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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성호, 박희본] 며느리 하나, 시어머니 다섯
이화정 사진 백종헌 2013-12-18

<출출한 여자> 감독 윤성호, 배우 박희본

지난 11월27일 유튜브에 공개된 <출출한 여자>는 호응에 힘입어 네이버, 카카오스토리 등에서 확대 상영 중이다. <출출한 여자>는 ‘먹방’을 표방한 트렌디한 소재와 ‘온라인 개봉’이라는 상영방식의 접점을 꾀한 신개념 영화. 총 6편의 에피소드로 구성됐으며, 1화와 6화를 윤성호 감독이 연출하고 이병헌, 이랑, 달재, 박현진 감독이 나머지 에피소드를 각각 연출했다. 10분 남짓의 개별 에피소드에선 직장생활, 친구와의 관계, 연애 문제로 골치 아픈 33살 제갈재영의 일상과 그녀의 스트레스를 날려줄 오늘의 요리와 실용적인 레시피가 소개된다. <고독한 미식가><하나씨의 간단요리> 등과 같은 일본 드라마를 떠올리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기획단계에서부터 참여했던 윤성호 감독과 주연배우 박희본에게 <출출한 여자>만의 독특한 레시피를 물었다.

-<할 수 있는 자가 구하라> <은하해방전선> <도약선생> 등을 통해 파트너십을 이뤘다. 윤성호 감독에게 대표 남자 배우가 박혁권이라면, 여자 배우는 박희본이다. 뮤즈라는 표현을 써야 할 것 같은데. =윤성호_희본씨가 본격적으로 주연을 한 게 <도약선생> 때부터였는데 한번 호흡이 맞으니 케이블 시트콤 <할 수 있는 자가 구하라> 때도 여주인공으로 희본씨를 찾게 되더라. 특히 이번에는 짧은 기간에 적은 예산으로 만들다보니 믿음직스럽고 친한 친구가 필요했다. 도전이라기보다는 편한 선택이었다. 희본씨와의 작업은 내 작품을 쭉 지켜봐온 이들에겐 익숙한 지점이다. 한편으로 너무 낯익은 선택이 아닐까도 싶었다. 그래서 기획을 한 박관수 PD가 처음에 6편을 다 연출해달라고 하기에 각 화별 감독을 다르게 가서 색깔을 달리해보자고 제안했다. 희본씨가 다른 감독들과는 어떤 화학작용을 낼 수 있는지도 궁금했다. 희본씨 입장에서는 시어머니가 다섯명이나 있어서 힘들었을 거다. (웃음) 박희본_매화 다른 감독과 일한다는 컨셉이 독특했다. 일종의 도전처럼 받아들여졌다. 총 6편 중 3편을 이어 찍고, 이틀 동안 드라마 <주군의 태양>을 찍고 왔다. 그러고 나서 나머지 3편을 찍느라 일정 자체가 빠듯했다. 작품당 회차가 모두 1회차였다. 첫날은 그래도 윤성호 감독님과 하니 익숙할 줄 알았는데 의외로 좀 생소했다. 동시기사님도 윤성호 감독이 이렇게 현장에서 말 많이 하는 거 처음 봤다고 하더라.

-그런 현장 분위기가 작품에 반영된 것 같다. 시리즈의 문을 여는 1화(<퇴근의 맛>)와 6화(<결산의 맛>)를 윤성호 감독이 연출했다. 나머지 네편이 각 감독들의 특성을 반영한 작품이라면, 윤성호 감독은 오히려 전작에서부터 이어온 본인의 스타일을 억누른 것 같던데. =윤성호_이병헌 감독(2화 <금기의 맛>)편은 멜로 장르를 많이 써서 멜로적인 색채가 더해졌고, 이랑 감독(3화 <불행의 맛>)은 아트적인 색채를 조금 대중적으로 변형했고, 액션영화를 주로 해온 달재 감독(4화 <의외의 맛>)은 그 특성을 반영해서 요리 장면을 진기명기처럼 연출했다. <6년째 연애>를 연출한 박현진 감독(5화 <우정의 맛>)은 30대 중/후반 여성의 라이프 스타일을 다루었다. 다들 전작의 특성을 고려한 결과물이다. 다섯 감독의 연출이 합쳐져서 일종의 칙릿영화가 만들어진다면, 난 그 발단과 결말을 맡고 있었다. 그런데 따져보니 내가 심심하게 사는 싱글여성을 그려본 적이 없었다. 잘 모르는데 1화를 연출해서 다른 감독들에게 바통터치는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희본씨랑 처음 작업하는 다른 감독들은 색다른 요구를 나보다 더 재밌게 풀어내더라. 희본씨랑 전작부터 같이 포크송 부르다가 이번엔 로큰롤해보자고 했던 나는 정작, 혼자 튜닝하느라 시간을 보낸 것 같았다. 박희본_처음에는 감독님들마다 색깔이 달라서 너무 어려웠는데 하면서 쾌감이 생겼다. 이런 작업 방식이 제갈재영이라는 여성의 다중적인 면모를 드러내준 것 같다. 감독님들 각각의 시나리오에 따라 제갈재영의 말투도 매번 조금씩 달라졌다. 회사에서 동료와 있을 때의 그녀와 집에서 친구와 있을 때의 그녀의 모습이 모두 다르게 표현된다. 촬영을 끝내고 오면 녹초가 되는데도, 뭔가 충만한 느낌, 멘털의 포만감이 있었다.

-30대 여성의 생활에 대한 고민은 마스다 미리의 만화와도 닮아 있다. 전작에서 보여준 ‘여성’이보편성에선 동떨어진 조금 독특한 여성이었다면 직장, 연애, 결혼, 친구 문제로 고민하는 제갈재영은 또래 관객에게 가장 보편적인 공감대를 끌어낸다. =윤성호_이걸 보고 주로 <맛의 달인>이나 <고독한 미식가><하나씨의 간단요리> 같은 작품을떠올리는데 실상 내 안의 레퍼런스는 마스다 미리의 만화책 속 ‘수짱’이었다. 연애, 직장, 미래를 고민하는 30대 여성 수짱의 고민과 거기에 30대 여성인 박현진 감독이 트위터에서 보여주는 라이프 스토리를 더했다. 난 남자이지만 서른여덟이 되고 보니 ‘지금 이대로 괜찮을까’라는 수짱의 질문을 하고 있더라. 자연인인 내가 어느새 수짱이 되어가고 있던 거다. 주성치보다 수짱이 좋아졌다고 해야 할까. 박희본_마스다 미리의 만화를 감독님 추천으로 봤는데, 덕분에 수짱에 심취해서 지금까지 부작용이 크다. (웃음) 소속사가 이틀 전에 생기긴 했지만, 내가 잉여라는 생각도 든다. 대부분 <할 수 있는 자가 구하라>나 <도약선생> 잘 봤어요, 라며 오디션 안 보고 캐스팅하는데 너무 하나의 이미지로만 귀착되는 건 아닐까, 나도 나이가 드는데 윤성호 감독님 작품 속의 어리고 건강한 여자 캐릭터를 언제까지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또 중학생 때 만난 친구가 어느 날 결혼한다고 할 때의 상실감, 월세로 고민하는 주변 친구들 문제 등등 내 연애와 결혼에 대한 고민도 생기더라. 예전엔 하루만 굶어도 살이 빠졌는데, 지금은 3주가 지나도 회복이 안 되는 것들도 달라졌고. 무조건 즐기기엔 질감이 좀 무거운 질문들이 생겼다.

-예능, 드라마, 영화를 통틀어 ‘먹는’ 게 트렌드다. =윤성호_정치적인 문제에 비관적일수록 먹는 데 집중할 수 있다. 당장 비싼 아파트를 살 순 없어도 먹는 데 사치는 어느 정도 가능하다. 먹는 행위가 결국 패배적이고 자조적인 사회 분위기의 반영이 아닐까 싶다. 그래서 일본 만화나 드라마를 보면 자주 느끼는 건데, 전망이 없어 좀 허무해진다. 마스다 미리의 만화가 와닿은 건 그런 와중에, 끊임없이 질문을 던져서였다. 어떤 문제가 해결되고 나서도 수짱은 나는 과연 존엄한 삶을 살 수 있을까, 계속 질문한다. 이번 작품은 살짝 위로하는 수준이지만, 다시 요리 관련한 콘텐츠를 만든다면 ‘힐링용’으로 만들고 싶진 않다. 약간 행복한 기운을 느끼더라도 질문을 계속 던지는 작품을 하고 싶다. 이타미 주조 감독의 <담뽀뽀> 정도의 문제의식을 가지고 싶다.

-‘먹는다’라는 일상적인 행위를 카메라로 담을 때 기술적인 문제들이 고민됐을 텐데. 연출자의 입장에서도 그렇고, 연기를 하는 입장에서도 ‘먹방’ 스타들이 이미 여럿 있으니 부담도 있었을 테고. (웃음) =윤성호_음식 만화를 워낙 좋아해서 <주문배달의 왕자님> <먹기만 할게>는 봤는데, 기획단계에서 <고독한 미식가>나 <하나씨의 간단요리>의 컨셉을 말했지만 정작 나는 그 드라마들을 제대로 본 적이 없다. 그런데 만들면서 다른 감독들의 작품을 보니, 일본 드라마를 좀 봐둘걸 하는 생각이 들더라. 다들 음식 장면을 맛있게 연출했는데 내가 연출한 1화의 굴소스 볶음밥은 그런 질감이 별로 안 산 것 같다. 성능 좋은 카메라를 한대만 쓴 것도 잘못이었다. 먹는 장면을 살리려면 카메라를 여러 개 돌려서 앵글을 많이 가져가야 하는데, 그러지 못해 희본씨가 여러 번 먹어야 하는 고생을 했다. 보이는 것만큼 소리도 중요했다. 개인적으로 튀김요리를 싫어하는데 결국 맨 마지막에 찍은 6화에서는 튀김을 받아들였다. ‘먹는 연출’이 필요하더라. 박희본_맛있게 먹는다는 말을 자주 듣는데, 막상 화면으로 맛있게 먹는 기술은 다른 것 같다. 난 아삭아삭하게 씹어 먹는다고 하는데도 화면에는 생각만큼 그 동작이 안 나오더라. 먹는 장면의 기술은 하정우씨가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황해>에서 핫바를 먹는 장면은 정말 엄청나다. 멜로영화에서 남자 배우의 눈빛연기를 보면서 ‘저 남자 사귀고 싶다’라는 생각을 불러일으키잖나. 그만큼의 강도였다. 촬영 때 맛있게 먹으려고 하루 종일 굶다가 먹고 촬영했는데, 감독님이 계속 바뀌고, 테이크를 가는 방식도 다르니 말처럼 쉽지가 않더라.

-제갈재양이 만드는 요리 선정이 좀 의외다. 일본 드라마 <심야식당>이나 <해피투게더3>의 ‘야간 매점’ 요리처럼 조금 간단한 요리를 생각했는데, 굴소스를 기본으로 한 제대로 된 일품요리가 등장한다. 이번엔 중식, 시즌2에서는 이탈리아 음식. 그렇게 시리즈로 갈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윤성호_오즈 야스지로 영화를 보면 배우들이 참 소담스럽게 음식을 먹는다. 내 생각도 좀 가라앉은 느낌, 적요한 느낌의 먹는 장면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런데 그걸 현실화하는 건 어렵더라. 내러티브에 구애받지 않고 음식에 치중한 일본식 드라마와 달리 한국화해야 한다는 이유도 있었고, 다섯 감독의 색깔에 통일감도 줘야 했고, 또 식품회사 협찬이라는 문제도 걸려 있었다(<출출한 여자>는 이금기 굴소스 협찬을 받은 작품이다). 얼핏 보면 ‘갑’의 요구에 맞추고 타협한 것 같지만, 이런 방식이 적은 자본으로 작품을 만들 수 있는 일종의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본다. 작은 영화 만들기가 힘들어진 상황이다. 어떤 소재는 먹히고, 어떤 배우가 팔리는지 데이터가 확실히 구축되어 있다. 조건이 맞아떨어져야 투자도 받고 편성도 받을 수 있는 환경에서 SNS에서의 상영이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본다. <무한동력> <방과후 복불복> <미생> 같은 온라인 드라마들이 만들어지고 반응도 좋다. <미생>의 경우 조회 수가 20만이었다. 난 한달 안에 1만명만 보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다행히 하루 만에 2만건이 넘었고 리뷰도 후한 편이다. 이 정도 호응이면 다음을 기약할 수 있겠다 싶었다. 그럼 ‘을’로서 존재하지만 우리의 영혼을 배신하지 않는 선에서 배우와 스탭들을 패키징해서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을 것 같더라. 박희본_SNS의 파급력이 큰 것 같다. 우리 엄마도 이번엔 공감하고 재밌어하시고, 엄마 친구분들도 많이 보시더라. 극장에서 상영하는 영화보다 어떤 면에서 관객 수용도가 더 넓다는 생각이 든다. 윤성호_스크린이나 TV 같은 클래식한 매체와 SNS가 단지 화면 사이즈의 차이는 아니다. 소비층이나 콘텐츠를 접한 뒤의 뒷담화도 달라진다. 난 <할 수 있는 자가 구하라> 영화버전의 온라인 상영 경험도 있고, 이 부분에 대한 데이터는 조금 축적된 것 같다. 몇년 전만 해도 자신의 작품을 유튜브에 올리는 것을 모욕적으로 생각하는 분위기였다. 극장을 못 구하면 영화제나 순회상영을 해야지 온라인에 올리는 건 대부분 극구 반대였다. 무료로 작품을 보여주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있었던 거다. 난 비주얼 욕심이 없어서 그런지 다른 생각을 하게 된 것 같다.

-화별로 모아서 극장 개봉도 할 수 있지 않나. =윤성호_편집을 달리해서 서브 인물들의 에피소드를 조금 늘리면 스크린 상영도 가능할 것 같다. 흔히 옴니버스영화가 키워드별로 기획하게 마련이라 각 에피소드가 개별적으로 존재하는 편인데, 이 작품은 7인7색, 10인10색 같은 포맷으로 이야기를 이어나가서 이야기가 연결되는 구조다. 90분 정도로 쭉 이어지는 서사에 대한 관객의 충성도가 더 크지 않을까 싶다.

-다음 계획은 무엇인가. 시즌2에 착수하면 또 같이 할 건가. =박희본_저는 불러주기만 하면. (웃음) 당장은 박정범 감독님 신작 촬영을 앞두고 있다. 끊임없이 작품을 하고 싶은 갈증이 있다. 최근에 독립영화계에도 눈에 띄는 배우들이 많아졌는데, 그 사이에서 난 아직도 아이돌 그룹 밀크 출신으로 설명되고 있다. 또 밝고 엉뚱한 면으로 기억되지만 실제 내 모습과 다른 면도 있는데 그 모습이 연기에 한번 투영됐으면 하는 바람도 있다. <출출한 여자>의 제갈재양과 마스다 미리의 만화 속 수짱이 나 스스로 발전의 시발점이 된 것 같다. 좀더 책임감을 가지고 연기자로 욕심을 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윤성호_난 스토리를 가지고 배우들을 변신시키는 연출자가 아니라 배우들의 평소 말투나 기운을 가져와서 활용하는 스타일이다. 내 작품에서 나온 희본씨의 모습을 더 과장되게 활용하는 것도 재밌지만, 박정범 감독의 작품에서는 지금까지 몰랐던 희본씨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가 있다. 그래서 준비하는 작품이 있는데 당분간은 희본씨를 안 부르려고 한다. (웃음) 내가 가능성을 깎아내리는 것 같아서. 박희본_그건 아닌데. (웃음) 감독님이 나를 편하게 생각하는 만큼 나도 감독님이 바라는 것을 아니까 좀 게을러지는 측면이 있다. 안주하지 않으려면 당분간은 다른 작업들도 해볼 생각이다. 윤성호_그동안 난 다른 투수를 양성하고 있을 테니, 메이저리그 갔다가 돌아오라.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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