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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된 것을 잘못되었다 말할 수 있는 용기 <또 하나의 약속>
송경원 2014-01-29

영화에 있어 실화는 양날의 검이다. 소재만으로도 강력한 사실성을 얻을 수 있는 반면 자칫하면 극과 사실의 경계에서 길을 헤맬 수도 있다. 이를 결정하는 건 단순히 영화적 완성도만의 문제는 아니다. 민감한 소재를 다루는 감독의 윤리적 태도와도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삼성반도체에서 근무하다 백혈병으로 사망한 고 황유미씨의 사연을 영화화한 <또 하나의 약속>은 이 점에서 확고한 태도를 견지한다. 이 영화는 일방적인 비판이나 원론적인 선악 구도를 벗어나 비극적인 사건을 겪으면서 비로소 빛을 발하는 ‘사람다움’에 주목하고 있다.

택시기사 상구(윤철민)는 소박하지만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있는 평범한 아버지다. 그는 집안에 보탬이 되고자 대학 대신 대기업에 취직한 딸 윤미(박희정)를 자랑스러워 하지만 한편으론 미안해한다. 그런 딸이 반도체 공장에 들어간 지 2년도 되지 않아 백혈병에 걸려 돌아왔을 때 상구는 아픈 거 말하지 않고 뭐했냐고 타박한다. 당장에 치료비가 필요해 회사에서 던져준 위로금을 받지만 딸의 상태는 점점 악화되고 결국 일한 시간보다 더 오랜 시간을 병마와 싸우다 딸은 세상을 떠난다. 윤미처럼 백혈병으로 괴로워하고 있는 동료들이 더 있다는 걸 알게 된 상구는 딸의 죽음을 세상으로부터 인정받기 위해 노무사 난주(김규리)와 함께 기나긴 싸움에 들어간다.

<또 하나의 약속>은 삼성반도체에서 일하다 백혈병에 걸린 노동자의 사연을 소재로 했지만 정치적 선동이나 고발을 목적으로 삼진 않는다. 영화는 가족을 잃은 이들이 뜻밖의 비극을 어떻게 극복해가는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렇다고 딸을 잃은 슬픔을 내밀어 관객에게 눈물을 강요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초/중반까지는 감정을 절제하고 빠르고 건조한 리듬으로 사건을 훑어간다. 여타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들이 선악 구도를 앞세워 쉽게 감정을 끌어내는 것과 다르게 <또 하나의 약속>은 세심한 균형을 유지하고 있으며, 이 점이 가장 큰 미덕이다. 딸을 잃은 아버지 이외에도 노동자의 권리를 먼저 생각하는 열혈 노무사와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다 각종 병에 걸리는 남성 엔지니어들의 사연은 이야기를 더욱 풍성하고 객관적으로 만들어준다. 몇몇 작위적인 대사와 상황에도 불구하고 본격적인 법정 투쟁에 들어서는 중반 이후엔 삼성 반도체를 둘러싼 일련의 사건에 대해 최대한 많은 정보를 편견 없이 전달하고 있다. 단순한 부성애를 넘어 잘못된 것을 잘못되었다 말할 수 있는 상식과 용기가 눈물 이상의 따뜻함을 남기는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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