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메리칸 허슬>의 주인공은 세 사람이다. 아니, 네 사람이라고 하자. 첫 번째는 어빙 로젠필드(크리스천 베일), 사기꾼이다. 무언가 자신이 대단한 금전적 인맥이라도 있는 것처럼 허풍을 떨고 다닌 다음 급전이 필요한 사람들이 그를 찾아와 그 인맥에게 연결 좀 해달라고 부탁해오면 그들에게 알선료 명목으로 돈을 챙긴 뒤 일이 잘 안 됐다며 입을 씻는다. 두 번째는 시드니 프로서(에이미 애덤스), 물론 사기꾼이다. 명민하고 강인한 여인이었지만 어빙을 만나 사랑에 빠지고 동료가 되면서 사기꾼이 된다. 세 번째는 리치 디마소(브래들리 쿠퍼), 사기꾼 노릇을 하는 FBI 요원이다. 어빙과 시드니를 협박하고 이용하여 정계의 거물을 잡아넣으려고 머리를 쓴다. 네 번째는 로잘린(제니퍼 로렌스)으로 사기꾼 어빙의 아내다. 사태의 향방을 바꾸는 일촉즉발의 변수. 이 네명의 인물이 서로 사랑하고 이용하고 대치하면서 한치 앞을 못 볼 정도로 뒤엉키게 되는 인생의 한 국면에 관한 이야기가 <아메리칸 허슬>이다.
<파이터> <실버라이닝 플레이북>으로 주가를 올리고 있는 데이비드 O. 러셀이 연출을 맡았다. 일명 앱스캠 스캔들이라 불리는, 1970년대에 있었던 실화를 영화로 옮긴 것이라고 한다. FBI가 사기꾼 멜 와인버그(영화 속 어빙 로젠필드의 모델)를 조종하여 뉴저지 캠든시의 시장 등을 체포한 사건이다. 첫 장면에서 영화는 요점을 분명히 하고 시작한다. 배는 불룩 튀어나오고 머리는 심하게 벗겨진, 하지만 당당함까지 내비치는 주인공 어빙이 우스꽝스러우면서도 우아하게 머리칼을 한올 한올 정성스럽게 빗으며 부분 가발을 쓰고 있다. 영화는 이 장면을 관객의 시선이 충분히 머물 정도로 오래 보여준다.
요점은 이 사람이 바로 <배트맨> 시리즈의 크리스천 베일이라는 것이다. 브루스 웨인은 여기 없고 뚱뚱이 사기꾼만이 있다는 것이다. 혹은 <아메리칸 허슬>이 캐릭터의 구현에 힘쓰는 영화라는 강조다. 서사의 결은 기대했던 것보다 좀 미진하지만, 그럼에도 전체의 이야기가 긴장을 잃지 않고 끝까지 달려가는 것은, <아메리칸 허슬>의 서사가 거의 매번 캐릭터의 출현 또는 충돌에 의해 분기점을 맞고 힘을 받아 앞으로 튕겨나가기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중반부 이후의 중요한 변수가 될 로잘린은 이 영화의 제대로 된 히든카드로서의 캐릭터다. <실버라이닝 플레이북>으로 확실히 자리를 잡은 감독 데이비드 O. 러셀은 비범함까지는 아니어도 확실히 자신만의 특정한 리듬과 감각을 지녔다. <아메리칸 허슬>에서 그의 리듬과 감각은 스스로의 역량 외에도 재능 있는 배우들, 매끄러운 스테디캠의 촬영술 등으로 훨씬 더 보강되고 있다. <오션스> 시리즈의 재미에 비교해도 큰 손색이 없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