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라서 ‘지금, 현재’에 대해 깊게 고민하지 않으면 올바른 프레임을 만들 수 없습니다.” <내부자들> 18회에서 사진작가 이상업이 강의 도중 뱉은 한마디로 <내부자들>의 기획의도를 간단히 함축할 수 있을 것 같다. 윤태호 작가가 온라인 <한겨레> ‘훅’에 연재 중인 <내부자들>은 정/재계, 언론계, 검경에 몸담은 ‘내부자들’을 통해 사회 깊숙한 곳까지 뿌리박고 있는 부패와 비리를 세밀하게 포착해낸다. 정/재계를 쥐고 흔드는 언론인 이강희와 그가 짜놓은 판에서 움직이는 정치인들, 권력을 가진 자들의 사냥개로 이용당하다 비참하게 버려지는 조직폭력배 안상구, 나름의 정의에 따라 움직이는 프리랜서 사진작가 이상업이 <내부자들>의 세계를 지탱하는 구성원들이다.
<내부자들>은 일찍부터 데이지 엔터테인먼트에서 판권을 사들여 2014년 크랭크인을 목표로 영화화를 진행 중이다. <파괴된 사나이>의 투자자이기도 했던 데이지 엔터테인먼트 김원국 대표와의 인연으로 우민호 감독이 연출과 각본을 맡아 최종고를 다듬고 있다. “딱 10화까지 읽고 알았다. 이거 ‘훅’이 있구나. 시작부터가 직관적이고 세다. 인물들이 너무나 추잡하고 후져서 섬뜩했다. 그런 후진 인간들이 저런 자리에 있으면 안되는데. 프레스 앞에선 점잔을 빼지만 자기들끼리 뒤에 있을 땐 노골적이고 부끄럼없이 욕망을 드러낸다. 역겹고 천박하더라. 우스꽝스러워 보이기도 했고, 그런 점이 대단히 현실 반영적이라고 생각했다. 제안받았을 땐 너무 좋아서 이게 웬 떡인가 싶었다.”
영화는 원작과 비슷하게 가되 곁가지를 쳐내는 식으로 진행될 예정이다. 전체적인 판의 흐름에 주목하기보다 권력을 쥔 이강희와 그의 사냥개로 쓰였던 조폭 안상구, 이들의 뒤를 쫓는 우 검사의 이야기가 주된 골자다. 시나리오는 두개의 축으로 돌아간다. 사냥개에 만족하지 않고 그들과 똑같아지려다 실패하는 조폭 안상구가 수모를 겪은 뒤 복수를 시작한다. 또 하나의 축은 원작의 사진작가 이상업 대신 등장하는 우 검사다. 우 검사는 정치인들의 비자금 경로를 캐내 그들을 잡으려 한다. 방법은 다르지만 결국 두 인물의 목적은 같다. “<내부자들>의 인물들이 쓰는 말, 하는 짓을 보라. 하나같이 하는 행동이 조직폭력배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 검찰의 어떤 분이 그러시더라. ‘조폭 수사를 왜 검찰이 직접 하는 줄 알아? 대한민국에 조직이 두개 있으면 안되거든.’ 끝까지 가보면 누가 남아 있을지 궁금하지 않나.”
곧 캐스팅이 시작될 <내부자들>은 2014년 상반기 크랭크인을 목표로 달려가고 있다. 우민호 감독을 매료시킨 <내부자들>의 “훅”이 관객의 시선을 어떤 방식으로 잡아챌 것인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할 것 같다.
“힘있는 자를 주시해야 한다”
<내부자들> 우민호 감독
-원작엔 어떤 ‘훅’이 있었나. =“정치영화는 깡패영화처럼, 깡패영화는 정치영화처럼 만들면 재밌다”는 말이 있다. 원작 웹툰엔 폭력배들의 모습이 리얼하게 담겼다. 윤태호 작가에게 웹툰이 누아르 영화처럼 보인다고 했더니, 그런 이미지를 생각하며 그렸다고 하더라. 윤태호 작가는 조직과 개인의 이야기, 대한민국 남자들의 욕망을 아주 잘 다룬다. 각색을 하더라도 뒤틀린 개인들의 욕망이 각자의 조직 안에서 징그럽게 우글거리는 원작의 느낌을 잘 살려내고 싶다.
-원작에선 정치인들의 실명과 얼굴이 가감없이 나온다. =물론 영화에선 실명도 얼굴도 안 나온다. 원작 자체가 워낙 리얼해서 시사적인 이슈를 많이 덜어내더라도 아주 현실적이고 어두운 분위기로 영화가 만들어질 것 같다.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듯 정/재계의 생리를 제대로 꿰뚫고 있지 않나. 원작에서 사전 취재가 철저하게 돼 있어 내가 오히려 일을 덜었다. 윤태호 작가에게 <한겨레>에 연재하는 김에 <한겨레> 기자들에게 소스를 얻었냐고 물어봤을 정도다. 아니라고 했지만 모를 일이지. (웃음) 민감한 부분도 있겠지만 어쨌든 정권은 바뀌었으니 해볼 만하지 않겠나.
-윤태호 작가가 각색에 참여한 부분이 있나. =각본에 간섭하지 않는 편이다. 다만 연재가 끝나지 않았기 때문에 직접 30장짜리 트리트먼트를 써주었다. 원작과 비슷하다. 윤태호 작가가 힘있게 박히는 대사를 잘 쓰지 않나. 좋은 대사는 그대로 가져오게 될 것 같다. 원작에선 약간 설명조의 톤이 있는데 그건 캐스팅이 완료되면 배우의 입에 맞게 다듬을 생각이다. 앞서 영화화된 <이끼>처럼 <내부자들>도 어둡고 서늘한 이야기란 점에선 비슷하다. 하지만 <이끼>는 특유의 음습한 분위기를 살려야 했을 테니 각색이 훨씬 어려웠을 것 같다. 반면에 <내부자들>은 <이끼>보다 이야기가 명확하다. 간결하고 힘이 있어서 그대로 따라가면 될 것 같다.
-보통의 웹툰 원작 영화와 달리 캐릭터의 외적 싱크로율에 크게 구애받지 않아도 되겠다. =맞다. 이 작품에선 캐릭터의 외모는 중요하지 않을 것 같다. 외모를 닮기보다는 캐릭터의 욕망을 잘 표현할 수 있는 배우가 좋을 것 같다. 로케이션도 원작에 나오는 장소를 쓰고 싶은데, 국회의사당이나 검찰청을 쓸 수 있을지 모르겠다. 서울 뒷골목이나 요정도 고려 중이다. 뒤늦게 원작을 보는데 요정 접대 부분을 볼 무렵 때마침 별장 성접대 사건이 터져서 기억에 강하게 남아 있다. 이런 사건이 터질 것을 짐작했나 싶더라. (웃음)
-영화 창작자로서 웹툰 원작 영화가 늘고 있는 상황은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나. =어떤 모양새를 하고 있든 훌륭한 콘텐츠가 많다는 건 좋은 게 아니겠나. 웹툰은 일차적으로 독자들의 검증을 받은 이야기니까 그 이야기가 어떤 방식으로 독자들과 소통하고 독자들의 요구에 어떻게 맞아들어가는지 생각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전문 시나리오작가가 육성돼야 한다고도 생각한다. 지금의 영화계 상황은 작가를 키우는 데 취약하다. 이상과 현실의 괴리랄까. 합당한 대우를 해주면 작가로 오래 남아 있을 텐데, 정당한 대우를 받지 못하면 그들도 일을 지속하기 힘들지 않겠나. 좋은 웹툰 원작들도 전문 작가들이 각색해주면 더 좋은 결과물을 낼 수 있을 것 같다. <내부자들>은 대표님 의견으로 내가 각색하긴 하지만, 사실 감독들은 연출에 집중하고 싶지 않을까.
-영화의 ‘훅’이라면. =관객이 영화를 보고 ‘우리가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들이 있구나’라고 생각한다면 좋겠다. 끊임없이 힘있는 자들을 주시해야 한다. 꾸준히 지켜보기만 해도 그들은 노골적으로 행동하지 못한다. 그 선봉에 서야 하는 게 언론인데 <내부자들>에서처럼 엉뚱한 프레임을 짜는 언론도 분명 있을 터다. 그들이 보여주는 것만 보지 말고, 스스로 볼 줄 아는 눈을 키우자는 얘길 영화를 통해 하고 싶다.