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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커스] 작다고 무시하기 없기
윤혜지 2013-11-04

제3회 단막극페스티벌, 드라마 시장의 활로가 될 수 있을까

<서서 자는 나무>

이 작은 축제가 사라지는 TV 단막극을 되살릴 수 있을까. 더 나아가 단막극의 부활이 한국 드라마 시장을 더욱 확대할 수 있을까. 11월7일부터 열리는 제3회 단막극페스티벌은 TV 단막극 애청자들을 위한 소박한 축제처럼 보이지만, 실은 보다 큰 목적을 지니고 있다. 미래창조과학부가 주최하고, 한국방송통신전파진흥원이 주관하는 제3회 단막극페스티벌은 “TV단막극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환기하고, 단막극 콘텐츠의 제작과 활용을 다양화하고자 시청자와 창작자, 방송사 관계자가 함께 만들어가는” 행사다. 11월7일부터 9일까지 사흘간, 7일엔 여의도CGV 4관에서 8, 9일엔 9관에서 진행된다.

페스티벌 개최 아이디어는 미래창조과학부에서 처음 구상했다. 단막극 장르의 부활을 위해 시청자의 흥미를 끌 이벤트가 필요했고, 2011년부터 축제를 꾸려왔다고 한다. “제작지원만 하다보니 단기 방영에만 그치는 경우가 많아 시간을 들여 다양한 방식으로 이슈화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는 것이 미래창조과학부 관계자의 전언이다. 투입한 제작비에 비해 광고수익이 턱없이 낮은 단막극의 경우, 수익을 창출해야 하는 다수의 방송국에서 편성을 꺼리는 것이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MBC <베스트극장>과 SBS <오픈드라마 남과 여> 등 다른 지상파 방송사의 단막극 전용 채널은 이미 폐지됐고, 현재 남아 있는 단막극 채널은 KBS의 <드라마 스페셜>이 유일하다.

수익 창출이 어려운 단막극을 그렇다면 굳이 유지해야 할 까닭은 무엇일까. “신인 작가와 PD는 꾸준히 배출되어야 하지만, 검증되지 않은 이들에게 덥석 미니시리즈나 연속극을 맡기는 모험을 할 수는 없다”고 한국방송통신전파진흥원 콘텐츠진흥팀의 현우진 팀장은 말한다. 신인 작가와 PD에게 단막극은 등용문이자 수련과정이다. 방송사 입장에선 새로운 형식과 내용의 드라마에 도전해볼 수 있는 의미있는 포맷이다. 젊은 신인 배우에게도 이러한 이점은 마찬가지로 주어진다. 단막극을 챙겨 보는 시청자 층도 분명 있다. 올해 페스티벌 상영작 관람 신청은 어느 때보다 빠른 속도로 마감되고 있다. 화제작이었던 <위대한 계춘빈>과 <연우의 여름> 등은 이미 사전 관람 신청이 조기 마감된 상황이다. 현우진 팀장은 “페스티벌을 통해 단막극 장르에도 굳건한 마니아층이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면서 “적어도 매해 진행한 페스티벌의 규모가 점점 커지고 있고, 객석 점유율이 85%를 넘겼을 만큼 관객의 호응도 꾸준히 높아지고 있어 페스티벌의 영향을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우리가 어쩌자고 사랑했을까?>

스크린에서 단막극의 재발견

매년 규모를 조금씩 늘려가고 있는 단막극페스티벌은 “신선한 아이디어와 판단력을 갖춘 예비 작가를 찾아내기 위해” 올해 처음으로 단막극 스토리 공모전을 시도했다. 현직 PD와 작가진, 방송사 관계자로 구성된 심사위원단은 공모된 132편 중 10편의 스토리를 선정했고, 상패와 상금 수여식은 개막식날 이뤄질 예정이다. 심사 기준에 대해 “남녀노소가 함께 보는 드라마로 제작하기에 무리가 없으면서도 독창성과 완결성이 있는 작품을 선택했다”고 현우진 팀장은 밝혔다. 수상작에는 차후 제작 가능성을 검토해 2014년 단막극제작지원사업을 통해 연출 기회가 주어진다.

총 14편의 페스티벌 상영작은 “포맷과 장르의 다양성을 가장 우선적으로 고려해” 선정됐다. 지상파 방송사의 단막극만 상영했던 지난해와 달리 올해는 케이블 채널과 해외 방송국의 단막극도 적극적으로 포함했다. 상영작은 프라임타임 스페셜, 파노라마, 명작회고전, 페스티벌 프리미어, 특별교류전, 뉴 커런츠까지 여섯개 섹션으로 고루 나누어졌다. 개막작인 <마귀: 파발, 지옥을 달리다>(KBS, 2013)는 군더더기 없는 대본과 뚝심 있는 연출이 적절하게 만난 작품. 14년 전, 마귀(馬鬼)라고 불릴 정도로 뛰어난 실력의 파발꾼이었던 문복(유오성)은 임금의 중요한 심부름에 실패한 뒤 절름발이 폐인으로 전락했다. 딸 하나를 둔 채로 노름이나 소일을 하며 살던 문복은 딸을 잃을 위기에 처하자 절치부심하고 다시 말 위에 오른다. 극적인 캐릭터 설정이 인상적이며 문복이 말을 달리는 부분은 웨스턴 무비의 한 장면을 보는 듯 힘있고 시원하다. 특히 유오성의 거친 인상이 캐릭터에 드라마적인 진중함을 단단히 싣는다. “대본의 완결성과 작품의 무게감을 고려해 제작하기도 전에 페스티벌 개막작으로 미리 선정된 작품”이다.

국내 지상파 방송사 드라마국 담당 프로듀서들의 추천으로 구성된 프라임타임 스페셜 섹션은 최근 크게 인기를 끈 작품들로 구성됐다. 노인 소외 문제를 밝고 경쾌한 블랙코미디로 풀어낸 <햇빛노인정의 기막힌 장례식>(MBC, 2013), 엉뚱하지만 매력적인 캐릭터와 귀여운 코미디 요소가 조화를 이룬 <위대한 계춘빈>(KBS, 2010)에 이어 최근 가장 떠오르고 있는 유보라 작가와 한주완, 한예리가 만난 <연우의 여름>(KBS, 2013)이 그들이다. 각종 웹사이트와 방송사 시청자 게시판을 통해 방영 당시 시청자들로부터 뜨거운 호응을 얻은 단막극을 엄선한 파노라마 섹션엔 네편의 화제작이 포함됐다. 죽음이라는 주제를 만화적 감수성으로 그려낸 <라이카의 여름>(MBC, 2006), ‘창의적인 복수’를 소재로 한 고전적인 방식의 추리극 <친구 중에 범인이 있다>(KBS, 2012), 네 남녀의 얽히고설킨 감정을 능숙한 솜씨로 직조해낸 <해피! 로즈데이>(KBS, 2013)에 이어 조선판 블록버스터라 해도 과언이 아닌 정치수사극 <불온>(MBC, 2013)이 그 주인공들이다.

새로운 형식을 과감하게 모색할 때

손현주, 송채환 두 배우가 이상한 계기로 만나 사랑에 빠지는 남녀를 연기한 <우리가 어쩌자고 사랑했을까?>(SBS, 2001)는 단막극으로선 이례적으로 동시간대 방영된 타 방송사의 시트콤과 예능 프로그램의 시청률을 앞질러 화제가 된 작품이다. 흔한 통속드라마로 치부하기 쉬우나 고전적인 멜로드라마적 감수성을 순수하고 정직하게 담아낸 <내 약혼녀 이야기> 역시 드라마의 정석으로 회자됐다. 두 작품은 오랜 시간 시청자들의 입에 오르내리며 명품 단막극으로 인정받아 명작회고전 섹션에 배치됐다.

다양성을 키워드로 한 이번 페스티벌의 취지에 걸맞게, 한/중 수교 20주년을 맞이해 옌볜 TV방송국에서 공수해온 특별교류전 섹션의 낯선 드라마도 있다. 한국 방송통신전파진흥원에서 제작을 지원한 <서서 자는 나무>(YBTV, 2013)는 베이징영화학교에서 촬영을 전공한 김광호 감독의 작품이다. 쉽게 접해보기 어려운 작품인 만큼 단막극 애청자들에겐 이색적이고 좋은 선물이 될 것이다. 참신한 매력과 높은 완성도로 주목할 만한 케이블TV 드라마를 모은 뉴 커런츠 섹션엔 88만원 세대의 고충을 발랄하게 표현한 <실업급여로맨스>(E-channel, 2013)가 있다. 폐막작은 <특수사건전담반 TEN: 테이프 살인사건>(OCN, 2012)이다. 얼굴에 테이프가 감긴 채로 살해된 여자의 시신이 발견된다. 경찰교육원 교수 여지훈(주상욱)은 7년 전 벌어진 미제사건과 유사점을 발견하고 수사에 박차를 가한다. 실험적이고 개성 있는 각본, 과감하고 감각적인 연출 등 최근 눈에 띄게 성장한 케이블 드라마의 완성도를 스크린으로 확인할 수 있다.

단막극 상영이 끝나고선 감독과 작가, 배우가 참여하는 관객과의 대화도 마련된다. 영화와 달리 감독과 작가를 만날 길이 거의 없는 드라마의 상황을 고려하면 반가운 자리다. 방송사 관계자를 위한 세미나도 있다. 미래창조과학부 관계자는 “단순히 수익모델로만 판단해 한두해에 그치고 말 콘텐츠를 양산하는 것은 미래의 드라마 시장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드라마 시장이 선택해야 할 길을 장기적인 안목으로 판단하려 한다”며 단막극 세미나에선 “드라마 콘텐츠의 자생적 성장을 위한 다양한 비즈니스 모델의 개발에 관해 발제하고 토론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2011년엔 TV영화라는 장르의 도입에 대해 고민했고, 2012년엔 해외 사례를 통한 다큐멘터리 드라마 시장에 관해 논의한 바 있다. 올해는 단막극이라는 형식적 틀에 갇히지 말고, 드라마의 새로운 포맷을 과감하게 모색해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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