쓴 류승완 감독 왈, “데뷔작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를 만들면서 내내 가까이 두고 벤치마킹한 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