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브 매퀸 감독의 <노예 12년>은 남북전쟁 당시 납치당해 12년간 노예로 살았던 흑인 솔로몬 노섭의 실화를 다룬 영화다.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일이 벌어졌다. 할리우드 유명 영화제작자 아논 밀천(68)이 그동안 이스라엘 스파이로 활동하며 이중생활을 해왔다고 고백한 것이다. 밀천은 11월25일(현지시각) 이스라엘 TV 탐사 프로그램인 <우브다>에 출연, 1960년대 말부터 영화계 활동을 하면서 이스라엘을 위한 첩보활동을 병행해왔음을 밝혔다. 이스라엘계 미국인인 밀천은 1978년 영화 <메두사>를 통해 처음 제작자로 데뷔한 이래 <코미디의 왕>(1983), <아마데우스>(1984), <귀여운 여인>(1990), 그리고 최근의 <미스터 & 미세스 스미스>(2005) 등 지금까지 120편이 넘는 영화를 제작하며 할리우드에서 명성을 쌓아온 역량 있는 제작자다. 그런 그가 군사 정보와 무기 거래는 물론 핵 관련 첩보활동까지 벌여왔다는 사실은 소문만 무성하던 할리우드와 이스라엘의 정치적 유착 관계에 힘을 싣는 증거가 되면서 단순한 가십을 넘어 파장이 확산되고 있다.
영국 <BBC>의 보도로 처음 알려진 이 소식에 대해 밀천은 “난 조국을 위해 일했고 그 사실이 자랑스럽다”며 긍정을 표했다. 특히 주목해야 할 점은 1960년대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백인정권 설립을 위해 벌인 이미지 공작에 대한 고백이다. 당시 이스라엘과 미국이 우라늄을 입수하기 위해 남아프리카에 친미정권을 설립하는 데 밀천이 일조했다는 것이다. 그는 이후 공작에 대한 사죄의 의미로 <아웃 오브 아프리카>에 간접적으로 지원했다고도 밝혔다. 또한 최근 <노예 12년>의 공동제작에 참여한 것도 이러한 사죄의 일환이라고 고백했다. 일각에서는 이미 개봉한 <노예 12년>의 홍보를 위한 발언이 아닌가 하는 의심의 눈초리도 있지만, 그럼에도 이번 고백으로 할리우드영화가 친이스라엘 이미지를 위해 활용되고 있다는 그간의 의혹에 결정적인 증거가 나온 셈이다. 로버트 드 니로와 함께 출연한 이 방송에서 밀천은 “내 개인적 활동과 영화 제작을 철저히 분리하려 했지만 때때로 뒤섞였다”고 회고하며 자신 이외에도 이스라엘의 비밀 첩보활동과 연계된 거물급 인사가 더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