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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온, 미스터 쇼맨십

<쇼를 사랑한 남자>와 감독 스티븐 소더버그를 읽는 몇 가지 코드

<쇼를 사랑한 남자>는 스티븐 소더버그의 개인적인 취향과 인간에 대한 관심, 고전에 대한 향수를 반영한 영화이다. 소더버그는 <쇼를 사랑한 남자>에서 자신이 몰두했던 하나의 세계를 창조하고 싶어 한다. 미국 엔터테인먼트계의 스타였던 리버라치(마이클 더글러스)와 그의 동성 파트너 스콧 토슨(맷 데이먼)의 관계를 다룬 이 영화는 ‘스타의 이면과 사생활’이라는 소재를 다루고 있다. 전통적인 전기영화를 만들고 싶지 않았던 소더버그는 인물의 일대기를 다루기보다 좁고 깊게 들어간다. 리와 스콧이 만난 뒤 약 10년에 집중하면서 이 기간 동안 변화하는 두 사람의 관계를 4가지 국면을 통해 기술하고 있다. 영화의 기원은 마이클 더글러스와 소더버그가 미국과 멕시코 접경지대의 마약 커넥션을 소재로 한 멀티 플롯 드라마 <트래픽>(2000)을 촬영하던 13년 전으로 거슬러간다. 1970년대를 풍미한 게이 피아니스트 리버라치의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고 싶었던 소더버그는 특정 앵글로 잡은 더글러스의 얼굴에서 리(리버라치의 애칭)의 모습을 보았다. 소더버그의 제안을 받고 처음엔 당혹스러워했다는 더글러스는 암수술과 투병, 회복의 과정 등 다난한 삶의 굴곡을 통과하면서, 심경의 변화를 겪은 뒤 리 역을 수락했다. 영화에서 더글러스는 신들린 것 같은 역대급 연기를 보여준다.

스티븐 소더버그 감독.

칸영화제

1989년 스물여섯살의 젊은 독립영화감독이었던 스티븐 소더버그는 데뷔작 <섹스, 거짓말, 그리고 비디오테이프>(1989)로 칸영화제를 처음 방문했다. 주연배우 제임스 스페이더를 대동하고 KLM 항공 이코노미클래스를 탄 소더버그는 개막식 직후 영화 상영이 끝나자 곧바로 미국으로 돌아갔다. 수상 가능성이 ‘제로’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섹스, 거짓말 그리고 비디오테이프>의 최종 편집에 몰두하던 그는 칸으로부터 즉시 돌아오라는 전화를 받았다. 이 영화는 신인감독의 작품으로는 이례적으로 황금종려상과 남우주연상을 석권하며 천재의 탄생을 알렸다. 당시 심사위원장이었던 빔 벤더스는 “커다란 즐거움과 함께 영화 산업의 미래에 희망을 주는 작품”이라고 이 영화를 절찬했다. <시민 케인> 이후 최고의 데뷔라는 찬사까지 들었던 소더버그는 연출뿐 아니라 촬영, 편집까지 도맡은 <쇼를 사랑한 남자>로 2013년 다시 칸영화제 경쟁부문 초청장을 받았다. 영화감독으로서 그의 경력이 종착역(이 영화를 끝으로 은퇴하겠다고 선언했다)에 이르렀을지도 모르는 기묘한 상황이었다. <섹스, 거짓말 그리고 비디오테이프>와 <쇼를 사랑한 남자>가 수미쌍관을 이루는 칸과의 인연이 영화감독으로서 소더버그의 이력에 종지부를 찍을 것인가는 이 영화를 둘러싼 또 하나의 화제이다.

쇼맨의 일생

<쇼를 사랑한 남자>는 외양은 화려했으나 내면은 불행했던 엔터테이너의 이야기이다. 1986년 에이즈로 사선을 걷고 있을 때 리는 스콧을 부른다. 늙고 병들어 흉한 몰골로 여전히 열심히 일한다는 그는 “에이즈에 걸린 게이 할망구”라고 자신의 처지를 비관한다. 이 장면의 연출은 한물간 여배우의 과대망상적인 초상을 비극적으로 묘사한 빌리 와일더의 <선셋 대로>(1950)와 통하는 점이 있다. <선셋 대로>의 노마 데스먼드(글로리아 스완슨)처럼 리는 기괴한 대저택에 은둔하면서, 위대한 삶의 순간으로부터 멀어지지 않기 위해 미용과 성형 시술에 몰두한다. 소더버그가 리를 처음 접한 것은 TV를 통해서였다. 소더버그의 생각에 리는 “재미있지만 당시로서는 비전형적인 엔터테이너”였다. 쇼 비즈니스 세계에서 그는 엘튼 존이나 셰어, 마돈나, 레이디가가 이전에 자신의 이름을 걸고, 대담하고 이색적인 쇼를 만들어 고유한 페르소나를 창조한 개척자였다. 누구도 이전에 그런 식의 공연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미국의 작곡가이자 지휘자인 마빈 햄리시는 리버라치를 자신이 보았던 키보드연주자 중 기술적으로 가장 뛰어났던 아티스트로 평가했다. <쇼를 사랑한 남자>는 리의 일생 중 타인과 결코 공유하지 않았던 한 시기에만 초점을 맞춘다.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영화의 톤은 조금씩 변하는데, 피골이 상접한 채 에이즈로 죽어가는 리와 스콧의 마지막 만남은 인생의 화려함 뒤에 놓인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분명한 깨달음을 준다. ‘미스터 쇼맨십’이라 불리며 한 시대를 풍미했던 리의 삶은 이율배반적이다. ‘리버티’라는 단어와 유사하게 발음이 되는 ‘리버라치’라는 이름의 이 남자는 비서이자 연인, 아들인 양성애자 스콧에게 남자든 여자든 진정한 자아를 찾는 것이 중요하다고 충고한다. 리의 라이프스타일에 담긴 철학은 그가 사망한 뒤 등장하는 판타지 신에 잘 요약되어 있다. 화려했던 생전 모습 그대로 하늘로 비상하면서 그는 “좋은 건 많으면 많을수록 더 좋은 것”이라고 말한다.

섹슈얼리티

<쇼를 사랑한 남자>는 종래 볼 수 없었던 새로운 형태의 전기영화이다. 동시에 서로에게 깊이 의존했던 외로운 두 인간의 초상이며, 감정을 조작하는 능란한 기교로 도달할 수 있는 최고의 경지를 보여주는 멜로드라마이다. 그런 의미에서 ‘섹스’는 영화의 중요한 제재이다. 칸영화제 기자회견에서 스티븐 소더버그는 “<쇼를 사랑한 남자>는 내 첫 영화인 <섹스, 거짓말, 그리고 비디오테이프>와 직접적인 연결 고리가 있다. 두 영화 모두 자신의 세계 안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다”라고 말했다. 리와 스콧은 첫 만남에서 서로에게 끌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침실에서 뒹군다. 이 만남이 그들의 인생에 축복이 될 것인지 장담할 수 없지만, 동성 연인으로 저들의 사생활은 그리 우아한 편이 못된다. 리의 섹스에의 갈망과 집착은 외로움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외롭기로 치자면 위탁가정을 전전하면서 자란 스콧도 사무칠 정도이다. “섹슈얼리티는 아름답다”는 노골적인 대사가 있지만, 소더버그와 작가 리처드 라그라베네스의 주안점은 관객이 정치적인 시각으로 이 영화를 보지 않도록 하는 것이었다. 리는 세상에서 가장 비밀스러운 사람 중의 하나였다. 반짝이 털망토와 보석이 박힌 그랜드피아노에 앉아 청중들을 홀리는 그는 대중의 이상에 가깝다. 당대 미국 사회에서 가장 유명한 엔터테이너였지만, 사망에 이르기 전까지 누구도 그의 섹슈얼리티의 비밀을 알 수 없었다. 리와 스콧의 섹스 신은 할리우드의 메이저 스튜디오들이 이 영화를 거절한 결정적인 이유였다. 리를 연기한 마이클 더글러스가 유일하게 거절한 장면은 14인치의 페니스를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자유 그리고 죄의식

전기적 자료에 기초한 여느 영화들처럼 무언가 새로운 사실을 말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아니지만, <쇼를 사랑한 남자>는 ‘자유’를 추구한 리의 삶이 남긴 것들을 되새기게 하는 데는 성공했다.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어머니의 장례식이 끝난 뒤 리가 실의에 빠진 자신을 위로하는 스콧에게 “난 이제 자유야”라고 선언하는 신이다. 이 장면은 궁전과 같은 저택에서 부족함 없이 모든 걸 즐기는 것처럼 보이는 리의 마음 한구석에 어머니가 자유를 속박하는 하나의 ‘검열 기제’였음을 암시한다. 소더버그가 표현하려는 것은 쇼 비즈니스의 속성이나 위대한 쇼맨의 일대기가 아니라 연기(演技)하는 삶의 비애이다. 리는 자유를 갈망했으나 본성을 숨기고 일생을 갇혀 지냈던 사람이다. 리가 얻으려고 했던 자유란 삶의 모든 국면에 걸쳐 있다. 섹스의 자유, 금기로부터의 자유, 자본으로부터의 자유, 도덕률로부터의 자유. 독실한 천주교도이면서 동성애자였던 리는 자신을 죄의식에 시달리게 하는 모든 것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했다. 번쩍번쩍 빛나는 반짝이 의상과 모피, 보석이 박힌 피아노가 한몸이 된 리의 쇼는 비현실적인 톤으로 묘사된다. ‘글리터 맨’으로 불린 그의 쇼는 대중으로부터의 환대를 과장하는 동시에 고독한 리의 사생활과 극단적으로 대조된다. 처음에는 궁전 같았던 리의 집이 시간이 지날수록 감옥처럼 보이기 시작하면서 자유의 의미는 역설적으로 바뀐다.

가면

1979년 리는 TV에서 늙어가는 자신의 모습을 보고 성형수술을 한다. 피부를 도려내 실리콘을 주입하고, 주름을 펴 젊음을 되찾으려는 리의 강박은 스콧을 성형수술하도록 해 자신의 얼굴과 비슷하게 만드는 기행으로 이어진다. 성형수술 이후 늘어난 피부 때문에 눈을 감을 수조차 없게 된 리의 모습은 가면을 쓴 존재의 삶을 연상시킨다. 성형을 빙자한 마스크의 비유는 액면과 이면이 완전히 다른 한 인간의 실존을 형상화하고 있다. 1984년 스콧과의 관계가 파탄난 뒤 리는 <리버라치의 화려한 사생활>이라는, 거짓으로 점철된 자서전을 출간한다. 그 옆에는 ‘록 허드슨, 59살로 사망. 에이즈의 경각심을 깨우다’라는 헤드라인의 신문이 놓여 있다. 성 정체성을 속이고 살았던 배우 록 허드슨처럼 리도 에이즈로 죽음을 맞는다. <쇼를 사랑한 남자>는 자신의 본래 얼굴을 드러내지 못하고 살아가는 자의 슬픔을 이야기한다. 대중 앞에서는 쇼맨십의 제왕으로, 사적으로는 외로운 단독자로 살았던 리버라치, 그를 보스이자 애인, 아버지로 대했던 스콧의 불안정한 정체성이 이것을 말해준다.

마지막

스티븐 소더버그와 리버라치의 인생에는 유사성이 있다. 성공적이었던 과거와 결별을 앞둔 리처럼 소더버그는 여러 경로를 통해 <쇼를 사랑한 남자>가 자신의 마지막 영화가 될 수 있다고 공언해왔다. 수년 전부터 그는 ‘은퇴’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는데, 은퇴선언과 번복을 거듭한 이유는 할리우드에서 더이상 생존할 수 없다는 압박감 때문이었다. 지난 20여년간 소더버그는 비즈니스맨으로서, 창조적 작가로서 흥망의 세월을 보냈다. <트래픽>과 <에린 브로코비치>(2000)로 아카데미상을 수상하면서 승승장구했지만 최근 급변한 할리우드 산업 지형에서 입지가 좁아졌다. 지난 몇년간 썼던 각본은 번번이 퇴짜를 맞았고, 예산상의 이유로 <나폴레옹 솔로>(2012)의 연출도 포기해야 했다. <매직 마이크>(2012)는 성공적이었지만, 스타들을 대거 기용한 스릴러영화 <사이드 이펙트>(2013)는 신통치 않았다. <쇼를 사랑한 남자>는 할리우드 메이저 스튜디오들로부터 “너무 게이스럽다”는 이유로 외면을 당했다. 결국 케이블 채널 <HBO>에서 제작된 이 영화는 영국과 유럽의 극장에서는 개봉했지만 미국에서는 케이블TV로만 방영되었다. 소더버그는 미국 영화산업의 지나친 상업주의 경향과 매체 환경의 변화에 피로감을 느끼고 있다. 그러나 쉰살이 된 소더버그가 진짜 영화감독으로 은퇴할지는 속단할 수 없다. 이미 그는 TV시리즈의 촬영을 진행 중이다. <>이라는 이 프로젝트는 1900년 뉴욕 병원을 무대로 한 시리즈물로 소더버그는 대략 10개의 에피소드를 연출하기로 되어 있다. 스콧 번즈가 쓴 연극을 뉴욕의 작은 극장에서 연출할 계획도 있고, 채닝 테이텀의 감독 데뷔작 <매직 마이크2>에는 촬영감독으로 참여할 예정이다. 새로운 방식의 영화 제작 시스템을 고민하고 있으니, 머지않아 복귀할 가능성은 다분하다. 은퇴를 언급했을 때마다 소더버그의 마지막 말은 “지금은 쉬어야 할 때”라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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