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남자를 곧이곧대로 믿어선 안된다. 말과 행동이 따로 놀고, 겉과 속이 생판 다르다. 스코틀랜드 에든버러 거리를 활보하는 경찰 브루스 로버트슨(제임스 맥어보이). 살인 사건을 해결해 승진하겠다는 야심을 내보일 때만 해도 누구나 그를 평범한 경찰관으로 오해할 것이다. 하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다. 그는 이간질과 능청으로 제 잘못을 덮어버리기 일쑤고, 단 하루도 술과 마약 없이는 살 수 없으며, 그것도 모자라 동료 부인들과의 은밀한 관계를 거리낌없이 즐긴다. 브루스는 어쩌다 속수무책의 삶에 빠져든 것일까.
‘필스’는 역겨울 정도로 더러운 오물이라는 뜻으로 경찰을 속되게 부르는 말이다. 거칠 것 없이 행동하는 브루스는 실상 자신의 질투로 동생이, 뒤이어 아버지가 죽었다는 환청과 환영에 시달리며 괴로워하고 있다. 극도의 불안에 시달리는 브루스를 맨 눈으로 지켜보기란 쉽지 않다. 제임스 맥어보이는 자신을 방기하다시피 하는 인물의 비열하면서도 불안한 내면을 드러내 보이는 데 성공한 것 같다. 스스로를 통제하지 못한 채 극도의 불안에 사로잡혀 최후의 결단을 내리는 브루스야말로 <필스>의 힘이다.
단, 도드라진 캐릭터가 만병통치약은 아니다. 브루스의 현 상태를 이해하고 수긍할 만한 근거들, 그러니까 그의 과거를 또렷하게 그려내지 못한 탓에 인물을 설득력 있게 제시하진 못한다. 자학의 덩어리가 된 브루스의 퍼포먼스가 다소 공허하게 느껴지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일 것이다. <트레인스포팅>의 얼빈 웰시가 원작과 각본을, 클린트 멘셀(<레퀴엠> <블랙스완>)의 음악만으로 브루스라는 인물의 전모를 알아차리기엔 역부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