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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크 질렌홀] 감추어야 드러나는 진심
김보연 2013-10-10

제이크 질렌홀

제이크 질렌홀이 연기한 <프리즈너스>의 로키 형사는 화를 참는 인물이다. 영화는 로키의 캐릭터에 대해 많은 설명을 하지 않는다. 우리는 그가 소년원 출신이라는 것과 목까지 올라온 커다란 문신을 통해 그리 평탄하지 않은 인생을 살았다는 것을 알 수 있을 뿐이다. 그 나머지를 채우는 것은 오로지 제이크 질렌홀의 몫. 그는 그 여백을 끓어오르는 분노를 억누르는 눈빛으로 채운다. 상대역인 휴 잭맨이 딸을 잃은 아버지 역을 맡아 시종일관 강렬한 분노를 발산하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두 배우가 좁은 차 안에 앉아 거칠게 서로의 책임을 따져 묻는 장면을 생각해보자. 술에 취한 채 욕을 섞어가며 무섭게 소리를 지르는 휴 잭맨과 달리 제이크 질렌홀은 계속해서 화를 삼킨다. 사건의 피해자가 분노할 때 아직 범인을 잡지 못한 형사가 할 수 있는 일은 기껏해야 음주운전을 하지 말라고 말하는 것뿐이다. 마음에 들지 않던 상대와 마침내 한 공간에서 마주한 상황이니 강한 적대감을 드러내는 연기를 욕심낼 법도 하지만 제이크 질렌홀은 그저 눈을 내리깐다.

제이크 질렌홀과의 연기에 대해 휴 잭맨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 영화를 통틀어 나와 제이크가 함께 나오는 신은 딱 네개밖에 없지만 나는 그 장면들을 아마 평생 못 잊을 겁니다. 그건 엄청난 테니스 경기 같았어요.” 자신의 연기를 상대에게 스매시를 날리는 스포츠 게임에 비유한 것이 매우 인상적인데, 그는 영화 내내 아쉬울 것 없이 감정을 폭발시켜 결과적으로 제이크 질렌홀과 연기한 네개의 신에서 관객의 모든 시선을 자기에게로 끌어들인다. 하지만 제이크 질렌홀은 애써 태연한 척 감정을 억제하는 연기를 선보인다. 영화 내내 모든 감정과 억눌린 에너지를 속으로 삭이는 것이다. 제이크 질렌홀은 자신의 이런 연기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그는 흥미롭게도 휴 잭맨과는 다른 비유를 사용한다. 동전을 예로 드는 것이다. “제가 맡은 캐릭터는 영화의 지적인 면을 담당하는 인물이라 할 수 있어요. 휴 잭맨은 좀더 감정적인 면을 담당하죠. 그래서 나는 우리가 외적으로는 영화를 완성시킨다는, 그리고 내적으로는 범인을 잡아야 한다는 같은 목표를 향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상이한 스타일의 연기를 펼쳤지만 사실은 같은 목표를 좇고 있다는 언론 인터뷰용 모범 대답. 하지만 본인이 덜 돋보일 수밖에 없는 동전의 한면을 기꺼이 자처했다는 점에서 소극적으로 보이기까지 하는 그의 연기는 다시 생각해볼 만하다.

숨은 내면을 찾아가는 연기

제이크 질렌홀은 많은 영화들에서 테니스 선수처럼 공격적인 연기를 펼치는 상대와 맞서 같이 싸우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감정을 속으로 갈무리하는 연기를 보여왔다. 12년이 지난 지금까지 그의 필모그래피를 이야기할 때 첫 번째로 꼽히는 <도니 다코>(감독 리처드 켈리)도 마찬가지. 정신분열증에 걸려 환상을 목격하고 시간여행을 하(고 있다고 착각하)는 문제적 십대로 출연한 그는 원인을 알 수 없는 분노에 어쩔 줄 몰라 하는 인물을 연기한다. 지루한 설교를 늘어놓는 어른들을 비롯해 모든 것이 마음에 들지 않지만 학교를 비롯한 사회제도는 그대로이니 신경질적이고 깊은 우울에 빠진 인물이 될 수밖에. 그런데 이 영화에서 제이크 질렌홀은 사회 질서와 정면으로 맞서기보다는 시니컬하게 비아냥대는 쪽을 선택하고 분노의 감정은 억지로 삼킨다. 그는 훗날 <도니 다코>와 관련된 인터뷰에서 “사람들은 우리의 내면이나 무의식에서 별로 발견할 만한 것이 없다고 하지만 사실은 전혀 그렇지 않아요. 거기엔 새로운 차원에 가까운 것이 숨어 있어요”라고 평소 자신이 품고 있던 생각을 밝혔는데, 이 또한 그가 캐릭터를 해석하는 방식에 대해 힌트를 준다. 어떤 인물을 연기할 때, 드러난 겉모습 뒤에 발견되기를 기다리는 무언가가 숨어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프리즈너스> 개봉 당시 영화에 등장하지 않는 로키 형사의 전사(前史)를 감독과 상상하며 “저는 점점 영화를 찍는 것보다 캐릭터의 실제 삶에 더 많은 흥미를 느끼고 있어요. 결국 이번에는 영화 촬영에 걸리는 시간의 두배를 영화 준비에 썼어요. 그게 더 큰 성취감을 줍니다”라고 말한 것도 같은 맥락일 것이다.

<도니 다코> 이후로도 그는 진심을 애써 드러내지 않는 조심스러운 연기로 자신이 연기한 인물들을 빛냈다. 전쟁은 벌어졌는데 전투에 참여하지 못해 속을 태우는 해병대로 출연한 <자 헤드: 그들만의 전쟁>(감독 샘 멘데스, 2005)나, 잡을 수 있을 것 같은 범인을 계속 놓치며 조금씩 지쳐가는 삽화가를 연기한 <조디악>(감독 데이비드 핀처, 2007), 형 때문에 사랑하는 여인을 포기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던 <브라더스>(감독 짐 셰리던, 2009) 등이 그렇다. 극단적인 상황에서도 웬만해서는 과잉의 연기를 펼치지 않고 차분한 표정으로 더 많은 걸 설명했던 그는 그렇게 자신만의 연기 스타일을 만들어갔다. 리안의 <브로크백 마운틴>은 그의 연기가 가장 빛난 작품이다. 시대가 금지한 사랑 앞에 자신의 마음을 제대로 드러내지 못하는 한편 그 마음을 완전히 숨기지도 못하는 잭의 미묘한 내면을 절묘하게 포착하며 긴 여운을 남긴 것이다. 이 영화 속의 그는 쓸쓸히 돌아서는 뒷모습만으로도 충분히 감정을 살려냈다. 제이크 질렌홀은 연기를 통해 인물의 감정을 숨길 줄 아는 많지 않은 배우 중 한명이다.

과거를 효과적으로 상징하는 디테일

다시 <프리즈너스>로 돌아가보자. 앞서 얘기한 것처럼 로키 형사는 목까지 올라오는 커다란 문신을 하고 있지만 답답할 정도로 셔츠 단추를 꼭꼭 채워 문신을 다 드러내지 않는다. 단지 옷깃 위로 올라온 일부분을 통해 로키 형사의 과거와 캐릭터를 짐작할 수 있을 뿐. 제이크 질렌홀이 감독에게 직접 제안한 디테일이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영화에서 내 몸 여기저기에 문신을 새길 때 그것들이 완전히 드러나지 않고 조금씩 숨겨지길 원했어요. 내가 연기한 로키 형사도 그렇고, 우리는 과거를 숨길 수가 없어요. 그 문신은 로키가 부끄러워하는 과거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수십 마디 말보다 더 효과적으로 로키 형사의 캐릭터를 설명하는 문신. 제이크 질렌홀의 연기 스타일을 나타내는 명징한 상징이기도 하다. 감정을 다 드러내지 않지만 일부만으로 더 많은 것을 상상하게 하는 연기 말이다.

<조디악>

magic hour

제이크 질렌홀의 막판 뒤집기

제이크 질렌홀의 필모그래피를 이야기할 때 비교적 적게 언급되는 영화가 데이비드 핀처의 <조디악>이다. 2시간40분 동안 한명의 범인을 쫓는 이 영화에서 제이크 질렌홀은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의 괴짜 연기에 밀린다. 심지어 주요 용의자로 잠깐 출연해 기묘한 기운을 불어넣는 조 캐롤 린치만큼의 인상도 남기지 못한 채 그저 일상을 연기하며 답답함을 쌓아간다.

하지만 두 시간 넘게 답답함을 묵묵히 쌓아올린 뒤 나머지 20분 동안 제이크 질렌홀은 이를 살짝 드러내며 영화의 분위기를 주도한다. 잘못 걸려온 전화 한통에 신경질적으로 전화를 끊는 행동이 단적인 예. 끊어질 것 같은 팽팽한 긴장이 일상의 평범한 풍경과 절묘하게 겹치는 이 장면의 중심에는 제이크 질렌홀 특유의 감정을 속으로 삼키는 연기가 있다. 그는 습관적으로 화를 내는 캐릭터들과는 달리 더이상 참을 수 없을 만큼 화가 날 때만 잠깐 화를 내는 연기를 펼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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